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하거나 이제 막 면허 취득한 저숙련 기사까지, 구인 한계점 몰려
전국고속버스운송사업조합 등 업계 지원 개선안 마련 정부에 전달
단기 지원 통행료 면제, 장기적으론 외국인 인력 도입 검토도 필요
국토교통부 '시외·고속버스 운영 및 지원 체계 개선방안 마련 연구용역' 진행, 현장은 글쎄…
'국민의 발'인 고속버스가 안전 위험과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업계가 자구책 마련에 나서며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지만 이젠 한계상황에 놓였다. 기사 부족으로 인한 저숙련과 고령화, 노선 축소 등 갖가지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대중교통 안전과 공공성 확보를 위해 국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지만, 현재 정부의 대책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는다.
◆교통안전을 최우선…인력 수급이 실마리
고속버스 업계가 처한 가장 큰 위기는 운전할 기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데서 비롯됐다. 인력난으로 인해 고속버스 업체들은 이미 퇴직한 기사들을 다시 불러들이거나, 이제 막 면허를 취득한 저숙련 운전기사들을 현장에 투입할 수밖에 없다. 남아 있는 기사들은 고강도 근무에 제대로 휴식을 취하기도 어려운 환경에 내몰리면서 승객의 안전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안전한 교통 환경을 만들기 위해선 처우 개선을 위한 지원과 안정적인 인력 수급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한 고속버스 업체 대표는 "예전에는 대형 운전 경험 3년과 사고경력을 깐깐하게 봤지만, 요즘은 거의 경력이 없어도 대형차량 면허증만 있으면 채용하고 있다. 퇴직한 기사도 다시 불러들일 만큼 기사 부족이 극심하다"며 "항상 사고 위험을 안고 있다. 실제로 사고율도 상당히 높아졌다. 중대재해처벌법까지 시행돼 교통사고에 대한 부담이 크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고속버스 업체들과 전국고속버스운송사업조합,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고속노동조합 등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개선안을 마련해 국토교통부에 요청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인건비 상향, 숙박 및 휴게시설 등 각 터미널을 이용한 복지시설 확충 등 고속버스 운전기사 처우 개선을 위한 정부 재정 지원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알릴 계획이다.
아울러 부족한 교육시설 확충에도 목소리를 높인다. 현행법상 사업용 자동차를 운전하려면 해당 자동차 운전경력이 1년 이상이거나 국토교통부 또는 지자체장이 지정·고시한 양성기관에서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현재 교육시설은 경기도 화성과 경북 상주 두 곳뿐이다.
이로 인해 1회 교육 가능 인원이 한정돼 있어 교육 신청 후 2~3개월 이상 대기해야 한다. 게다가 상주는 교육비, 식비, 숙박비를 교육생이 부담해야 해 화성으로 인원이 몰리는 등 교육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
고속버스운송조합은 지난달 28일 국토교통부와 간담회를 열고 업계의 애로 상황과 지원 확충안 등을 전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고속버스 업계의 애로와 재정적 지원 필요성에 대한 의견을 확인했다. 당장 반영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선 개선 검토 작업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국토부 마련 중인 개선안…현장에선 "글쎄"
국토부와 관련 부처들이 고속버스 안전과 업계 활성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토부는 지난 5월부터 한국교통연구원과 '시외·고속버스 운영 및 지원 체계 개선방안 마련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이번 용역은 철도가 닿지 않는 교통 사각지대에 놓인 지역민의 광역 이동권 보장을 위해 지속이 필요한 노선에 대해 지원책 마련한다는 취지다.
이르면 내년 2월쯤 결과가 나올 예정으로 필수 노선 선정 기준을 마련, 지역별 필요한 노선은 수익과 상관없이 재정을 투입해 유지할 계획이다. 주요 방안으로 ▷총비용입찰제 및 최저보조금입찰제 ▷수입금 정산방안 ▷국토부와 지자체 재정 분담 등의 연구가 이어진다.
다만 적자 지원이 아닌 지원 규모 최소화를 위한 운행 효율성 제고 방안 마련이란 단서 조항이 있어 필수 노선 기준에 대한 논란이 예상된다.
국토부는 앞서 2019년부터 운전인력 양성사업도 진행 중이지만 실효성을 낮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매년 4억원을 투입해 군경운전자격 취득을 지원했지만 실제 취업률 성과로 이어지지 않아 지난해부터 예산 1억원이 삭감됐다.
