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취재기] 양팔 없는 왼발박사 "도보 종주의 초심을 잊지 않고 뚜벅뚜벅 걷고 있어"

입력 2024-08-04 17:21:35 수정 2024-08-05 08:23:27

지난달 15일 서울 광화문 출발해 1일 경북에 입성 문경새재 넘어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고 응원해 주고 있어 힘이 난다"

양팔과 오른 발이 없는
양팔과 오른 발이 없는 '왼발 박사' 이범식(왼쪽 두번째)씨가 1일 국도 도보 종주 문경새재 구간을 걸은 후 영남1관문에서 서보균, 김병회,기자(왼쪽부터)와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양팔과 오른발이 없어 '왼발 박사'라는 별명을 얻은 이범식(59·경북 경산)씨가 서울~경산까지 약 400km 국토 도보종주에 나선(매일신문 7월 15일 23면 보도)지 18일 만인 지난 1일 경북에 입성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왼발 박사'가 홀로 서울~경북 경산까지 약 400km 도보종주에 나선 이유는

최중증장애인인 이 박사가 '홀로' 지난달 15일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상 앞에서 출발해 경북 경산까지 약 400km 국토 도보 종주 '도전'에 나섰다. 종주 코스는 서울~경기도 성남~이천~충북 음성~괴산~경북 문경~예천~경북도청~의성~군위~대구~경산까지로, 약 40여 일간 우리 국토를 걷고 있다.

그가 몸이 성한 보통 사람들도 하기 힘든 국토 도보 종주에 나서면서 내건 메시지는 '대구경북 통합'과 '지방 장애인 복지 향상'이다. 특히 "저의 한 걸음 한 걸음을 통해 장애인들에게 어떤 도전을 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찜통 더위와 장맛비로 홀로 걷는 것이 쉽지 않아

이 박사는 지난달 15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상 앞에서 국토 도보 종주를 시작했다. 의족을 한 오른발에 길찾기 앱을 설치한 휴대전화를 이용해 도보길을 찾아가면서 국토 종주를 하고 있다.

하지만 길찾기 앱을 활용해 걷고 있지만 서울과 경기도 길은 매우 복잡한 데다 도로폭이 넓은 탓에 자동차들이 빠른 속도로 달려 매우 위험했다. 초행길이라 길을 잘못 드는 경우도 허다했다.

수시로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걷고 있지만 폭염 경보 속에서 아스팔트의 지열로 인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적고 금세 지쳤다. 장맛비가 내릴 때는 길이 미끄러워 균형잡기가 어렵고, 온몸이 젖었을 때에는 천근만근같은 무게감에 걷기가 너무 힘들었다.

양팔이 없고 한쪽 다리에 의족을 한 중증장애인이 도보 종주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사람들이 물이나 아이스크림, 음료수를 사서 먹여 주거나 땀을 닦아 주는 사람도 있다. 응원을 말을 건네는 사람들 등 따뜻한 사람들 응원 속에 지친 몸을 다시 일으키고 힘과 용기를 내 또다시 길을 나선다.

지난달 29일 이 박사가 충북 괴산에 도착했을 때 남룡사 성공 주지 스님과 신도회원, 괴산군청에서 이 박사에게 꽃다발을 목에 걸어주며 환영을 해 주었다.

◆경북 입성, 문경새재 넘어

그는 15일 서울 광화문을 출발해 경기도 성남~광주~이천~여주~이천 장호원~충북 음성~괴산을 거쳐 15일 동안(7월 18,19일은 장맛비와 선약한 특강으로 걷지 못함) 걸어 7월 31일 충북과 경북의 경계인 충북 연풍면에 도착했다. 그동안 약 180여km를 걸었다.

이 박사의 대장정 8월 1일 오전 소백산 자락인 충북 괴산군 연풍면 고사리마을 버스정류장에서 출발해 문경새재를 넘는 도보 종주에 나섰다. 문경새재는 새도 쉬어 넘는 고개라고 알려져 있다.

양팔과 오른 발이 없는
양팔과 오른 발이 없는 '왼발 박사' 이범식씨가 1일 국도 도보 종주 문경새재 구간을 서보균 전 경주교도소장과 걷고 있다. 김진만 기자

문경은 이 박사에게 특별한 곳이다. 아버지가 청도에서 하던 자동차정비업소에서 사고가 발생하면서 5세 때 탄광촌으로 문경 호계로 이주해 호계국민학교 6년 때 경산으로 전학을 가기 전까지 살았던 추억이 남아 있다.

이날 도보 종주에는 기자와 서보균(61) 전 경주교도소장, 김병회(78) 전 문경종합온천대표가 응원차 동행 종주에 나섰다. 서 전 소장은 이 박사가 대구교도소 교화위원으로 활동할 당시부터 알고 지내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일행은 조령산자연휴양림~영남제3관문(조령관)~영남제2관문(조곡관)~영남1제관문(주흘관)~문경도립공원 주차장까지 약 13km의 길을 함께 걸었다.

날씨가 35도가 넘는 무더위에 10여분을 채 걷지 않았는데도 온몸에서 땀이 흠뻑 흘렀고 숨은 턱까지 차오르지만 몸은 가벼웠다. 이 박사는 "그동안은 동행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외로웠는데 오늘은 동행자들이 있어 힘이 절로 솟는다"고 했다.

