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모의 영혼의 울림을 준 땅을 가다] 파키스탄 장수마을 '훈자'

입력 2024-08-22 13:39:25 수정 2024-08-22 18:10:58

해발 6천 미터, 우리가 경험 못한 이 세상의 천국
훈자강과 높은 설산, 계곡 메운 빙하…어떤 화가도 담지 못할 만큼 매혹적
13세기 건설 발티트 성 대표 건축물
살구씨·기름·미네랄 포함된 빙하수…맑은 공기·小食, 세계 3대 장수 마을
가난함에도 마음은 풍요로움이 비결

세계 3대 장수마을인 파키스탄 훈자마을 주민들과 마을 뒷산에 올라 마을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훈자마을에는 살구나무와 미루나무가 평화롭게 일렁이고 있다.
세계 3대 장수마을인 파키스탄 훈자마을 주민들과 마을 뒷산에 올라 마을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훈자마을에는 살구나무와 미루나무가 평화롭게 일렁이고 있다.

◆ 여행자들이 꿈꾸는 아름다운 훈자(Hunza)마을

해발 6,000m를 넘는 봉우리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고, 계곡을 메운 빙하는 세월조차 얼린 듯 하얗게 멈춰 있다. 이 길을 나서는 여행자라면 꼭 들러야만 하는 파키스탄의 북쪽 장수마을 훈자(Hunza)다.

훈자강과 드높은 설산을 배경삼아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가 그려지는 훈자마을은 봄이면 살구꽃이 온 마을을 휘감고, 여름이면 짙푸른 녹색이, 가을이면 붉은 단풍이, 겨울이면 하얀 눈으로 옷을 갈아입는 곳이다.

발티트 성 베란다에서 훈자마을을 품에 안고, 어렵게 이슬람여인의 남편허락을 받아 함께 플랭카드를 펼쳐보이고 있다.
발티트 성 베란다에서 훈자마을을 품에 안고, 어렵게 이슬람여인의 남편허락을 받아 함께 플랭카드를 펼쳐보이고 있다.
알티트 성에서 훈자마을을 배경으로 플랭카드를 펼치니, 미루나무사이로 산과 하늘이 더 평화롭게 보인다.
알티트 성에서 훈자마을을 배경으로 플랭카드를 펼치니, 미루나무사이로 산과 하늘이 더 평화롭게 보인다.

배낭여행자의 천국이라 불리는 훈자는 감탄이 쏟아지는 자연경관 속 장수마을로도 유명하다. 고산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마을은 지친 여행자를 포근히 안아주는 따뜻함이 있다. 어떤 화가나 문학가가 이 풍경을 담아 낼 수 있겠는가. 바로 이곳이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이 세상의 천국인 훈자다. 이래서 훈자가 배낭여행자들의 블랙홀이라는 소리를 듣는 구나.

꽃잎 같은 아이들도 많지만, 아이의 얼굴처럼 맑고 밝은 얼굴을 가진 노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곳. 훈자를 다녀간 많은 여행자들이 경치에 대해 감동하지만 끝내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 말한다. 아무래도 사람은 자신이 사는 곳을 닮는 것이 아닐까.

압도적인 자연은 훈자가 가진 분명한 매력이지만, 누구나 한번 가보고 싶은 꿈의 장소가 된 것은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여행자들이라면 한 번은 이곳에 닿기를 희망하게 된 그 전설의 시작은 무엇보다 훈자 사람들의 따스한 정(情)에서 비롯됐다. 훈자에 혼자 가더라도 여행의 끝에서 여행자는 절대 혼자가 아닐 것이다.

파키스탄 훈자마을 맨 위쪽에 자리하고 있는 발티트 성은 역사적으로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곳으로 마치 동화에 나오는 작은 성 같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파키스탄 훈자마을 맨 위쪽에 자리하고 있는 발티트 성은 역사적으로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곳으로 마치 동화에 나오는 작은 성 같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 훈자의 랜드마크 발티트 성과 알티트 성

만년설로 뒤덮인 높은 산 아래로 흐르는 훈자강변에 자리한 훈자마을의 중심은 발티트 성(Baltit Fort)과 알티트 성(Altit Fort)이다. 역사를 지닌 훈자지역을 대표하는 건축물들로 양쪽 끝에서 훈자마을 내려다보고 있다.

마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발티트 성은 동네의 맨 윗자리에 있어 더 아름답다. 7,000m가 넘는 울트라 피크 앞에 하얀색으로 지어진 이 성 꼭대기에 올라서면 발 아래로 훈자마을과 웅장한 산맥들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13세기에 건설된 발티트 성은 1990년부터 1996년까지 성의 돌을 하나하나 분리했다가 다시 조립해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훈자를 대표하는 건축물로써 티벳의 건축가들에 의해 설계되어 티벳 건축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밤이 되어 성을 밝히는 불이 들어오면, 그 모습 하나만으로도 평화란 단어가 떠올려진다.

훈자강변에 높게 건축된 알티트 성은 적으로부터 방어를 위해 축성된 듯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한 훈자의 풍광이 새롭게 보인다.
훈자강변에 높게 건축된 알티트 성은 적으로부터 방어를 위해 축성된 듯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한 훈자의 풍광이 새롭게 보인다.

