[세풍] ‘탈(脫)지방 향(向)서울’의 종착역은?

입력 2024-10-07 20:04:10

김교영 논설위원
김교영 논설위원

"아무래도 난 돌아가야겠어/ 이곳은 나에겐 어울리지 않아/ 화려한 유혹 속에서 웃곤 있지만/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해…." 1994년 인기 드라마 '서울의 달' 주제곡 '서울 이곳은'의 노랫말은 여전히 현재성(現在性)을 갖는다. '88올림픽'을 치른 지 6년이 지난 서울. 고도성장의 뒤안에는 달동네가 있었다. '서울의 달'은 도시 빈곤층의 욕망을 담았다. '한탕'을 꿈꾸는 제비족 홍식(한석규), 홍식에게 속아 서울에 온 춘섭(최민식), 결혼으로 신분 상승을 하려는 영숙(채시라). 이들은 산업화, 도시화에서 소외된 사람들이다. 달동네에 비친 서울의 달은 야박했다.

이촌향도(離村向都)는 1960년대에 본격화됐다. 가난한 한국이 산업화 시동을 걸던 때다. 농촌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났다. 하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중노동저임금, 궁핍과 달동네였다.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은 어딜 가나 고생문(苦生門)이다. 바닥을 기고, 변두리를 서성거릴 뿐이다. 젊은이들이 떠난 농촌은 황폐해지고, 서울은 비대해졌다. '황폐'(荒廢)나 '비대'(肥大), 모두 사람 살기에 좋지 않은 환경이다. 그런데도 이촌향도는 '탈(脫)지방 향(向)서울'로 진화하면서 70년을 이어간다.

매년 청년 10만 명이 고향을 떠나 수도권으로 간다. 일과 돈이 흐르는 땅이니 어쩌겠나. 문제는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의 가속화(加速化)다. 사람이 넘치니, 집값이 급등한다. 사람이 빠지니, 폐허만 남는다. 서울의 아파트 청약 경쟁률은 치솟지만, 지방에는 미분양이 숱하다. 서울 아파트 평균값은 비수도권보다 5배 비싸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지역내총생산(GRDP) 차이는 2010년 1.2%에서 2022년 7%로 커졌다. 극심한 불균형은 나라를 병들게 한다.

수도권으로 간 청년들은 과연 행복할까? 친구의 딸 A씨는 서울에서 2년간의 직장 생활을 접고 대구로 귀향(歸鄕)했다. 300만원 남짓한 월급은 '서울살이'에 빠듯했단다. 오피스텔 월세에 교통비·식비·통신비를 지출하면 남는 돈이 별로 없었다. 장시간 노동과 스트레스, 왕복 4시간의 통근은 숨 쉴 여유를 주지 않았다. "적게 벌어도 마음 편하게 살자." A씨는 이렇게 결심하고, 부모와 함께 살면서 새로운 일을 찾고 있다.

흥미로운 통계가 있다. 수도권으로 떠난 청년이 비수도권에 남은 청년보다 소득은 많지만, 삶의 만족도는 떨어진다는 내용이다. 통계청의 '통계플러스 가을호'를 보면, 2022년 기준 수도권으로 떠난 청년(19~34세)의 연간 총소득은 2천743만원. 비수도권에 남은 청년의 소득보다 34.9%(709만원) 많다. 반면 '최근 1년간 업무·학업·취업 준비 등으로 소진(消盡)됐다고 느낀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의 경우, 수도권으로 떠난 청년(42%)이 비수도권 청년보다 12.3%포인트 높았다. 삶의 행복감에선 수도권으로 떠난 청년(6.76점)이 비수도권 청년(6.92점)보다 낮았다. 이솝 우화 '시골 쥐와 도시 쥐'가 연상되는 통계다.

'로컬'(local)이 청년층에서 화두(話頭)다. 고향(지방)에서 나만의 삶을 찾자는 움직임이다. 고향의 빈집을 고쳐 카페, 공방, 책방을 차리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수월찮게 듣는다. 부모님의 빵집, 반찬 가게, 식당을 잇는 청년들도 많다. 지자체들은 멀쩡한 보도블록 그만 뒤집고, 이들을 마중할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경쟁에 내몰리는 서울의 삶과 조금은 느슨한 고향의 삶, 이제는 선택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