지난해 8월에는 국민의힘과 정부 관계 부처가 당정협의회를 통해 '버스-터미널 서비스 안정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 방안에는 버스 운전기사 지원자들이 조속히 현장에 투입되도록 대형면허 취득부터 교육과 채용으로 이어지는 '원스탑 프로그램'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운행 안전을 위해 디지털운행기록장치(DTG)를 분석해 기사에게 적정휴식을 부여하지 않은 사업자에 대한 제재를 비롯해 비상자동제동장치(AEBS) 등 운전지원시스템 장착을 유도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고속버스 업계 등 현장에선 인력 부족 해소와 기사 처우 개선 등 근본 대책의 부재를 지적하고 있다. 시내‧시외버스와 고속버스 등 각각의 특성을 고려한 세부적인 맞춤형 지원이 부족하다며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는 것.
전국고속버스운송사업조합 관계자는 "제일 큰 문제는 지원 인원 자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인근 준공영제 시내버스와의 운전기사 임금 격차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선 양성 교육 강화와 필수 노선 지원 방안 등은 실효성이 낮은 대책일 뿐"이라며 "기사들 근무 환경이 나아질 것이란 인식을 심어주면서 인력을 늘려가는 선순환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장 급한 직접 지원과 장기적 인력 수급 체계
대중교통 노선 중 고속버스에 대한 재정 지원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이에 업계는 우선 기사 처우 개선을 위한 단기 지원이라도 마련해줄 것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바로 공공성 때문이다. 철도가 없는 지역과 지역을 이어주는 대체 불가능한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고속버스의 필요성은 최근 KTX 열차 사고에서도 확인됐다. 지난달 18일 동대구역에서 경주역으로 가던 KTX 열차 바퀴가 궤도를 이탈하는 사고가 발생해 서울과 부산으로 가는 양방향 열차 100여 편이 지연 운행됐다. 이에 고속버스가 추가 편성으로 긴급 투입돼 승객 수송을 담당했다.
아울러 고속버스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선 장기적인 인력 수급 시스템이 요구된다. 인구소멸 위기로 국내 인력만으로는 원활한 기사 수급이 어려운 만큼 외국인 인력 도입 제도 대한 방안을 업계는 요구하고 있다.
고속버스 운전은 일반 제조업 등과 달리 면허취득 및 경력 등 사전 준비기간으로 2~3년이 필요하다. 외국인의 경우 입국 후 준비기간 동안 소득 없다는 한계가 있다. 교통안전과 관계된 만큼 기초적인 언어 습득과 안전교육도 필수다.
이에 따라 업계는 외국인 진입 장벽 완화와 몽고‧베트남 등 현지 기사 양성 센터 설립을 주장하고 있다. 세부적으로 ▷버스운송업에 대한 체류자격 부여 ▷고용허가제 업종 확대와 체류 기간 연장 ▷대형면허 취득기준 완화 및 상호인정 국가 확대 ▷국내‧외 버스운전인력 양성‧교육센터 설립 등이다.
실제로 버스 기사 부족 문제를 안고 있는 일본의 경우 태국어, 베트남어, 미얀마어 등 20개국 외국어로 운전면허 시험을 볼 수 있도록 정책을 바꾸기도 했으며, 기사를 외국인 특별 재류 자격 조건으로 인정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시내버스와 같이 시외‧고속버스도 준공영제를 시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예산 확보 등 당장 현실화하기 어렵기에 최소한의 교통안전 확보가 시급하다는 것이 업계의 핵심 요구다. 극심한 인력난으로 경력이 부족한 기사들이 운전대를 잡은 탓에 시민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인근 준공영제 시내버스와의 임금‧처우 격차를 줄이는 것이 기사 확보를 위해 절실한 상황이다. 정부의 업체 지원이 어렵다면, 운전기사 개개인에게 지원해서라도 교통안전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
류대선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고속노조 위원장은 "기사가 부족한 현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앞으로 몇 년 안에 고속버스 회사들이 문을 닫아야 한다"며 "단기적으로 처우 개선을 위해 기사에 대한 직접 지원을 비롯해 장기적으로 외국인 기사 양성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탐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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