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자의 한페이지] “당신 마음 한 구석에 있는 사랑을 내어주세요”…한명아 대한적십자사 대구시협의회 회장

입력 2024-09-22 13:41:14

24년 간 봉사인의 길 걸어…봉사 시간만 1만6천여 시간
"섬유공예가이자 엄마로서의 삶 이후 봉사활동 큰 위안돼"
봉사활동 프로그램 제안 대회, 대구시협의회 전국 1등 이끌어
"손녀 일기장에 자랑스러운 할머니로 등장하는 게 소망"

지난 12일 추석 연휴를 앞두고 대한적십자사 대구시협의회를 이끄는 한명아(65) 회장을 만났다. 봉사활동 경력만 24년을 자랑하는 그녀의 조끼에는 그것을 증명하듯 봉사활동 배지가 여럿 달려있다. 한소연 기자
지난 12일 추석 연휴를 앞두고 대한적십자사 대구시협의회를 이끄는 한명아(65) 회장을 만났다. 봉사활동 경력만 24년을 자랑하는 그녀의 조끼에는 그것을 증명하듯 봉사활동 배지가 여럿 달려있다. 한소연 기자

전쟁 부상자를 도우면서 시작된 적십자사는 전쟁하더라도 인간다운 전쟁을 하자는 제네바 협약의 정신으로 공식 조직됐다. 대구에도 대한적십자사 지사가 있다. 무려 5천여 명의 대구 시민이 적십자 봉사원으로 등록돼 있다. 157개 행정동 단위봉사회, 9개 구군 지구협의회가 있고 이들을 총괄하는 것이 대구시협의회다.

지난 12일 추석 연휴를 앞두고 대한적십자사 대구시협의회를 이끄는 한명아(65) 협의회 회장을 만났다. 봉사활동 경력만 24년을 자랑하는 그녀의 조끼에는 그것을 증명하듯 봉사활동 배지가 여럿 달려있다. 한 회장은 봉사 전 봉사의 취지, 필요성을 이야기하며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는 한 회장이 봉사원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정성'. 작은 것 하나라도 정성스럽게 하는 게 그녀의 봉사 정신이다.

-2000년에 입회하셨다.

▶학부모 모임을 나가다가 거기 학부모 중 한 명이 '수다 떨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고 제안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렇게 해서 찾은 게 대한적십자사 활동이다. 한 달에 한 번뿐이지만 그 한 번이라도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뜻깊더라. 무엇보다 그 모임 자체가 즐거웠었다. 보람, 사명감 같은 아주 거창한 이유보다도 함께 만나서 노는 기분이 봉사를 지속할 수 있게 하는 힘이었다. 당시 15명이 시작했는데 계속 남아 봉사를 하고 있는 사람이 11명이다.

-대학 강사까지 하셨다던데.

▶섬유공예를 전공했다. 공예가로 계속 활동하면서 대학원도 졸업하고, 이후에는 대학에서 20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대학 강사 일도 그만하게 되고, 마침 아이들도 성장해서 엄마의 손길이 더 이상 필요치 않아 지는 순간이 왔다. 그렇게 내 존재감이 조금씩 사라지는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 대한적십자사 활동이 위로가 됐다.

당시에 결심한 네 가지가 있었다. 일주일에 책 두 권 읽기, 일기 쓰기, 살 빼기, 일주일에 세 번은 봉사 활동하기였는데 봉사활동만 유일하게 지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느낌이 활동에 큰 힘이 됐다.

-활동 기간 24년에 봉사 시간만 1만6천158시간이다. 놀랍다.

▶나도 이렇게 오래 할 줄은 몰랐다.(웃음) 사람이 원래 큰 뜻이 없다가도 반장 같은 것을 하게 되면 책임감이 생기지 않나. 내가 재밌어하니까 임원 등을 시키더라. 그런 걸 맡으니까 책임감이 생기고, 또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런 것들이 이 활동을 지속하는 데 동력이 됐다. 봉사 시간은 특별히 많은 것은 아니다. 대구시 적십자 봉사회에는 3만 시간 이상 봉사를 하신 분이 제법 많다. 나는 아직 명함도 못 내미는 수준이다.

지난 11일 한 회장은 추석 명절을 맞아 송편 나눔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대한적십자사 대구시협의회 제공
지난 11일 한 회장은 추석 명절을 맞아 송편 나눔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대한적십자사 대구시협의회 제공

-봉사 인생 통틀어서 뿌듯하다고 생각한 활동이 있나.

