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천 사상 시작된 너른 집, 백성에게 유일한 귀의처였다"
또 다른 서라벌 '현곡' 천도교의 성지…몰락 양반 서자 수운 최제우 삶의 터
'오심즉여심' 깨달음을 갖게 된 집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는 용담정 찾아…쓸데없는 아집과 세상 근심 떨치시길
◆나를 키우고 넓히는 여정, 답사
경상도에는 혼이 베인 터가 많다. 깊은 골짜기이건, 강이 내려다보이는 기슭이건 채마 밭이건, 터는 저마다의 혼을 품고 시간의 무게를 축적하며 지금까지 견뎌 왔다. 그런 터를 지키고 선 '집'이 있다. 그냥 생계를 위한 집이 아니다. 사람을 일으켜 '터'에 세우는 위대한 집이다. 혼을 불어 사람을 눈 뜨게 하고 크게 하여 주변을 이롭게 하는 집이다.
답사는 터의 혼 밟기다. 그 터는 밟고 걷는 자의 혼도 그윽하고 깊어지게 한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주변, 경상도를 답사한다는 건, 경상도 터에 세워진 집다운 집을 알아가는 순례의 여정이다. 이 여정은 거창하고 웅장한 먼 곳을 먼저 찾지 않는다. 소박하지만 큰 뜻을 품어 세상을 이롭게 하는 나의 주변을 찾아, 그 터에 나를 세우고 나를 키우고 넓히는 여정이 우선이다.
◆경주 구미산이 품은 마을, '현곡'
경주에는 '현곡'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현곡은 경주, 아니 이 나라의 주변이다. 그런 현곡도 아파트가 우후죽순 들어서 더는 고즈넉한 풍경이 아니다.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뜻의 상전벽해(桑田碧海)한 현곡이다. 그렇지만 신축 아파트가 현곡의 본래는 아니다. 현곡은 또 다른 서라벌이자 또 하나의 경주다. 조선 후기 세상이 어지러울 때 또 다른 세상이 열린 곳이다. 현곡에는 너르고 넉넉한 집이 있다. 용담정(龍潭亭)이다.
1974년 구미산(龜尾山, 해발 594m)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천도교 성지 용담정을 품은 까닭이다. 구미산은 도대체 어떤 산일까. 용담정은 또 어떤 곳일까.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가 뜻을 품고 새로운 세상을 열었던 구미산 정상에서 나도 세상을 보고 싶었다.
구미산을 오르며 급하지 않으려 애썼다. 산세를 살피는 일, 산에 깃들어 혼을 품고 뿌리내린 것들에게 눈길을 주는 일, 그것이 나그네의 자세인 듯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산을 오른다. 그 와중에 자꾸만 한 사내가 생각났다. 아니 한 어른이 자꾸만 뇌리를 스쳤다.
'수운(水雲) 최제우(1824~1864)', 수운이 가고자 했던 길은 어디일까. 수운이 열고자 했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조선왕조는 안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특정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세도정치가 행해지고 백성은 도탄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새로운 세상이 필요했다. 수운은 성리학과는 전혀 다른 진리를 찾으리라 다짐했을 것이다.
◆세상의 너른 집, 용담정 가는 길
흔히 경주를 천년 고도로 부른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전적으로 옳은 말도 아니다. 경주의 주변, 현곡에서 조선을 뒤흔드는 자주적 근대사상이 개벽처럼 움튼다. 바로 동학이다. 이 땅과 뿌리가 다른 서학이 아니다. 경주는 수운으로 인하여 신라 고도에서 한국 근대사상의 진원지로 위상이 상승하게 된다.
용담성지 입구에 세워진 포덕문(布德門) 안으로 들어서면 당당한 기상을 품은 수운의 동상이 객을 맞이한다. 동상문엔 수운이 동학을 창도한 동기와 과정, 기본 이념이 담겨있다. 동상문을 읽고 수운의 동상을 올려다보면 그의 말씀이 천하를 쩌렁쩌렁 울리는 듯하다.
수운의 동상을 일별한 뒤 용담정으로 향한다. 급하지 않아야 한다. 여유롭게 걸어야 한다. 오솔길의 풍경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자연의 소리도 귀에 담는다. 숲을 채운 나무와 풀과 바람과 햇살과 교감하며 걸어야 한다. 온몸으로 걷는다. 그게 너른 집, 용담정으로 향하는 나그네의 도리다. 한참을 걷다 보면 어른 걸음으로 일곱 보폭 길이의 작은 다리가 나온다. 다리 밑으로는 계곡이 가깝게 누워있다.
