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대의 건축인문기행] 히로시마, 전쟁과 평화의 건축

입력 2024-09-05 13:30:00 수정 2024-09-08 13:50:56

평화기념관·원폭 기념자료관
1945년 美, 日 히로시마에 원폭 투하…폭발 지점서 150m 떨어진 건물 파괴
상부 철제 돔 일부 형체만 남고 소실…살상의 비극·비참함 보여주는 건축
일본 첫 프리츠커 수상자 단게 겐조…필로티·수평창·수직 연속 루버 활용
침묵으로 표현한 '기념자료관' 건립…평화 상징한 '평화의 등불' 세우기도

원폭 파괴의 흔적
원폭 파괴의 흔적 '원폭 돔'은 건너편 '원폭 기념자료관'과 상징 축을 이루고 있다.

79년을 맞이한 올해의 광복절은 좌충우돌의 파행으로 어수선한 분위기로 지나갔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초등시절 여름방학인데도 학교에 나와 운동장 땡볕 아래서 부르던 광복절 노래가 새삼스럽다. 일제 강점에서의 해방을 '어둠에서 벗어나 밝은 빛을 다시 찾았다'고 해서 광복(光復)이라 한다. 그 빛은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 상공의 원폭 섬광(閃光)에서 기인하였다. 히로시마에 이어 8월 9일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폭으로 8월 15일 일본 천황은 항복을 선언한다.

올해 아카데미상 7개 부문을 수상한 영화 '오펜하이머'는 핵 개발 '맨해튼 프로젝트'의 천재 과학자의 운명을 다룬 영화였다. 히틀러와 일본이 일으킨 2차세계대전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세상을 파괴해야 하는 핵폭탄의 개발로 종식된 것이다. 지구상에는 핵무기 공식 보유국(NPT 기준) 5개국과 북한을 비롯한 3개국은 비공식 보유국이다.

지난 여름방학에 지역 건축대학 통합프로그램 '건축아카데미' 일정 중 원폭의 도시 히로시마 건축 답사가 있었다. 부산항에서 밤 페리호로 시모노세키에 도착하여 버스로 히로시마, 쿠라시 키, 오카야마, 나오시마 답사 일정이었다. 시모노세키를 향하는 대한해협 밤바다는 전쟁 중 조선인을 실어 나르다가 대한해협에서 침몰한 관부연락선(關釜連絡船) 항로였다. 일본 도착 아침, 선상에서 바라본 시모노세키항과 건너편 역 광장은 상해임시정부 김구 밀사의 운명을 그린 소설 '미인 1941'에 등장하는 배경이었다.

2차세계대전 후, 히로시마 등 유럽 베를린 로테르담 전쟁 폐허 도시들은 현대 건축의 신도시로 부흥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류 최초의 원폭 폐허 도시 히로시마, 건물 일부가 살아남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원폭 돔', 단게 겐조가 설계한 '평화기념자료관' '평화기념공원'에서 전쟁의 흔적과 건축을 답사한다.

파괴되었던 높이 25m 타원형 돔의 구조 보강한 내부 형태.
파괴되었던 높이 25m 타원형 돔의 구조 보강한 내부 형태.

◆원폭의 도시 히로시마

장마철 빗길을 달려 도착한 히로시마. 먼저 눈에 띄는 교복 학생들의 긴 행렬, 방학인데도 전국에서 모여든 학생들은 '평화기념공원'을 향하고 있었다. 인구 120만의 일본 10번째 도시는 야구장과 체육공원과 녹지공간들이 여유롭고 버스형 전차가 한가롭게 운행하고 있었다. 일본 내해(內海)로 흐르는 오타 강 6개 강줄기와 삼각주가 큰 섬이라는 뜻의 '히로(큰) 시마(섬)'는 수많은 교량으로 연결된다, 지금은 세계 인류 평화를 희망하고 상징하는 국제 컨벤션 관광 도시가 되었다.

1949년 '히로시마 평화기념도시 건설법'이 제정되며 '평화기념공원'조성은 히로시마 신도시 계획의 주축이 되는 이곳에는 30여 원폭 기념 추모시설들이 배치한다. 공원 한쪽에 있는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는 이효상 국회의장 휘호(揮毫), 한갑수 서울대 교수 비명(碑銘), 한정식 각자(刻字)로 거북 등 위에 세워져 있다. 원폭 당시 인구는 약 34만 명으로 조선인 사망자는 3만 명에 달했다 한다.

전쟁 전 원폭 돔, 체코 건축가 설계의 히로시마 상업 전시관(물산 장력관) 건물의 모습.
전쟁 전 원폭 돔, 체코 건축가 설계의 히로시마 상업 전시관(물산 장력관) 건물의 모습.
건축 정면 축(軸)
건축 정면 축(軸) '평화의 등불'의 구심점은 멀리 원폭 돔을 향하고 있다.

북쪽의 '원폭 돔'에서 남쪽 '평화기념자료관',에 이르는 상징 축이, 공원 남쪽의 폭 100m, 길이 4km의 '평화대로'는 히로시마 신도시의 동서축이다. 공원 북쪽으로 문화시설 지역 '게이트 단지'와 '히로시마 성'과 연결하여 도심에 자리하고 있다.

'평화기념공원' 곳곳에는 원폭으로 죽거나 고통받은 일본인 피해를 전시하고 슬픔을 추모한다.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 왜? 원폭이 투하됐는지, 왜? 비참한 불행을 초래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반성 없는 전범의 신사 참배와 다름 아닌 듯하다. 아침 8시 15분 원폭의 시간에 울리는 '평화의 종'은 누구를 위하여 울리는 종인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원폭 돔'은 인류 핵전쟁 상징의 랜드마크로 남았다.

