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아침] 저출생은 불평등의 문제다

입력 2024-09-03 12:43:14 수정 2024-09-03 18:03:34

권은태 (사)대구문화콘텐츠플랫폼 대표

권은태 (사) 대구문화콘텐츠플랫폼 대표
권은태 (사) 대구문화콘텐츠플랫폼 대표

세 사람이 무인도에 표류했다. 한 사람은 과학자, 한 사람은 신학자, 또 한 사람은 경제학자였다. 며칠 후 굶주린 그들 앞에 통조림 하나가 바다에 떠밀려 왔다. 그런데 셋 다 맨손이었다. 침묵 끝에 신학자가 "주여 저희에게 캔 오프너를 내려 주소서!"라며 기도를 했다. 과학자는 "이걸 저 태양이 내리쬐는 각도에 맞춰 몇 시간을 두면…"이라며 혼잣말을 했다.

그런데 경제학자가 나서더니 그예 이렇게 말했다. "자 여기, 우리에게 캔 오프너가 있다고 가정하자." 고전사회학 이론 첫 수업 시간이었다. 교수님은 "그래서 사회학이 세상에 나왔습니다"라고 했다. 물론 오래전 이야기다.

그간 세상이 많이 변했다. 1인당 국민소득은 7배가량 늘었고 고속열차와 비행기를 무시로 타며 회의를 영상으로 한다. 그런데 시간은 더 없고 몸과 마음은 더 바쁘다. 잘사는 나라가 대체로 그렇다지만 합계출산율은 0.72, 현재 출생률 꼴찌 국가다. 저출생 대응에 수백조원의 돈을 썼는데도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1970년 한 해 100만 명대이던 출생아 수가 50만 명대로 줄어드는 데 40여 년이 걸렸다. 그런데 그게 단 10여 년 사이에 다시 절반으로 줄었다. 게다가 지난해엔 전년 대비 감소율이 두 배로 뛰었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이런 상황을 흑사병으로 인구가 급감했던 중세 유럽에 비유했다. 그런데 정부의 정책은 한결같다. 무인도 이야기처럼 '돈을 주면 아이를 낳을 것이다' '돈을 버는 동안 누군가 아이를 맡아 주면 또 아이를 낳을 것이다'고 믿거나 가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돈이 없는 지자체는 조금 결이 다르다. 경상북도는 '저출생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응 부서를 '저출생과의 전쟁본부'라고 명명했다. 그런데 가뜩이나 전쟁 같은 삶을 사는 청년들에게 이게 통할지 모르겠다. 아이를 안 낳는 것이 범죄는 아니니 말이다. 좋게 봐도 아이를 낳으라고 말하는 당국의 의지가 얼마나 결연한지를 보여 주는 것이 무슨 효과가 있을까 싶다.

지난주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 브리핑 후 저출생 대책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저출생 인구 문제는 의료 개혁보다 더 어렵지만 꼭 해야 되는 문제라고 했다. 답변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개별 정책도 우리가 일과 가정을 양립하고 또 아이들을 자기 일 하면서도 국가가 맡아서 큰 부담 안 들이게끔 국가가 책임지는, 양육과 돌봄과 교육의 퍼블릭 케어를 철저하게 해 나가고 한다면 그런 개별 정책들도 많이 해야 되지만 의료 개혁, 노동 개혁, 교육 개혁, 연금 개혁 이런 것들이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을 위한 구조 개혁을 해 나가는 것과 인구 문제를 풀어가는 것은 결국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솔직히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가족의 가치를 다시 한번 일깨워 줘야 하므로 문체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도 했는데 그게 문체부가 할 일인지, 우리 국민이 가족의 가치를 깨닫는 데 문체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저출생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평등'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저출생 문제의 핵심은 불평등과 차별이다. 2017년에 나온 한 연구에 따르면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우리나라 청년의 51%가 '부모의 재력'을 꼽았다고 한다.

미국, 일본 등 다른 나라 청년 다수의 답은 '자신의 재능과 노력'이었다. 2023년에 방영된 한 방송사의 저출생 관련 다큐멘터리에서도 청년 10명 중 9명이 '부모 재력'에서 가장 큰 격차를 느낀다고 했다. 한마디로 출발선이 다르다는 것이다. 나 자신부터 앞날이 아득하니 결혼과 출산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인구학 권위자인 데이비드 콜먼 교수는 합계출산율 1.6을 넘는 나라 중에서 비혼 출산율이 30% 미만인 나라는 단 한 곳도 없다고 했다. 현재 한국의 비혼 출산율은 2.2%이다. 사회적 차별과 시선에 대한 두려움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가족의 전통적 의미와 가치를 되살리자는 것이 대통령의 말이라면 콜먼 교수의 말은 가족의 구성과 형태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년엔 단 한 명의 전문의도, 군의관도, 공중보건의도 나오지 않는다. 이렇듯 의료 시스템이 무너지면 아이를 낳고 키우는 건 더 어렵게 된다. 대통령은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제시한다면 노벨상 10개 정도는 받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답은 진즉부터 나와 있었다. 우리 사회의 격차를 줄이면 된다. 다만 그것을 외면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