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조선의 수도와 서쪽 경계는 어디일까?
고조선 수도는 평양, 국경선은 청천강…"韓, 中 일부였다" 시진핑 망언과 부합
발해조선의 수도와 서쪽 경계는 어디일까?
◆반도사학의 관점
사마천 '사기' 조선열전에 "한나라가 일어나자 패수浿水를 조선과의 경계로 삼았다.(漢興 至浿水爲界)"라고 하였는데, 이병도는 "패수는 지금의 청천강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한국사', 고대편, 을유문화사, 1959)
이병도는 또 "낙랑군의 수현인 조선현은 근래 발견되는 유적 유물에 의하여 지금 평양의 대안對岸인 대동군 대동강면 토성리 방면에 틀림없다고 알려져 있다"고 하였다.
고조선의 수도는 현재의 북한 평양에 있었고 중국과의 국경선은 청천강이었다는 것이 이병도의 기본 입장이다. 그 뒤 이병도의 주장은 노태돈, 송호정 등에 의해 계승되었는데, 다소의 견해차는 있지만, 큰 틀에서 고조선이 한반도에 있었다고 간주하는 입장은 동일하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연燕나라 진秦나라 한漢나라 시대에 압록강 서쪽은 모두 중국 영토였고 한무제가 조선을 침략하여 설치한 한사군은 한반도 주변에 있었다는 논리가 된다.
2000년 전에 한무제가 한나라의 식민지 한사군을 한반도에 설치했다면 시진핑이 "한국은 역사상 중국의 일부였다"고 한 말은 망언이 아니라 진실이다.
한국의 반도사학이 시진핑의 망언을 듣고도 말 한마디 못한 채 쥐 죽은 듯이 있었던 것은 자신들의 주장이 시진핑의 망언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민족사학의 관점
대동강 평양, 한반도 한사군 설을 배격하고 고조선의 강역을 압록강에서 하북성 동쪽 난하灤河 유역으로 확장하는 대륙사관의 기치를 든 것은 북한의 리지린이다.
리지린은 '고조선연구'(과학원출판사, 1963)에서 "우리가 만일 고대의 요수遼水를 오늘의 요하遼河로만 인정한다면 연燕의 요동은 오늘의 요동으로 되며 고조선은 태고 이래로 압록강 이남에만 거주한 것으로 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압록강이 태고 이래로 중국과의 국경선이었다면 오늘의 평안북도지역은 기원전 3세기 초부터 600~700년 간 중국의 지배하에 있었던 것으로 된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리지린은 "고조선의 강역은 서기전 3세기 초까지는 요동, 요서, 우북평까지 이르렀고 서기전 3세기 초에 서방의 광대한 영역을 연에게 탈취당한 결과 오늘의 대능하(패수) 이동지역으로 축소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요동군과 요서군의 기준이 된 고대의 요수를 현재의 요녕성 요하가 아닌 하북성 동쪽의 난하로 보고 고조선과 중국의 국경선인 패수를 현재의 북한 청천강이 아닌 요녕성 대능하로 본 것이 리지린 대륙사관의 핵심이다.
북한 리지린의 관점은 남한의 윤내현과 이덕일 등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 윤내현은 "고대의 요수는 지금의 요하가 아니다. 지금의 난하 유역이 고대의 요동이다. 고조선과 중국의 국경은 지금의 난하와 그 하류 동부유역에 있는 갈석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말하였다.('고조선 우리의 미래가 보인다'. 민음사, 1995)
이덕일은 최근 발간한 '온 국민을 위한 역사교과서'에서 "고조선의 강역은 지금의 요서 지역부터 한반도 남부까지였다"고 말하였다. 고조선의 서쪽 경계를 난하 이동으로 본 리지린의 주장을 따른 것이다.
◆필자(심백강)의 관점
고조선의 서쪽 경계를 압록강이나 청천강으로 본 반도사학의 관점은, 고대의 요수를 현재의 요녕성 요하로 파악하여 그 동쪽을 요동 서쪽을 요서라 인식한 데 따른 것이다.
반도사학이 낙랑군을 대동강 유역으로 간주한 것도 요동군이 오늘의 요하 동쪽에 있었다면 요동군 동쪽에 있던 낙랑군은 대동강 유역에 위치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한국사를 한반도에 가둬두려 했던 일본의 날조된 식민사관을 계승한 것으로서, '사고전서'를 통해 고조선의 수많은 새로운 자료가 쏟아져나온 현시점에서는 더이상 거론할 가치조차 없다.
지금의 하북성 난하가 고대의 요수이고 난하를 중심으로 요동, 요서가 나뉘었으며 난하가 중국과 고조선의 경계였다는 리지린의 주장은 고조선의 영토를 대륙으로 대폭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식민사학에 찌든 한국 반도사학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다만 리지린의 주장은 다음 일곱가지 문제점이 지적된다.
