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재봉 한국학술연구원장
카멀라 해리스는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 나흘째 되던 날인 지난 8월 22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되었다. 전당대회의 대미를 장식한 후보 지명 수락 연설 중 해리스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모든 국민을 대신하여, 정당, 인종, 성별 또는 할머니가 사용하는 언어가 무엇이었든 불문하고 모든 미국인들을 대신하여, 나의 어머니를 대신하여, 그리고 (우리 어머니처럼) 자신만의 불가능에 가까운 여정을 위해 길을 떠난 사람들을 대신하여, 제가 자라날 때 제 옆에 있었던 사람들, 즉 열심히 일하고, 꿈을 좇고, 서로를 보살피는 그런 미국인들을 대신하여,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에서만 쓸 수 있는 그런 인생사를 써 온 모든 사람들을 대신하여 저는 여러분의 미국 대통령 후보 지명을 수락합니다."
해리스가 말한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에서만 쓸 수 있는 그런 인생사를 써 온 모든 사람들'은 자신과 자신의 부모를 포함한다.
해리스의 어머니 샤말라 고팔란(1938~2009)은 인도 태생으로 19세 때 미국 버클리대학 영양학과 내분비학 석사과정에 합격하여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해리스의 아버지 도널드 해리스(1938년생)는 자메이카 태생 흑인으로 1960년 미국으로 건너와 버클리대학 경제학 박사과정에 입학한다. 유학생으로 만난 둘은 1963년 결혼하여 카멀라와 그 여동생 마야를 낳지만 카멀라가 7세 때인 1971년 이혼한다. 카멀라는 주로 어머니가 키운다.
'카멀라'는 산스크리트어로 '연꽃'을 뜻한다. 어머니의 고향인 인도의 이름이다. 미국에서는 결코 흔치 않은 이름이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트럼프가 카멀라의 이름을 어떻게 발음해야 좋을지 놀리는 이유다.
역시 시카고에서 열린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도 '삐쩍 마르고 웃기는 이름을 갖고 있는 아이'가 기조연설을 통해 일약 민주당의 미래로 떠올랐다. 그가 바로 그로부터 불과 4년 후인 2008년 흑인 최초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버락 오바마다.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이 '버락'이란 이름을 처음 들어본 것이 이때다. 버락은 아랍어로 '축복받은'이란 뜻이다. 그의 중간 이름은 '후세인'이다.
해리스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부통령, 최초의 흑인 부통령, 최초의 서남아시아계 부통령이다. 성별로 보나, 인종으로 보나 비주류 중의 비주류다. 더구나 그는 오바마처럼 흑인 중에서도 비주류다. 미국의 흑인들 중 일부는 미국에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의 후예만이 진정한 '흑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바마의 아버지는 케냐 출신 유학생이었다. 해리스의 아버지는 자메이카 출신이다. 이들은 흑인이지만 미국 대다수 흑인들처럼 흑인 노예의 후손이 아니다.
오바마는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은 물론이고 당선된 후에도 미국에서 출생하지 않았다는 음모론에 시달려 왔다. 이름이 이상하다고 끊임없이 조롱의 대상이 되어 왔다. 트럼프와 같은 미국의 주류 백인 남성이 유색 인종, 소수 민족을 공격하는 데 사용하는 가장 저열한 방법이다. 인격 모독이다.
오바마처럼 해리스도 비주류 중의 비주류다. 더구나 그는 여성이기까지 하다. 트럼프와 공화당은 계속해서 해리스가 'DEI'라고 공격한다. DEI란 'diversity' 즉 '다양성', 'equity' 즉'형평성', 'inclusivity' 즉 '포용성'을 뜻한다. 여성이나 유색 인종, 소수 인종 등 상대적 사회적 약자가 사회적으로 성공한 것은 본인의 실력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우선권을 주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그런 그가 여성에 대한, 흑인에 대한, 아시아계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고 샌프란시스코 검사로,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으로, 캘리포니아주 연장 상원의원으로, 미국 부통령으로, 그리고 미국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의 자리에 올랐다.
해리스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부상하기 시작하면서 선거는 일반 선거의 분위기와 달리 하나의 현상, '신드롬'으로 번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와 같은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저열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유학생, 이민 온 유색 인종의 자식이, 여성이,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그런 이야기는 진정 미국에서만 가능한 위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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