다리를 건너면 성화문(聖化門)이 나온다. 성화문 안은 밖과 다르다. 안으로는 계곡이 제법 깊다. 불어오는 바람도 깊다. 성화문 오른쪽으로는 암반의 산세가 눈에 확연하다. 왼쪽으로 작은 길이 보인다. 길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숨이 턱턱 막힐 만큼의 급한 경사는 아니다. 완만하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렇더라도 방심하지는 않아야 한다. 마음을 붙잡고 한 걸음 한 걸음 정성껏 올라야 한다. 세상의 집이 이렇다. 처음부터 자기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오르막을 오르든 고개를 넘든 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의 집으로 갈 수 있다. 용담교에 이르면 더 깊은 계곡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야 용담교 건너편에 너른 집, 용담정이 자태를 드러낸다.
용담정 터는 순하고 평탄하다. 구미산의 가파른 산줄기가 이곳에 이르러 기세를 멈춘 듯 하다. 돌계단을 오르면 수운의 부친 최옥(崔鋈, 1762~1840)의 문집을 보관하는 용추각이 나타난다. 용추각 터도 평탄하다. 용담정과 용추각 주변에는 암반이 포진하고 있다. 마치 양기 가득한 용의 비늘 같다. 살림살이하기에는 적당한 터가 아니다. 반면 사람살이 하기에 적합한 터로 보인다. 구미산의 기운이 모이는 이곳에서 수운은 깨달음을 얻었다.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 수운
최제우는 몰락 양반의 서자였다. 모친 한 씨는 부친 최옥에게 재가하여 최제우를 낳았다. 부친이 양반이어도 모친이 재가한 몸이면 그 몸에서 난 자식은 서자로 취급받던 시대였다. 터무니없는 신분제였다. 최제우가 아홉 살 무렵 모친이, 열일곱 살 무렵 부친마저 세상을 떠났다.
무과 시험을 준비하던 스무 살 무렵 가정리 생가가 화재를 입어 소실된다. 1843년의 일이다. 한 해 전 울산의 밀양 박씨와 혼인한 수운은, 막막한 생계를 걱정해야 했다. 내일의 희망조차 없었다. 하여 현곡을 떠나 십여 년 세상을 떠돈다. 수운은 길에서 백성의 참상을 목격하고 서학의 불합리한 소문을 듣는다.
그러다 처가가 있는 울산 유곡동 여시바윗골 초가에 머무를 때 기이한 체험을 한다. 한 승려가 기도 방법에 관한 책인 을묘천서(乙卯天書)를 건네주고 사라진 것이다. 이를 계기로 수운은 내면을 더 파고들며 단단한 내공을 쌓기 시작한다.
1859년 10월 수운은 용담정으로 돌아온다. 자신의 본래 자리로 돌아온 거다. 십여 년 세상 공부와 수행의 최종 승부처는 조부와 부친이 터를 잡은 용담정이었다. 이름도 '제선'(濟宣)에서 어리석은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의 '제우'(濟愚)로 바꾼다. 용담정에서 수행을 거듭하던 수운은 1860년 4월, 무한한 허공에서 휘황한 빛이 가득 차서 뛰고 동하는 영적인 황홀경을 체험하며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 즉 '나의 마음이 너의 마음'이라는 한울님의 말씀을 듣는다. 이 순간, 용담정은 심산유곡의 정자가 아니라 우주의 너른 집으로 승화한다.
1863년 12월 수운은 조정에서 파견한 선전관 정운구에게 체포된다. 대구 감영에 수감된 수운은 유교를 어지럽히고 법도를 어긴다는 좌도난정(左道亂正)의 죄명을 받아 1864년 3월 10일 대구 장대에서 참형을 당한다. 그의 나이 마흔하나였다. 수운이 죽고 용담정에 사람의 발길이 끊기지만 너른 집은 사라지지 않는다. 너른 집에서 발원한 '인간의 근본은 같다'는 수운의 각성이 세상 밖으로 흘러 스며든 까닭이다.
백성에게 용담정은 어지러운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는 유일한 귀의처였다. 모든 사람은 다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인내천 사상이 시작되는 공간이기도 했다. 집은 몸과 마음을 누일 안식처이자 주변을 먼저 돌아 살피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렇게 용담정은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는 너른 집으로 탄생한다.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는 용담정 숲이 싱그럽다. 계곡물 소리는 힘차다. 매미 울음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용담정에 몸을 맡기니 기운이 인다. 여름에는 더 그렇다. 마음을 짓누르던 세상 근심이 사라진다. 가을이면 더욱 그렇다. 용담정 계곡에서 불타오르는 건 단풍만이 아닌 게다. 나그네의 미혹한 마음도 불타오른다. 용담정 암반에서 좌선이라도 한다면 쓸데없는 아집마저 재로 사그라진다.
누가 경주를 이야기한다면 나는 이렇게 이른다. 현곡에 가서 구미산 계곡의 너른 집, 용담정을 품고 오라고.
글 사진 양진오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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