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임종석 ‘두 국가론’ 주장 놓고 분열…新계파갈등 단초 될까?

입력 2024-09-26 18:27:04 수정 2024-09-26 21:09:07

임종석 "통일하지 말고 두 개의 국가 수용하자"…야권 내 갑론을박 펼쳐져
이연희 "차기 민주 정부가 나아가야 할 남북 정책의 현실적 방향"
김민석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동조하지 않을 것"
친명계 "두 국가론 헌법 위배 가능성…문재인 정부 평화정책 실패"

19일 오후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19일 오후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임종석 2018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종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쏘아올린 이른바 '한반도 두 국가론'을 놓고 야권에서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당의 입장과 다르다고 선을 그었지만, 일부 인사들은 남북관계의 현실적 방향이라고도 주장하며 맞서는 등 야권의 미묘한 분화 조짐도 보이고 있다.

임 전 비서실장의 발언을 두고 586 운동권 세력은 동조화, 친 이재명계 인사들은 부정적, 김대중 정부 및 문재인 정부 인사들 사이에서는 동조와 비판이 혼재하는 등 야권 세력별로 각기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 정치평론가는 "금투세 폐지, 종부세 유연화 등 포퓰리즘 성격이 강하지만 실용주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재명 대표가 결국은 운동권 세력과는 결이 다른 행보를 보일 것이고, 이것이 야권 분화의 촉매제가 될 수도 잇다"고 분석했다.

◆ 야권 일부, 두 국가론 현실적…새 한반도 정책 필요

26일 민주당에 따르면 임 전 실장은 지난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 기조연설에서 '통일하지 말자',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고 주장하면서 논란을 촉발했다.

당 지도부는 '당의 입장과 다르다'며 즉각 선을 그었지만 일부에서는 임 전 실장의 의견에 동조하고 나섰다.

운동권 출신 이연희 민주당 의원은 임 전 실장의 발언 다음날인 지난 20일 SNS를 통해 "윤석열 정권의 남북 대결주의 회귀에 대한 분노와 절망 그리고 차기 민주 정부가 나아가야 할 남북 정책의 현실적 방향이라는 점에서 저는 공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정권교체로 다시 민주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도 과거처럼 통일을 지향하는 남북 화해와 협력이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임 전 실장의 발언이 한반도 정책을 새롭게 설계하는 평화 담론 논의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서 일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그 얘기(임 전 실장 발언)가 옳다고 생각한다"며 "1991년에 (남북 동시) 유엔 가입을 했으니 사실은 그때부터 두 개 국가다. 결국 남북 관계는 그 길로 갈 수밖에 없다"고 힘을 실었다.

정 전 장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무력 통일과 흡수통일을 배제하고, 교류 협력을 활성화하면서 통일은 후대에 맡기자고 했는데, 이는 임 전 실장이 말한 것과 비슷한 논리"라고 했다.

또 다른 운동권 출신 한 의원은 "임종석 (전)실장이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를 단순히 통일하지 말자는 것으로만 해석하면 안 된다"며 "두 국가론은 보수 진영에서도 이야기했던 것이고, 시대 상황에 맞게 남북 관계를 다시 보자는 그런 의미가 아니겠나"라고 설명했다.

◆ 민주 지도부, 두 국가론 부정적…헌법 위배 가능성 있어

현재까지 민주당 주류는 두 국가론이 헌법에 위배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평화 통일을 지향해온 민주 진영의 큰 흐름에도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반면 조국혁신당은 별도의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이재명 대표도 두 국가론 논란이 확산하자 최고위원회의에서 "헌법에 위배되는 측면이 있다"고 부정적인 평가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내 주류인 친이재명계 인사들도 일제히 비판을 쏟아냈다.

앞서 김민석 최고위원도 지난 22일 SNS를 통해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은 비판돼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설득할지언정 동조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평화적 장기 공존 후 통일을 후대에 맡긴다는 역사적 공감대를 도발적으로 바꾸고 두 개의 국가론으로 건너뛸 이유가 없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경색된 남북 관계로 인해 두 국가론을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헌법 제4조에 적시한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및 제3조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는 것과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동영 의원은 "안타까운 심정에서 평화를 우선 정착시키는 데 집중하자는 취지로 얘기했을 것"이라면서도 "두 국가론은 헌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박지원 의원도 "임 전 비서실장의 '두 개의 한국, 통일이 아니라 평화를 지키자'는 발언은 햇볕정책과 비슷(하다). 이것을 오해해 통일하지 말자는 등 냉소적 접근은 안 된다"면서도 "물론 학자는 주장이 가능하나 현역 정치인의 발언은 성급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친명(친이재명)계 조직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도 임 전 실장의 두 국가론을 질타했다.

김진향 한반도평화경제회의 상임의장은 "문재인 정부 평화 정책의 실패는 분단 체제에 대한 인식 실패가 초래한 예견된 결과"라며 "문 전 대통령도 무지했고, 임 전 실장도 무지했다. 이런 무지가 평화의 실패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맹비난했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두 국가론에 대해 "개념 없는 소리이자 논리적이지 못한 정치적 발언이다.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로 선언한 사안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무책임하게 받아들이고, 평화적 두 국가론으로 포장하는 것이 맞는가"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최근 금융투자소득세, 상속세, 종부세 완화 등 기존 민주당 정책과 다소 거리가 있는 이른바 감세 우클릭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에 이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명계와 기존 당내 주류였고 문 정부 정책을 주도했던 운동권이 의견 차를 보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두 국가론을 두고 또다시 미묘한 입장차를 보이면서 새로운 계파 분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두 국가론을 주장한 임 전 실장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3기 의장 출신으로 운동권을 상징하는 인물 중에 한명이다. 국회의원을 거쳐 문재인 정부 초대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맡는 등 운동권 중심 친문재인계 내에서도 핵심이다.

다만 지난 22대 총선에서는 지역구 공천을 두고 당 지도부와 갈등을 보이며 대립 끝에 물러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