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심각한 정보 역량 부실…간첩죄 처벌 확대해야

입력 2024-07-30 18:50:26 수정 2024-07-30 21:27:58

수미 테리 ‘韓 대리 혐의’ 기소…군무원이 블랙요원 신상 유출
중국 이어 북한에 넘어간 정황…외국 공작원 활동 제동 법 발의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정부의 정보 역량 부실이 심각하다는 경고등이 켜지고 있어 제도 및 대책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가정보원 요원들이 미국에서 허술한 활동을 벌여 논란이 되거나, 군 정보 당국에서 군사기밀을 유출한 혐의자가 적발되는 등 부실 정황이 연이어 드러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현행법상 간첩죄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물론 국내에서 일어나는 외국 공작원 활동에 제동을 거는 방안 등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정보요원 인력 확충이나 기강·역량 확립과 함께 국익을 반한 행위로 적발됐을 때는 중대 범죄로 다루는 등 처벌 강화 목소리도 나온다.

중앙군사법원은 30일 군 정보요원 신상정보 등 군사기밀을 유출한 혐의를 받는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정보사 해외 공작 부서 소속인 A씨는 신분을 위장하고 첩보 활동을 하는 정보사 '블랙 요원' 신상 및 개인 정보가 포함된 다수 기밀을 중국 동포에게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군 수사당국은 유출된 기밀이 북한으로 향한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전해져 향후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A씨로부터 기밀을 넘겨받은 중국 동포가 북한 정찰총국 정보원일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에 앞서 미국에서는 국정원 요원의 활동상이 국내에서 큰 우려를 자아냈다. 미국 검찰이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을 한국 정부를 위해 활동한 혐의로 기소하는 과정에서 국정원 요원의 허술한 처신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 남부지검이 지난 16일(현지시간) 공개한 공소장에서 주미대사관 등에 파견된 국정원 요원들은 수미 테리에게 고가의 명품 가방과 옷을 선물하고 고급 식당에서 식사를 대접하는 모습 등이 사진과 함께 그대로 노출됐다.

이 같은 정보 당국 부실 정황을 향한 정치권의 성토가 쏟아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수미 테리 사건과 관련한 국정원 활동이 문재인 정부 당시 집중된 것을 거론하며 "문재인 정부 국정원의 기강과 역량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실도 관련자들에 대한 감찰과 문책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블랙 요원' 기밀 유출을 두고 "치명적인 기밀들이 줄줄 샌 것도 심각한데 유출을 은폐하려고 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용서해서는 안 될 국기문란"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외국에 기밀 등을 유출한 사람에 대한 처벌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비례)은 이날 국내에서 일어나는 외국 정보기관, 공작원 활동에 제동을 걸기 위한 '외국대리인 등록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군 당국의 '블랙 요원' 기밀 유출 사건까지 더해지자 아예 간첩죄 적용 대상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현행 형법상 간첩죄에서는 국가기밀 정보를 '적국'에 넘길 때만 형사 처벌하게 돼 있는데, 미국이나 일본, 중국 등 북한이 아닌 해외 국가에 대한 간첩 행위에 대해서도 처벌 근거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이 같은 근거가 담긴 법률안이 국민의힘 소속 주호영 국회부의장(대구 수성구갑)에 의해 지난달 21일 국회에 제출돼 있는 만큼 심사 등 후속 조치가 속도를 낼지 관심이 쏠린다.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는 비공개 전체회의를 열고 기밀유출 사고가 난 정보사령부 등 소관 기관에 대한 업무보고를 받았다. 회의를 마친 뒤 브리핑에 나선 여야 정보위 간사는 "좀더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오늘 문제(기물유출 사고)와 함께 '수미 테리' 사건 이후 정보 역량 침식 문제까지 신속히 복구해야 한다"며 "만약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정보위는 적절한 경고 조치를 할 수 있고 앞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국가정보원 출신이자 국회 정보위원장을 지낸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요원별 전문성을 살릴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계속 사고가 터진다"면서 "정보 업무가 정권에 따라 정치화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