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물가 상승분의 10% 정도는 이상기후(異常氣候)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은행이 2001∼2023년 이상기후지수(CRI)와 산업생산, 소비자물가상승률의 관계를 분석해 19일 내놓은 '이상기후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실린 내용이다. CRI는 기온 변화, 강수량, 해수면 높이 등을 바탕으로 이상기후 변화를 보여 주는 지표다. 예상대로 이상기후 충격은 생산성을 갉아먹고, 물가를 끌어올렸다. 1980~2000년보다 2001~2023년에 영향력과 지속성이 더 커졌는데, 특히 2023년 이후엔 이상기후가 월별 소비자물가상승률에 미친 영향이 무려 10%에 달했다. 기후 변화의 직접 영향권에 들어간 것이다.
우리나라 곡물 자급률(自給率)은 20%, 식량 자급률은 4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이다. 이런 가운데 올해 우리 밀 생산량이 급감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전남 밀 재배 농가의 올해 생산량이 15~70% 줄었는데, 농민들은 이상기후를 원인으로 꼽았다. 국내 연간 밀 소비량은 250만t, 올해 우리 밀 생산 목표량이 10만t(소비량 대비 4%)인데, 예상 수확량은 3만5천t(1.4%)에 그친다. 정부는 2030년 밀 자급률 10%를 목표로 '밀 산업 육성 계획'을 추진 중인데, 쉽지 않아 보인다. 기후위기로 식량 생산이 줄어들면 전 세계 곡물값이 치솟고 수입조차 힘들어진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미래 질병 위험에 대한 인식과 대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 1천 명 대상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은 '기후변화 대응 및 녹색성장'을 저출산, 사회 갈등과 함께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 기후변화는 현재 직면(直面)한 위험 중 2위, 향후 5년 내 위험에선 1위였다. 올해 집중호우와 폭염으로 국민들은 기후변화의 위험을 훨씬 더 절감(切感)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 대응에 대해선 제대로 대처(對處)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66.4%에 달했다. 기후변화가 물가안정과 식량안보에 직접적 위협임을 국민들도 깨달았다는 의미다. 때를 놓치면 먹고사는 문제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 시간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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