알티트 성은 맞은편 훈자강변에 높게 건축된 성이다. 밑을 바라보면 아찔하다. 적이 훈자강의 절벽을 타고 오르지 못하도록 지은 것일까? 왕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토록 위험한 곳에 성을 건설했나 보다.

3층 옥상에서 훈자를 둘러 싼 건너편 라카포시와 아직 구름이 걸린 뒷산의 레이디스 핑거 그리고 북동쪽에 보이는 골든 피크의 산봉우리들이 눈앞이다. 성을 휘감는 강물과 발아래의 훈자마을이 볼수록 아름답다.

훈자마을의 정서에 감사하며 사는 사람들. 이곳은 걷기만 해도 배움이 되고, 가만히 앉아서 보기만 해도 교훈이 되는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훈자마을의 정서에 감사하며 사는 사람들. 이곳은 걷기만 해도 배움이 되고, 가만히 앉아서 보기만 해도 교훈이 되는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 신비한 장수마을의 대명사 훈자마을 비결

훈자마을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장수'라는 단어이다. 세계적인 장수촌 훈자마을이 햇빛을 받아 노랗게 익은 살구나무사이로 하얗게 빛나고 있다. 자연의 가장 깊은 곳에 속한 삶. 이 척박한 산중이 세계3대 장수마을에 속한 이유도 그게 전부가 아닐까.

대단한 음식과 편리한 시설도 없으며, 풍족한 것이라곤 오로지 자연이 주는 것 뿐. 지리적으로 높은 수준의 운동이 활동적이고, 살구씨와 기름, 미네랄이 포함된 빙하 수 섭취가 수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훈자의 장수비결은 맑은 공기와 스트레스 없는 삶, 소식(小食)하는 습관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들은 정서적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완화하고, 의식적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을 때 휴식을 취하며, 휴식과 에너지 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전통가마에서 구워내는 난의 깊은 맛은 먹어보지 않고는 말할 수 없는 훈자의 맛이 가득 풍긴다.
전통가마에서 구워내는 난의 깊은 맛은 먹어보지 않고는 말할 수 없는 훈자의 맛이 가득 풍긴다.

해발 6,000m 이상 높은 산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오염시설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들은 짜이를 마시고, 느릿느릿 걸으며, 가난하건 부자건 하루하루가 더 이상 즐거울 수 없는 만족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곳에서 살면 장수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척박한 고원지대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강한 생명력에 감동받고, 문명의 이기를 벗어난 곳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최소의 음식으로 최대의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훈자 인들의 모습에서 행복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호텔 루프층에서 열린 이곳 유명인사의 딸 결혼식은 변화하는 훈자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호텔 루프층에서 열린 이곳 유명인사의 딸 결혼식은 변화하는 훈자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 안타깝게 변화하는 훈자마을

여행자가 묵은 호텔은 훈자마을의 산꼭대기에 있었다. 호텔 루프층에서 이곳 유명인사의 딸 결혼식에 투숙객들을 초청한다는 메시지가 붙었다. 훈자마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정장차림 사람들과 예쁘게 차려입은 아이들이 버스에서 내렸다. 호기심에 결혼식장을 찾았다. 산 아래 펼쳐진 훈자마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결혼식장과 하객들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을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곳이 고향인 신랑은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IT기업으로 성공한 재력가라고 한다. 한국인 여행자가 결혼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참석했다는 멘트가 나가자, 나와서 춤을 춰달라는 안내 방송이 이어졌다. 여행자도 나가 축하메시지를 전하고, 아리랑을 부르며, 흥을 돋우어 춤을 췄다. 참석한 하객들의 환호와 박수갈채를 크게 받았다. 이슬람의 파키스탄에서 여자들의 얼굴을 찍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일약 스타가 된 여행자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만나 마음껏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훈자마을에도 개방의 바람이 불어 여성의 교육과 더불어 게스트하우스의 딸부자집에서는 여행자에 대한 환대로 훈자마을의 홍보를 피부로 느끼게 한다.
훈자마을에도 개방의 바람이 불어 여성의 교육과 더불어 게스트하우스의 딸부자집에서는 여행자에 대한 환대로 훈자마을의 홍보를 피부로 느끼게 한다.

고립된 환경 속에서 자급자족하며, 오순도순 살아가던 훈자에 여행자들이 찾아오자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여행자들은 이곳저곳에 돈을 쓰며, 훈자주민들의 마음과 삶도 덩달아 바빠졌다. 그래서 그럴까, 이들의 평균 수명도 점점 떨어지기 시작해서 지금은 100세 넘는 노인들이 적어지고 있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오히려 평균 수명이 연장돼 초 고령사회를 걱정하는데, 훈자에서는 반대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훈자마을의 거리 모습은 물론 사람들의 마음도 해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 설산에 둘러싸여서 생활은 가난해도 마음만은 풍요로웠던 것이 바로 훈자의 장수 비결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카라코람 하이웨이가 생겨나면서 점점 더 문명의 이기가 들어오고, 필자와 같은 여행자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에게 생활의 스트레스를 많이 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러나 밀려드는 외부문명의 물결 속에서 얼마만큼 그 마음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인지, 훈자마을의 낙원은 도전에 놓여있는 것 같았다.

안용모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 ymahn110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