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셔츠 한 장에 물 1톤 든다'는 기사…"해외 SPA 브랜드 그만 뒀다"
빈티지 숍·업사이클링·의류 대여 등 옷 오래 입을 수 있는 방법 고민

"우리처럼 작은 존재가 우주의 광대함을 견디는 방법은 오직 사랑뿐이다."
대구 중구 교동에 위치한 빈티지 숍 '노모뉴' 입구에 들어서자 칼세이건의 소설 '컨택트'에 나오는 문장이 오는 일을 반기는 듯 적혀있었다.
문을 열고 매장에 들어서자 우주의 광대함을 견디는 방법이 정말 사랑뿐이라는 듯 핑크와 하트가 가득했다. 주말에 있을 플리마켓에서 판매할 핀과 키링을 만들고 있었다는 권민주(34) 노모뉴 대표. 밝게 웃고 있는 그녀 옆에 곧 핀과 키링으로 만들어질 청바지가 한가득 쌓여있었다.

-빈티지 숍 '노모뉴'를 2019년에 오픈했다.
▶환경을 지키면서 의류와 관련된 일을 할 방법을 고민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노모뉴(No More New)'다. 새로운 것보다는 오래된 것에서 색다른 가치를 찾자는 뜻이다. 노모뉴에서 취급하는 옷들도 유니크하고 소재도 좋아서 다시 입을 수 있는 것들이다. 어떤 허영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소중하게 입을 수 있는 보물 같은 옷을 저렴하게 제공하는 것이 나의 철칙이다.
-빈티지 숍을 시작하계 된 계기는.
▶SPA 브랜드에서 비주얼 머천다이저(VM)으로 일했었다. 간단히 말해 사람들이 옷을 하나라도 더 사게끔 매장을 화려하고 예쁘게 꾸미는 역할이다. 정말 열심히 일해서 그 자리를 따냈었고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친구가 기사 하나를 내게 공유했다. 그냥 단순한 하얀 티셔츠 한 장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물의 양이 1톤이라는 기사였다. 거기에 염미를 입히고 프린팅을 입히고 하면 화학 소재들이 더 들어가니 환경에 더욱 악영향을 미친다는 내용도 있었다. 너무 충격적이었고 일을 그만두게 되는 계기였다.
-내 가치관과 다르다는 이유로 몸 담고 있는 회사를 그만두기 쉽지 않은데.
▶나름 환경을 위해 물도, 전기도 의식해서 아껴 쓰는 편이었다. 그런 내가 그 환경을 해하는 패션 산업에서 너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던 거다. 나는 이 회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옷이라는 더 큰 범주의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굳이 내 신념을 져버리면서까지 일할 이유가 없었다. 나중에 늙어서 관짝에 들어갈 때 되면 그렇게 환경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치는 패션 산업에 몸담고 있었던 사실을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신념에 맞게 사는 삶이 멋있다. 다른 빈티지 숍과 차별점이 있다면.
▶의류 렌탈도 하고 있다. 옷은 '소유하는 것'이라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 입고 반납한다'는 개념이다. 또 리워킹, 업사이클링을 한다. 두 개념이 다르다. 업사이클은 청바지를 활용해 가방을 만드는 식으로 제품의 본질이나 수단이 달라지는 것이고 리워크는 유행이 지나 안 입는 옷들을 작업자의 개성에 맞게 리폼해서 입는 거다. 가령 청바지를 리워크 한다고 하면 그대로 바지로 입는다. 업사이클링과 달리 제품의 본질은 그대로다. 재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디자이너처럼 작업자 고유의 개성과 창의력에 크게 좌우된다.
-업사이클은 많이 들어봤는데 리워크는 생소하다.
▶리워크까지 하는 빈티지숍은 많이 없었는데 근 3~4년 사이 비교적 늘었다. 리워크는 사람이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인건비가 들어 단가 자체가 높다. 그런데 최근 빈티지의 유행으로 말레이시아나 캄보디아 등에서 리워크만 전문으로 하는 공장이 생겼다. 열악한 환경에 노동자들이 더욱 생긴 거다.
빈티지는 환경을 생각해서 소비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쪽에서는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착취가 일어나고 있다. 빈티지가 주목을 받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어떠한 사업이건 간에 유행이 되거나 돈이 된다고 하면 잘못 해석돼서 그 가치가 훼손되는 일이 생기는 것 같아 아쉽다.
-빈티지 옷은 다 낡고 안 좋을 거라는 편견도 있는데.
