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1일까지 부산 빌라쥬 드 아난티
길후 작가의 개인전 '불이(不二)'가 갤러리 학고재의 주최로 부산 기장군 빌라쥬 드 아난티에서 열리고 있다.
길후 작가는 1961년 부산 출생으로 계명대 미술대학, 동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2005년 서울예술의전당 젊은 작가상, 2021년 제11회 한국미술평론가 작가상, 2024년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대구와 중국 베이징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그가 수십년간 탐구해온 것은 만물의 근원과 감각의 영역을 초월하는 정신성이다. 고요한 깨달음의 순간을 담은 미륵불의 초상부터 세상의 창조적 에너지를 그려낸 유화, 이를 입체적으로 표현한 조각까지 하나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계속해서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다.
다양한 매체와 스타일의 작품을 관통하는 그의 예술적 화두는 바로 '깨달음'에 자리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 불학에 정진한 그는, 특히 불교에서 최고의 경지라 일컫는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위 없는 완전한 깨달음)'을 시각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2021년 학고재에서 개최된 '혼돈의 밤' 이후 3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으로, 전시 주제는 '불이(不二)'다.
불교 경전 '유마경'에서는 대립을 떠난 경지를 '불이'라 부른다. 즉 선과 악, 빛과 어둠, 내 것과 내 것 아닌 것의 경계가 사라져 일체 평등한 경지를 의미한다.
하지만 한 두 마디 말로 어찌 진리를 표현할까. 작가는 '불이'에 대한 유마거사의 묵묵한 침묵을 시각 예술로 표현한다.
그는 2010년대부터 선보인 '현자'와 '사유의 손' 연작에서, 계속해서 변화하는 인간의 삶에서 포착된 깨달음의 순간을 그려냈다. 인물을 전경에 크게 내세운 파격적인 구도와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그의 선에서 그 어떤 주저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다양한 재료를 두텁게 쌓아 올린 표면은 마치 동굴 벽화를 떠올리며, 종교적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고요한 어둠 속에 자리한 인물은 열반의 빛을 느끼는 모습으로 그려지거나, 그를 둘러싼 주변과 하나 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작품 속 '현자'는 부처인 동시에 작가이기도,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이기도 하다. 바르게 보고 행하는 수행을 거쳐 누구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작가는 2020년대부터 일필휘지의 에너지가 담긴, 선(線)적인 요소가 지배적인 유화를 선보여왔다. 흩날리듯 켜켜이 쌓아 올려진 자유로운 선에는 인연화합에 따라 흘러내리거나 솟구쳐 오르는 고정불변한 진리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인간의 형상 같기도, 커다란 나무의 모습 같기도 한 형체는 꿈과 같은 우리의 삶을 연상시킨다. 작가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즉 마음의 세상임을 상기시킨다.
전시는 오는 31일까지 이어지며, 작가의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구작 10점과 새롭게 선보이는 평면 및 조각 5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02-720-15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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