▶우즈베키스탄에 한복 보내는 봉사를 제안한 적이 있다. 2011년, 조간 신문을 보다가 우연히 우즈베키스탄 대사의 칼럼을 읽었다. 우즈벡에 사는 고려인들이 한복을 입고 싶은데, 고가여서 구하기 힘들다는 내용이었다. 말미에 '집안 장롱에 안 입는 한복이 있다면 보내달라'는 말이 있더라. 그게 내 가슴을 울린 거다. 바로 적십자사 회의에 가서 한복을 보내자고 건의했다. 처음에는 반대에 부딪혔다. 결혼식 때, 며느리 볼 때 입었던 한복인데 어떻게 내놓냐는 의견도 있었고 배송비는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 하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 이견에 별다른 대안이 없던 상태라 '하지 말아야 하나' 생각했다. 회의 후 집에 와서 밤새 고민을 하다가 다음 날 무슨 용기가 났는지 그 칼럼을 게재한 신문사에 덜컥 전화를 했다. 동참 의사를 밝힌 몇 명 정도의 옷만이라도 기필코 보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뜻밖의 말을 들었다. 이미 한복을 보내겠다는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어서 관훈클럽이란 데서 배송비 지원까지 하기로 했다는 거다. 배송비가 해결됐다고, 한복을 보낼 수 있게 됐다며 반가운 소식을 전하니 회원들이 정말 많은 한복을 내놓더라.

-특별한 날 입어 추억이 깃든 한복이라 선뜻 내놓기 힘들었을 텐데.

▶맞다. 그러나 반대로, 그렇게 기쁨만 가득 담긴 옷이니 얼마나 뜻깊은가. 중고 한복이지만 하나 하나 좋은 의미만 담겨 있다. 자식들 결혼 시킬 때, 돌잔치 때, 환갑잔치 때. 그런 경사스러운 날에 입는 한복 아닌가. 그러니 헌옷처럼 보내지 말자는 의견을 회원 한 분이 내시더라. 누구는 무료 드라이를 담당하고, 또 누구는 제봉틀을 들고 와서 한복 동정을 수선했다. 각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손길을 보탰다.

편지도 썼다. '우리가 좋은 일에만 입었던 한복이니 헌옷이지만 기쁜 마음으로 입어달라'는 내용이다. 나중에 우즈베키스탄 고려인들이 한복을 입고 강강수월래 하는 사진과 함께 '덕분에 명절을 축제처럼 보냈다'고 하더라. 그 사진을 돌려보는데 정말 행복하고 기뻤다.

지난 11일 추석을 맞아 대한적십자사 대구시협의회가 진행한 송편 만들기 봉사 활동에 한 회장이 참여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대구시협의회 제공
지난 11일 추석을 맞아 대한적십자사 대구시협의회가 진행한 송편 만들기 봉사 활동에 한 회장이 참여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대구시협의회 제공

-봉사활동이라는 것이 획일적일 줄 알았는데 한복 모으기 같은 색다른 활동도 봉사가 될 수 있다니 흥미롭다.

▶나 역시 기존에 하고 있던 봉사활동도 좋지만 새로운 형태의 봉사도 시도해볼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새로운 도전이었고 또 감사하게도 성공했다. 그런 대단한 성취감을 느낀 경험 덕에 요즘도 다양한 봉사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 외부에서 봉사활동 공모전이라는 것이 열린다. 공모전에서 상금도 많이 타서 봉사활동 기금으로 활용했다.

또 대한적십자사 전국협의회가 참여하는 봉사활동 프로그램 제안 대회도 있는데 최근 거기에 제안한 아이디어로 대구 적십자사가 전국 1등을 했다. 봉사활동 대상자는 시대에 따라 변모한다. 초반 활동 때만 해도 아동 대상 봉사가 많았다. 이후 새터민, 다문화 가족, 노인, 기후환경 순서로 변화해왔는데 요즘은 노인 치매다. 이런 흐름에서 착안해 조기 치매 발견을 위해 검진을 독려하는 봉사활동 아이디어를 내서 좋은 성과를 얻었다.

-반대로 아쉽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다면.

▶봉사활동 하다가 재미를 못 느낀다거나 시간을 빼앗긴다고 생각해 그만 두시는 분들을 잡지 못했던 것이 후회된다. 그분들이게 "당신 마음 한 구석에 있는 사랑을 묵혀두지 마시라"고 하고 싶다. 그 사랑이 눈에 보이거나 밟힌다면 언제고 다시 시작해주셨으면 좋겠다.

지난 12일 추석 연휴를 앞두고 시협의회를 이끄는 한명아(65) 대구시협의회 회장을 만났다. 봉사활동 경력만 24년을 자랑하는 그녀의 조끼에는 그것을 증명하듯 봉사활동 배지가 여럿 달려있다. 한소연 기자
지난 12일 추석 연휴를 앞두고 시협의회를 이끄는 한명아(65) 대구시협의회 회장을 만났다. 봉사활동 경력만 24년을 자랑하는 그녀의 조끼에는 그것을 증명하듯 봉사활동 배지가 여럿 달려있다. 한소연 기자

-봉사인으로서 목표는 뭔가.

▶시협의회 회장으로서는 봉사원 한 분 한 분이 자식들에게 훌륭한 봉사활동을 한 부모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을 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모든 사람에게 우산을 씌워줄 수는 없지만 작은 관심들이 모여서 기둥을 세우고 천막을 치면 많은 사람이 비를 피할 수 있지 않나.

또 하나 바람이 있는데, 손녀에 일기장에 등장하고 싶다. 매일 영상 통화를 하는데, 일기장 앞에서 끙끙대는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열심히 써내려 간 그 일기에 봉사하는 할머니를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이 담기면 좋겠다. 언젠가 다 큰 손녀의 꿈 한 조각에 할머니가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