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국회

입력 2024-08-14 20:14:49

정욱진 편집국 부국장 겸 대구권본부장
정욱진 편집국 부국장 겸 대구권본부장

최근 방송통신위원회 직원들이 국회에 "직원들을 너무 힘들게 하지 말아 달라"는 호소문을 보냈다고 한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통위 직원들은 국민의힘 국회 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위원들에게 보낸 공문에 "국회의 갑질로 직원들이 힘들다"는 내용을 적었다고 한다. 방통위 직원들은 제22대 국회가 개원한 이후 두 달이 넘도록 더불어민주당의 잇따른 방통위원장 탄핵, 현장 검증, 청문회 공세 등에 시달리느라 휴일도 없이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지금도 직원들은 여름휴가는커녕 주말에도 나와 에어컨도 안 나오는 사무실에서 고생하고 있다"며 "국회 스스로가 갑질의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도록 직원들을 힘들게 하는 수준도 적당해야 한다. 입법기관이 이래서는 안 된다"고 공문을 통해 호소했다.

한 원로 정치인이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고 할 만큼 초유의 사태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국회 과방위가 방통위 정쟁에 휘말리면서 정작 국가 미래가 걸린 과학기술은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것이다. 국가 경쟁력이 시급한 인공지능(AI) 기본법은 물론 R&D·바이오법·이공계 지원법 등이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대 야당이 지배하는 22대 국회는 이 외에도 지금까지 보지도 상상도 못 한 새로운 공식, 관례를 여럿 만들어 내고 있다.

야당이 법안을 상정하면 여당은 반대 필리버스터, 이어 야당의 강제 종료, 다음은 단독 통과다. 이렇게 만들어진 법안이 정부로 이송되면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발동해 다시 국회로 보낸다. 그러면 비록 소수 여당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3분의 2를 막을 수 있는 의석을 보유하고 있어 재의요구 법안은 폐기 처리된다. 그래도 야당은 끊임없이 법안을 재탕 양산해 국회 기능을 '다람쥐 쳇바퀴 돌기'로 변질시킨다.

일각에선 한 번 폐기 처리된 법안은 다시금 발의하지 못하도록 규정하는 특별법이 필요하다는 얘기까지 나올 지경에 이르렀다. 지역 한 정치인은 "이미 나온 법안의 문구를 조금 수정해 다시 발의하는 데 익숙한 국회의원들이 이런 특별법을 제정하지는 않을 테지만, 국민들이 어떤 눈높이로 국회를 바라보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며 "'국리민복'(國利民福)보다 잃어버린 정권을 되찾기 위해 방탄에 올인한 거대 야당이나, 이런 야당과 맞설 전략이나 정치력을 전혀 보이지 못하는 집권 여당 모두 한심하다"고 했다.

지인인 한 대학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우리나라 국회의 효과성은 34위다. 하지만 세비(연 1억5천500만원)는 3위(국민소득 대비)다. 생산성 불균형의 극치"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하루가 멀다 하고 정치를 희화화하고, 아이들이 보고 배울까 걱정될 정도로 국민을 부끄럽게 하는 의원들에게 이런 특권을 퍼 주는 게 과연 옳은 건지 생각하게 한다"고도 했다.

요즘 여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태를 보고 있자면 이곳이 과연 '민의(民意)의 전당'인가 싶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국회'라는 표현이 더 와닿는다.

다행히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여야 간 견해차가 크지 않은 민생·경제 법안들을 신속히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이런 민생 합의는 22대 국회 시작 두 달 만에 처음이다. '국회 무용론'이라는 비판에 반응한 결과물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황에 국민들은 먹고살기가 너무 팍팍하다고 아우성이다. 선거철만 되면 '국민의 머슴'이라고 떠들지 말고, 진짜 국민들을 위한 일꾼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