▶오히려 반대다. 빈티지옷을 무작위로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라 소재의 질이 좋고 만듦새도 좋은 옷을 선별해 들인다. 옷이 좋은 소재로 잘 만들어져서 계속해서 입을 수 있는 상태인 것이고 그래서 중고로 살아남은 거다. 폴리에스테르 등으로 만들어진 옷은 소재가 좋지 않아 오래 입을 수가 없다.
빈티지 숍마다 숍을 운영하는 사장님의 취향이 크게 반영되는데, 노모뉴는 독특하고 화려한 옷들이 많다. 6년 동안 하면서 명품 브랜드 등 좀더 팔기 쉬운 옷들 취급을 해봤다. 내가 관심이 있고 내가 잘 입을 수 있는 옷들 위주로 판매하는 게 더 재밌고, 그게 노모뉴를 찾아주시는 손님에게 더욱 진정성을 보일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좋은 빈티지 옷을 구매하는 팁도 있나.
▶폴리에스테르 소재의 옷을 사지 않는 것이다. 폴리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옷이다. 소재 자체가 저렴하기 때문에 유행을 타 만들어진 옷일 확률이 높다. 빈티지 옷을 살 때 소재부터 확인하면 좋다. 소재는 옷 질의 지표가 되는 것 같다. 돈이 더 많이 드는데도 이 소재를 사용했다고 하면 더 까다로운 공정으로 만들어진 의미라서 그렇다. 보통은 자연에서 온 소재들이 좋다. 면이나 비스코스, 실크가 들어간 옷은 정성을 다해서 만들어진 옷이다.
사실 면이 너무 비싸져서 면을 생산하기 위해 물이 엄청 들어간다. 환경을 생각하면 거기서 거기일 수 있지만 그래도 오래 입는 방면에서는 자연에서 온 섬유가 차라리 나은 것 깉다.
-대구 토박이다. 빈티지 숍을 운영하기에 대구는 어떤가.
▶장사를 시작하면서 제주도나 서울 가면 더 잘 되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결론적으로는 거기서는 노모뉴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서울에 한 2년 살았었다. 사람도 많고 보고 듣는 것들도 많다 보니까 안 해도 되는 경쟁을 많이 했다. 개인이 흡수해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양은 제한적인데 한꺼번에 너무 많은 자극이 들어오니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없더라. 자연스럽게 타인과 나를 비교하게 됐다. '너무 날고 기고 잘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좀 초라하다'고 느끼는 거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조금 더 곱씹고, 누리고, 즐기는 거다. 그렇게 행복감을 천천히 늘려가는 거다. 나에게 집중하면서도 좋은 인프라로 살 수 있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이게 롱런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해서 대구에서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빈티지 옷을 선별하는 노모뉴만의 기준이 있다면.
▶첫째로 소재다. 소재 좋은 옷을 판매할 때 가장 큰 긍지를 느낀다. 소재가 좋으면 오래 입을 수 있어서 환경 차원에서도 좋다. 구김도 안 가고, 그냥 세탁기에 돌려도 될 만큼 튼튼하고 견고하다. 둘째는 예뻐야 한다. 소재가 아무리 좋아도 예쁘지 않으면 안 되지 않나. 세번째는 핏이다. 입었을 때 핏이 좋으면 그 옷에 손이 자꾸 갈 수밖에 없다. 세 가지 요소는 평상시에 옷을 구매할 때 기준으로 사용해도 무방하다. 그래서 안 팔리면 내가 입을 수 있다는 의지로 가져와서 판매하는 옷들이 많다.
-최종 목표가 뭔가.
▶노모뉴를 떠나는 것이 목표다. 노모뉴를 시작하면서 10년 제한을 뒀다. 이제 딱 4년 남았다. 우선 남은 시간 동안 의류와 관련해서 하고 싶은 것, 못해 봤던 것을 더욱 열심히 할 것이다. 그러면서 노모뉴 브랜딩을 더욱 공고히 해서 '대구 업사이클 브랜드'하면 '노모뉴'가 바로 떠오를 수 있게끔 확실한 입지를 다지고 싶다.
1노모뉴 10년 운영 목표가 채워지면 옷과는 완전히 다른 쪽으로 가보고 싶고, 그런 준비를 동시에 하고 있다. 여행하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여행하면서 뭔가를 담아내는 일을 하고 싶다. 20대 초반부터 30대에 오기까지 의류 산업에 몰두를 했다.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것이 정말 많은 사람이었다. 시간도 체력도 한정적이다보니 눈물을 머금고 줄여나갔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한 평생을 의류 쪽 일만 하면 후회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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