◆원폭의 랜드마크, '평화 기념관' (원폭 돔)

알려져 있었던 '원폭 돔'의 공식 명칭은 '평화 기념관'이었고, 펜스 주변에서만 바라다보는 건축 흔적을 '기념관'으로 말하고 있다.

파괴전 건물은 1911년 체코 건축가가 설계한 히로시마 상업 전시관(물산 장력관) 건물이었다. 3층 벽돌 건물 원형 중심부에 높이 25m 타원형 돔이 있었는데, 지금 남아 있는 철골조 돔 형태이다. 원자탄이 폭발한 지점(Hypocenter)은 이곳에서 150m 떨어져 있었다. 건물 상층부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나 수직 방향 충격파로 중심부 원형구조와 상부 철제 돔 일부 형체가 남았다. 멀리서도 유난히 잘 드러나 보이는 앙상한 뼈대 형체는 핵전쟁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남았고 비를 맞으면서 공원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원폭돔 스케치
원폭돔 스케치

1966년 원폭 돔 보존을 시의회에서 결의할 당시, '원폭 참화의 증인으로서 보존해야 한다.' '원폭 상처를 철거해야 한다'라는 의견이 대립하였으나 보존된 이곳은 8월 6일의 평화 기념일 행사의 장소가 되고 있다.

건축의 생명은 인간 생활을 담고 있을 때 지속되고 그 기능으로 말을 한다. 폐허의 건축은 아직 생명이 다하지 않았고, 전쟁의 비참함과 그 책임을 큰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전쟁을 말하고 참상을 기록하고 있는 건축은 슬픈 건축이다. 2차 대전 유대인 학살의 현장 '아우슈비츠 수용소', 죽음의 고통을 예리한 빛으로 말하는 '베를린 유대인기념관', 12초 간격 물방울로 말하는 '난징대학살 기념관' 전쟁과 살상의 비극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원폭 기념자료관.땅 초토를 침묵으로 말하는 건축은 전후 일본건축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 건축이었다.
원폭 기념자료관.땅 초토를 침묵으로 말하는 건축은 전후 일본건축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 건축이었다.

◆침묵의 건축, '원폭 기념자료관'

핵폭탄, 죽음, 희생자, 추모, 평화, 어떠한 언어로 건축을 표현했는가? 침묵이었다. 노출콘크리트, 필로티, 대칭, 수평, 수직, 연속, 지상에서 떠 있는 흰 구름, 축(軸), 출발, 종점이었다. 히로시마 땅의 초토(焦土) 인상을 강렬하게 세기며 전후(前後) 일본건축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기념비적 건축이 되었다.

설계자 단게 겐조가 영향받은 코르뷔제 이론이 적용된 필로티, 수평층, 수직 연속루버 요소들은 일본 전통 건축미와 융합되어서 표현된다. 단게 겐조는 이 건축으로 유럽의 '근대건축 국제회의(CIM)'에 참가하여 그의 이름과 일본건축을 세계에 알리게 된다.

원폭 기념자료관.전체적 공간은 원폭 피해만 말할 뿐 전쟁의 원인과 반성의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원폭 기념자료관.전체적 공간은 원폭 피해만 말할 뿐 전쟁의 원인과 반성의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중심 건축의 수평 대칭 침묵을 강조하기 위해서 출입 로비의 서쪽 별관, 국제회의장의 동쪽 별관으로 좌우 배치하였다. 관람행렬에 떠밀려서 2층 전시장에서는 공간 파악이 불가했고 로비에 되돌아와서야 오픈 공간을 만난다. 대학 시절 책에서 보았던 건축, 반세기 지난 첫 만남, 회포를 가질 만한 커피숍도 앉을 여유도 없는 어수선한 학생들의 견학 장소였다.

노출콘크리트 표정이 '침묵'이었다면, 새롭게 개조하여 치밀해진 건축 표정과 디테일에서는 '변명' '위선'이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원폭 돔과는 상반되어 잘 차려진 상업시설처럼 느껴진다. 땅의 '침묵'을 표현하는 필로티는 단체견학 학생들과 관람객들이 비를 피하는 대형집합 장소의 소란함 편리함은 설계자와는 무관한 건축 기능의 진화일까?

기념자료관에서 원폭 돔을 향한 축(軸)의 지점에 꺼지지 않는 '평화의 등불 (Flame of Peace)' 이 있다. 캄캄한 밤 명멸하는 레이저 빛이 원폭을 말할 것 같은데 이곳은 평화만을 말하고 있다.

원폭어린이상 스케치
원폭어린이상 스케치

◆일본건축의 대부, 단게 겐조

일본의 프리츠커 첫 수상자(1987년) 단게 겐조(丹下健三, 1913년~2005년)는 히로시마에서 성장기를 보냈고 원폭으로 부친을 잃었다. '평화기념공원'과 도시계획, '평화기념자료관' 현상설계 당선으로 히로시마와 인연이 깊은 건축가이다.

그는 전후 부흥기에서 경제 성장이기에 수많은 프로젝트를 설계했다. 64년 '도쿄 올림픽 국립경기장, 요요기 수영장'은 일본을 세계에 알리는 건축이었다. 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 주제관', '도쿄 도청사'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도쿄만 해상도시계획(1960')'은 세계적인 평가를 받는 계획안이며 일본의 프리츠커 수상 건축가들을 여럿 배출한 일본 건축계의 대부(代父)이다.

최상대 전, 대구경북건축가협회 회장
최상대 전, 대구경북건축가협회 회장

최상대 전, 대구경북건축가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