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이강덕 포항시장을 비롯해 포항 지역 기관장들과 함께 포항 해병1사단에 들어가 부대를 둘러본 뒤 병사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이날 주일석 사단장과 환담을 하던 도중 인구 감소에 따른 병역자원 부족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지원병이 쏟아졌던 해병대도 저출생에 따른 청년 인구 감소로 지원율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해병대 측의 설명이 있었다. 이 주제의 대화가 계속 오가던 중 일행 누군가가 "청년이 줄면 나이 든 우리가 군대에 다시 들어오면 되겠네"라는 제언을 했다. 일행 모두 맞장구를 치는 분위기였지만 진지하게 이를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웃으며 들었던 해병대에서의 이야기가 최근 제법 구체성을 띤 뉴스로 돌아왔다. 병역자원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5060세대가 민간인 신분으로 군 경계병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법제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정책 제안이 국회에서 나온 것이다. 지난 25일 한국국방연구원이 서울에서 개최한 제63회 국방포럼의 연사로 나선 국민의힘 소속 성일종 국회 국방위원장은 "젊은 병사가 없다"며 "50대, 60대가 되어도 건강한 만큼 이들이 군에 가서 경계병을 서도 된다"고 했다. 성일종 의원실에 따르면 일부 주한미군부대는 지금도 경계 업무에 한국인 외주 인원을 채용해 활용하고 있으며, 의원실은 해당 정책 시행을 위한 법안을 검토 중이다.
성일종 의원의 제안처럼 우리에게 닥친 저출생, 아니 초저출생(超低出生)은 이미 우리 안보(安保) 체계를 뒤흔들고 있다. 20세 남성 인구가 2021년 29만 명이었는데 2035년에는 23만 명, 2040년 13만 명 순으로 급감한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국방 개혁 2.0을 통해 상비 병력(常備兵力)을 2017년 61만8천 명에서 2022년 50만 명 수준으로 이미 줄였고 추가적 감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도 저출생을 겪고 있지만 우리보다는 상황이 훨씬 더 나은 편이어서 전문가들은 북한의 상비 병력 규모가 현재와 비슷한 120만 명대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북한의 상비 병력은 우리보다 2배나 더 많은데 우리의 저출생이 지속되면 2030년대 이후에는 3배 수준까지 격차가 더 벌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강력한 군대를 가져야 나라를 지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에서 배워 왔다. 프랑스혁명 직후의 프랑스는 징병제(徵兵制)를 통해 유럽의 패권국이 됐다. 19세기 초반 프로이센도 징병제를 도입한 뒤 통일 독일을 만드는 주축이 되면서 강대국 지위에 올랐고, 메이지 유신 직후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징병제를 도입한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인구가 훨씬 많은 중동 국가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이스라엘 역시 남녀를 불문한 징병제를 통해 어떤 나라도 함부로 넘볼 수 없는 강소국이 됐다.
우리는 초저출생으로 인해 나라가 흔들리는 불편한 진실과 맞닥뜨렸다. 국민개병제(國民皆兵制)를 바탕으로 북한을 압도해 왔고 세계적 강군으로 자라 온 우리 국군은 만성적 병력 부족 사태에 빠져들었다. 재정 투입이 많은 모병제, 여성계 반발이 우려되는 여성 징병제 등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방안을 제쳐 두고 5060 전역병의 경계 근무 투입 등 새로운 병력 충원 방안을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 여당이 먼저 나섰다. 자고 나면 탄핵과 특검 도입을 외치면서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질타를 받는 국회 다수당 더불어민주당도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진정 있다면 국가 존망이 걸린 의제를 놓고 지혜를 모으는 역할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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