그는 오른발 무릎 아래는 의족을 한 상태라 40~50분 정도 걸은 후에는 꼭 쉬어야 한다. 의족을 낀 다리의 열을 낮추고 의족을 건조시켜야 의족과 닿은 피부가 짓무르는 것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박사와 함께 걷는 동안 그가 살아온 인생 이야기와 장애 극복기를 들으면서 그에 대해 좀 더 알게 됐다. 중간 중간 쉬면서 땀으로 흠뻑 젖은 그의 머리와 얼굴에 난 땀을 닦아주고, 물을 먹여 주며 의족이 마르도록 기다려주는 것 밖에 특별히 해 줄 것이 없었다.

그가 능수능란하게 휴대전화의 길찾기 앱을 수시로 들여다 보며 길을 걷고, 의족을 벗어 열을 식히고 다시 착용하는 일을 식은 죽 먹듯 쉽게 했다. 그저 놀라고 감탄하면서 그가 이렇게 자립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실패와 도전을 계속해 왔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짠하다.

◆"도움과 응원에 힘이 나요"

동반 종주 이틀째인 2일에는 문경읍~마성면행정복지센터~진남교반 휴게소~점촌북초등학교까지 구간이다. 기자와 김경범(62) 경북사랑의열매 나눔봉사단 문경시단장, 8대째 조선요의 맥을 이어가는 문경 조선요 대표 김영식(56) 도예가가 동행했다.

양팔과 오른 발이 없는
양팔과 오른 발이 없는 '왼발 박사' 이범식(오른쪽 두번째)씨가 2일 국도 도보 종주 문경읍~마성면 구간에서 동반종주를 하고 있는 김경범, 김영식 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김병회 씨가 이 박사에게 물을 먹여주고 있다. 김진만 기자

우리 일행이 마성면행정복지센터에 방문했을 때 지성환 면장과 전 직원들이 따뜻한 환영해 주었다. 경상북도 권영문 장애인복지과장 일행도 이 박사의 도보 종주 응원차 마성면을 방문해 맛있는 점심 식사 대접해 주었다. 또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격려말을 전하고 경북도 차원에서 도울 일을 적극 돕겠다고 했다.

마성면까지 동행한 김영식 도예가는 "일반인도 하기 힘든 종주를 중중장애인이 이렇게 하다가 의지가 대단한 분이다.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김경범 단장은 2일은 문경읍~진남교반 휴게소, 3일에는 점촌북초등학교~문경시청까지 동반 종주를 하며 이 박사에게 큰 힘을 실어 주었다. 그는 "그의 삶이 대단하다.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밝은 미래가 펼치지길 바라고, 도보 종주도 무사히 잘 마치길 바란다"고 응원의 말을 전했다.

3일에는 문경시청을 방문해 신현국 문경시장과 간부, 김경범 단장과 단원들, 서보균 전 소장 등으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양팔과 오른 발이 없는
양팔과 오른 발이 없는 '왼발 박사' 이범식(오른쪽 두번째)씨가 국토 도보종주 도 중 2일 문경시청을 방문해 신현국 시장(오른쪽 세번째)로부터 격려를 받았다. 독자제공

신현국 시장은 이 박사의 인생사와 문경과의 인연을 듣고 난 후 "이 박사는 외발 하나로 장애와 온갖 차별을 딛고 일어선 인간승리자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 주고자 하고 있는 도보 대장정을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잘 끝내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양팔과 오른 발이 없는
양팔과 오른 발이 없는 '왼발 박사' 이범식씨가 2일 국도 도보 종주 구간 중 문경시장실을 방문 기념으로 글을 쓰고 있다. 독자 제공

문경시청에서 다시 출발해 영순면행정복지센터에 도착하자 권순구 면장과 직원, 남기호 문경시의원 등이 휴일에도 이 박사 일행에게 음료수와 수박 등을 대접하며 환대해 주었다.

김병회 전 대표는 1~4일 나흘 동안 이 박사의 문경 구간 종주에 직접 함께 걷거나 걷기가 힘들때는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종주하는 중간 중간 물이나 음료를 공수해 주고, 하룻동안 구간 종주가 끝나면 이 박사를 숙소로 태워주는 등 누구보다 헌신적인 봉사를 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 폭염에 사지도 멀쩡한 사람들도 국토 도보 종주를 한다는 것이 너무 힘든데 이 박사는 중증장애인으로 도전정신이 귀감이 되고 존경스럽다. 이 때문에 마음을 다해 돕고 싶었다"고 겸손해 했다.

4일 오후 예천 삼수정에 도착한 이 박사는 5일 오후 쯤 경북도청에 도착할 예정이다. 이후에도 도전은 계속된다.

"이제 국토 도보 종주를 절반 정도 한 것 같습니다. 무척 힘들지만 도보 종주의 초심을 잊지 않고 뚜벅뚜벅 걷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착한 귀인들이 많아 중간 중간 도움을 받고 그래서 힘이 납니다. 특히 경북에 입성한 후 많은 사람들이 응원해 줘 도보 종주를 잘 마칠 수 있을 것 같고 힘이 불끈 솟습니다.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