첫째 하북성 동쪽의 난하를 고대의 요하로 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리지린의 추정일 뿐 난하가 요하라고 직접 언급한 고대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하북성 남쪽 보정시保定市 역수易水는 역수의 다른 이름이 요수라고 남북조시대 대표적인 학자 유신庾信(513~681)이 직접 말했다.
역수가 요수라는 사실은 1500년 전 유신庾信이 직접 언급했다는 점에서 고대의 요수는 지금의 난하가 아닌 역수라고 보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둘째 리지린이 난하를 고대의 요수로 비정하는데 주요한 근거로 작용한 것이 갈석산이다. 현재의 갈석산은 바로 난하 부근 하북성 동쪽 창려현에 있어 리지린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리지린은 '사기' 소진열전의 "연나라 남쪽에 갈석산과 안문산의 풍요로움이 있다(燕南有碣石雁門之饒)"라는 기록을 간과했다.
전국시대 연나라는 하북성 쪽에 있었는데 현재 갈석산은 하북성 동쪽에 있다. 그렇다면 지금 하북성 동쪽 창려현에 있는 갈석산과 다른 갈석산이 연나라 때 하북성 남쪽에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유신이 요수라고 말한 하북성 보정시 역수 부근에는 중원과 동이를 가르는 천연의 분계선 백석산白石山이 있다. 연나라 남쪽에 있던 갈석산은 하북성 창려현의 갈석산이 아닌 역수 부근의 백석산일 가능성이 높다.
셋째 '회남자'의 "갈석산으로부터 조선을 경유한다(自碣石山 過朝鮮)"라는 기록이나 '전한서'에 한무제가 "갈석산을 지나서 낙랑군, 현도군을 설치했다"고 말한 것으로 볼 때 갈석산은 조선의 서쪽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현재의 갈석산은 조선의 수도였던 노룡현의 서쪽이 아닌 동쪽에 있어 조선을 지나 갈석산이 나온다. 위치가 뒤바뀌었다.
넷째 '진태강지리지'에는 "낙랑군 수성현遂城縣에 갈석산이 있다"고 말하여 갈석산의 위치를 수성현으로 밝히고 있는데 수성현은 낙랑군 25개 현 중의 하나이다.
하북성 동쪽 갈석산이 있는 현재의 창려현은 역사상에서 한번도 수성현으로 된 적이 없다. 그러나 남북조시대에 유신이 요수라고 언급한 지금의 하북성 남쪽 보정시 역수유역에는 수성진이 있다. '진태강지리지'에 말한 낙랑군 수성현은 현재의 하북성 보정시 수성진이고 갈석산은 수성진 부근의 백석산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다섯째 '태평환우기' 하북도 역주易州 역현易縣 조항에 연나라 소왕昭王이 현자 곽외를 예우하기 위해 역현에 갈석관을 건립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郭隗謂燕王 禮賢請從隗始 乃爲碣石館於臺前)
하북성 보정시 역수유역에 갈석산이 없었다면 왜 여기에 멋진 건물을 지어 갈석관이란 명칭을 붙였겠는가. 이는 갈석산이 역수유역에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연나라 남쪽에 갈석산과 안문산이 있다는 '사기' 소진열전의 기록과도 정확히 부합된다.
여섯째 '태평환우기'는 하북도 역주 역현 조항에서 연나라가 내수현에서 건국했다고 밝히고 있는데(淶水縣 周封召公於此) 내수는 역수 부근에 있는 강이다.
서주가 은나라를 멸망시킨 다음 동이지역인 하북성 남쪽을 침략하여 내수유역에 세운 제후국이 연나라다. 지금의 북경에서 연나라가 건국했다는 것은 근거 없는 낭설이다.
하북성 남쪽 내수유역에서 호타하까지가 연나라의 초기 영토였고 연나라 동쪽에는 고조선이 있었다. '사기' 소진열전에 "연나라 동쪽에 고조선이 있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일곱째 망도현望都縣은 하북성 보정시 역현 남쪽에 있다. 그런데 망도현에서 고조선의 상징 유물인 비파형 동검이 출토되었다. 보정시 망도현에서 출토된 비파형 동검은 역수유역이 고조선의 서쪽 경계임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된다.
연나라 시대 연과 고조선의 국경은 압록강이나 난하가 아니라 역수였다.
현재의 하북성 보정시에 있는 백석산과 역수가 연나라 진나라 한나라시대의 갈석산과 요수이고 시대에 따라서 다소의 변동은 있었지만 이곳이 고조선의 서쪽 경계, 즉 중국과 고조선의 국경선이었다.
북경은 고대 유주幽州이고 유주는 동북방민족 고조선의 영토였다. 고조선의 영토인 유주를 연나라의 강역으로 뒤바꿔놓은 것이 중국의 고대사다. 이를 되돌려놓으면 한국사가 바로 서고 동북공정은 무너진다.
역사학박사·민족문화연구원장(shimbg20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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