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와 함께 나누고픈 북&톡] 그 시절의 나를 만나다…반갑습니다, 추억

입력 2024-09-10 06:30:00

고단한 날 추억 담긴 음악, 영화, 음식 등 떠올려
그것들을 좋아했던 그 시절의 나를 만날 수 있어

추억 관련 자료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추억 관련 자료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무더운 여름방학, 탈탈탈탈 선풍기가 돌아갑니다. 앉은뱅이책상 위에 살구색 '탐구생활' 책을 펼쳐두고 텔레비전을 켭니다. 그 시절 탐구생활은 참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종이에 사인펜으로 점을 찍고 한쪽 끝을 물에 담가두면 사인펜의 색이 무지개처럼 여러 색으로 번지는 실험은 어찌나 신기하던지 몇 번이고 반복했었지요. 그날, 내 세상은 조금 더 넓어졌습니다.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하나면 금세 무엇이든 보고 듣고 알고 가질 수 있는 지금도 그 느린 하루가 기억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 좋아하는 것을 추억하는 즐거움

'호호호(好好好): 나를 웃게 했던 것들에 대하여'의 표지

수업을 마치면 사람 구경, 물건 구경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던 학교 앞 문방구는 그 시절 우리의 참새 방앗간이었습니다. 윤기 흐르는 빨간 떡볶이, 벽면을 가득 채운 먼지 쌓인 장난감들, 50원에 한 판이면 왕사탕이 기본이었던 뽑기까지. 때로 무서운 주인 할머니의 "살 거 아니면 집에 가!"라는 구박을 받기도 했지만, 살 것이 있을 때면 부리나케 달려가던 문방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호호호(好好好): 나를 웃게 했던 것들에 대하여'(윤가은 지음)에도 문방구가 등장합니다. 1982년생인 글쓴이가 유년을 보낸 시기는 경제 성장과 함께 교육에 대한 투자와 관심이 높아지면서 학용품과 사무용품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았던 80, 90년대입니다. 당시 학교 앞에는 자그마치 5개의 문방구가 있었고 그중 글쓴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아담 문방구였습니다. 아담 문방구의 물건은 그리 다양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서툰 아이들을 재촉하지 않고 말없이 기다려 주는 주인아저씨가 있었지요. 유난히 수줍음과 겁이 많았던 글쓴이는 그런 아저씨를 의지할 수 있는 어른으로 여기게 됩니다. 10여 년이 지난 뒤 찾은 아저씨는 여전히 아담 문방구의 주인으로 아이들의 작고 연약한 마음을 배려합니다. 그리고 글쓴이는 자기 잘못을 다 알면서도 용서해 준 아저씨 덕분에 부끄러움을 배웠음을 고백하지요.

좋고 싫은 것이 있다는 호불호(好不好)가 아니라 웬만하면 다 좋아하기에 호호호(好好好)의 성향을 지녔다는 글쓴이는 초등 4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려있는 영화 '우리들'(2016)의 감독이기도 합니다. 글쓴이가 어린이들의 감정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영화를 연출할 수 있는 바탕에는 이러한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습니다. 현실에 지치고 고단해지는 어떤 날, 추억이 담긴 음악, 영화, 음식, 시간, 공간 등을 떠올려 보세요. 그러면 그것들을 좋아했던 그 시절의 나를 만나게 되고, 어쩌면 또다시 무언가를 무척이나 좋아할 수 있는 내 마음을 되찾게 될지도 모릅니다.

◆ 그 시절 우리의 꿈을 찾아 떠나는 여행

'나의 돈키호테'의 표지

늠름하게 각진 비디오 케이스들이 백과사전처럼 미로를 만들던 그 시절의 비디오 대여점을 기억하시나요? 가게 안 벽에 붙은 영화 포스터들에는 갖가지 포즈를 뽐내는 배우들과 이국적인 풍경이 가득했지요. '나의 돈키호테'(김호연 지음)에는 비디오 대여점이자 유튜브 채널인 '돈키호테 비디오'가 등장합니다. 주인공 진솔은 그 시절 비디오 대여점의 주인이자 돈키호테처럼 꿈을 좇았던 돈아저씨를 찾기 위한 방송을 시작합니다. 영화와 책에 담긴 이야기로 저마다의 고민을 지닌 아이들을 위로해 주었던 돈아저씨. 그때의 추억은 아저씨를 찾는 실마리가 될 뿐만 아니라 주인공이 현실에서 겪는 고난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을 용기를 줍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꿈과 신념을 되찾을 수 있게 하지요. 이렇게 추억은 단순한 과거의 회상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힘이자 삶의 나침반이 되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과 함께 보냈던 따뜻한 순간들이 떠오를 때, 우리는 그때의 사랑과 안정감을 느낍니다. 자녀들에게는 부모님과 함께하는 현재의 이 시간이 바로 그러합니다. 먼 훗날, 지금의 추억을 초콜릿처럼 꺼내어 고단함을 위로받고, 아침 사과 한 알처럼 꺼내어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에너지를 얻기를. 그래서 더 반갑습니다, 추억.

대구시교육청 학부모독서문화지원교사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