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사건 수사범위 줄어…민생수사 손도 못대

입력 2024-10-06 16:40:04

검찰 마약, 조폭 수사 범위 축소로 수사 어려움
사회적 약자 범죄 피해자 보호조치 미흡

대구지방검찰청 전경. 매일신문 DB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분리) 입법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 설치된 검수완박 관련 현수막. 연합뉴스

2021년 이뤄진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사의 사건 수사범위가 크게 줄었다.

검찰은 수사권 조정 전에는 모든 사건에 대해 수사가 가능했으나 조정 후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범죄 ▷경찰 공무원이 범한 범죄 ▷경찰이 송치 범죄 수사 과정에서 인지한 직접 관련성 있는 범죄만 수사개시가 가능하다.

검사가 작성한 피고인 조서는 내용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객관적으로 증명되면 증거능력이 인정됐으나 이제 피고인이 그 내용을 부인하면 증거가 되지 않는다. 검찰의 수사범위가 축소되면서 '나쁜놈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검찰의 한탄이 나오고 있다.

◆검찰 마약 투약 사건 손도 못대

지난해 12월 A씨가 차량 안에서 B씨에게 필로폰을 판매하고 자신도 투약한 사실을 검찰이 밝혀냈다. A씨는 필로폰을 구입한 사실을 인정했다. 그런데 A씨에게 마약을 판 판매상이 A씨에게 "돈을 주겠다"며 법정에서 거짓말을 해달라고 했다. A씨는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 검사의 피고인 조서가 증거로 인정되지 않아 무죄가 선고됐다.

한 차장검사는 "검사가 수사개시할 수 있는 범죄가 제한적이어서 이에 규정되지 않은 범죄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어렵고 새로운 유형의 범죄에 대해서도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검찰이 마약수사 범위가 크게 축소되면서 마약수사에 대한 어려움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수사권 조정으로 검사는 마약범죄의 단순소지, 소유, 사용, 운반, 관리, 투약, 보관의 경우 수사를 개시할 수 없다. 마약류 수출입, 제조, 매매 등에 대해서만 수사가 가능하다.

마약범죄는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처음부터 마약류 수출입, 제조 등의 대한 단서를 포착하기는 상당히 어렵다는 게 검찰 측의 설명이다. 단순 투약자에 대한 수사로 시작해 마약류 유통범죄로 확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강력부 검사는 "단순 투약자에 대한 수사를 제한하면 해당 투약자에게 마약류를 공급한 윗선에 대한 수사까지 제한하는 상황이 발생해 검찰의 마약수사를 극도로 위축시킨다"고 지적했다.

2021년 수사권조정에서 검찰이 500만원 이상의 마약류 밀수 범죄만을 수사할 수 있도록 했으나 2022년 밀수 범죄의 가액 제한이 폐지되기도 했다.

대구지역 마약사범은 5년 전보다 94.4%, 경북은 83.9% 늘었지만 검찰의 마약수사 위축으로 검찰이 입건하거나 구속한 인원은 절반 이상 줄었다.

대구지검 마약사범 입건 현황은 2020년 124명(구속 31명)이던 것이 2021년 66명(15명)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2022년 60건(20명), 2023년 78명(28명)으로 감소추세다.

검찰에서 피의자가 마약 투약사실을 자백했고 생체시료 감정결과 마약 투약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단순 마약투약사건으로 분류돼 검찰이 마약 공급책을 수사하지 못하고 경찰에 이첩한 사례도 있다.

대구지검 관계자는 "검찰이 마약사건에 대한 단순 소지, 투약, 보관에 대해 수사를 하지 못해 검찰의 마약수사가 크게 위축되고 있으며 마약 수사의 신속성과 효율성도 크게 떨어진다"고 밝혔다.

대구지방검찰청 전경. 매일신문 DB

◆조폭, 사회적약자 등 민생관련 범죄 수사 불가능

폭력범죄가 검찰의 수사개시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조직폭력범죄에 대한 직접 수사도 불가능해졌다.

조직폭력범죄는 개별 사건만으로는 파악이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따라 관련 범죄기록 전체를 검토할 필요가 있으나 수사권 조정 이후 불송치되는 사건은 검찰에서 관련 기록을 확인하기 어렵다. 조폭 조직원이 일으킨 폭력사건도 개인의 단순 폭력사건으로 처벌되는 경우가 허다해졌다.

여성, 아동,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상대로 자행되는 범죄의 경우 초기 단계에서 적극적인 피해자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경찰에 대한 검찰 수사지휘권 폐지로 경찰 수사 중 사건에 대한 사법통제가 제한되고 피해자 보호를 위한 수사기관 간 협력도 약화됐다.

지난 6월, 한 남성이 3년간 사실혼 관계 여성의 미성년 자녀를 11차례 강제추행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다. 피의자가 임시조치로 구치소에 유치돼 있다는 이유로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검사는 경찰에 구속영장을 재신청하라고 보완수사를 요구했으나 불구속 송치돼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가 우려됐다. 검찰은 피의자 유치기간이 끝나기 전 신속히 구속영장을 재신청하도록 재차 보완수사를 요구, 결국 피의자를 구속기소했다.

대구지검 관계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범죄 사건은 피해자의 기억이 소실되기 전에 신속히 수사절차를 진행해 진술 등 증거를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수사권 조정 이후 불송치 결정, 이의신청, 재수사요청 등 복잡한 절차를 반복적으로 거치는 과정에서 증거가 소실되고 진술의 구체성도 줄어들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