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석 경제부 차장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포비아(Phobia)'는 '공포증(恐怖症)'을 뜻한다. 최근 인천 청라 지하 주차장 벤츠 전기차 화재로 인해 '전기차 포비아'가 확산하고 있다.
전기차에 대한 공포증이 점차 커진 주된 이유 중 하나는 배터리 화재와 같은 특정 이슈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과도한 여론(輿論)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필자는 지난해 전기차를 구입해 1년간 2만3천㎞ 이상 주행했다. 그동안 다양한 곳에서 충전을 했다. 겨울 강원도 태백에서 눈이 내리는 영하의 날씨에도 밖에서 충전하며 주차해 뒀고, 한여름 무더운 대구 날씨에도 지상에서 충전했다. 그러나 아직 아무런 문제도 겪어 보지 않았다.
이 '경험'이 보여 준 '사실'은 '전기차라고 해서 반드시 위험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주변에서는 나에게 "전기차 괜찮냐?"라거나 "충전하고 다니기 귀찮을 것 같다"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하기도 한다.
이런 걱정 섞인 질문들이 나오는 것은 전기차 관련 잘못된 정보들이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어서다. '전기차 화재 속도는 빠르다' '자동차 화재 대부분은 전기차에서 발생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1만 대당 화재 건수(지난해 기준)는 비전기차 1.86건, 전기차 1.32건이다. 특히 통계는 화재 원인으로 충돌 사고 등 외부 요인에 따른 수치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을 뿐 아니라 초소형 전기차, 초소형 전기화물차, 전기삼륜차까지 함께 집계한 것이어서 순수하게 승용 전기차의 고전압 배터리 원인으로 인한 화재는 매우 적다고 할 수 있다.
전기차 화재 진압이 어렵다는 식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7월 경기도소방재난본부가 실시한 '전기차 화재 진압 시연회'에서 조선호 경기소방재난본부장은 "전기차 화재의 초진이나 확산 차단이 내연기관차보다 더 어려운 것은 아니다"고 답했다. 전기차 화재가 내연기관차 화재보다 더 심각하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 지난 4월 한국화재소방학회가 발행한 '지하 주차장 내 전기자동차 화재의 소방시설 적응성 분석을 위한 실규모 소화 실험' 논문은 스프링클러 작동만으로도 옆 차량으로의 화재 전이를 차단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결국 지하 주차장 등 실내에서 화재가 발생한 경우 화재 양상과 피해 규모는 발화 요인이 아니라 스프링클러의 정상 작동 여부에 따라 좌우된다는 의미다.(이번 청라 화재 피해가 컸던 원인 중 하나 역시 스프링클러 미작동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 없이 어느 대학 관련 학과 교수 혹은 무슨 협회 관계자가 언론을 통해 말하는 몇몇 이야기를 '사실'인 것으로 오인하고 전기차가 위험하다는 '포비아'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사실(事實)이란 없고 해석(解釋)만이 있을 뿐이다'(There are no facts, only interpretations)는 니체의 말처럼 전기차에 대한 사실적 정보보다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생각을 첨가한 해석만으로 '포비아'가 확산하고 있다.
전기차는 새로운 기술로 대중에게 다가서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안전성과 실용성에 대해 과도한 기대나 우려를 갖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객관적인 사실에 기반한 정보 제공이다.
전기차가 갖추고 있는 많은 안전장치와 배터리 제조에서의 안전 등에 대한 기술을 모른 척하고 '위험하다'고만 주장하는 것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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