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지하 탈출…제2의 '백사자 부부' 사태 멈추려면

입력 2024-07-03 12:58:33 수정 2024-07-04 09:39:09

네이처파크 이사 후 일상 따라가보니 넓어진 보금자리서 새 삶
폐업한 실내동물원서 방치됐던 펭귄·하이에나·사막여우도 활기

네이처파크 야외 방사장으로 이사 중인 백사자 부부
네이처파크 야외 방사장으로 이사 중인 백사자 부부

"동물에 대한 소유권을 사유재산으로 보고 있는 법·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또 다른 백사자 부부는 계속해서 나올 겁니다"

지난달 17일 백사자 부부가 7년 만에 바깥 세상으로 나왔다. 이들이 살던 곳은 빛 하나 들지 않는 2.5평 지하 공간. 신문지 다섯 장 정도의 좁디좁은 공간에서 이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제자리 걸음 뿐이었다. 이들은 네이처파크 동물원의 구조로 새 삶을 얻게 됐고. 흙 한번 밟지 못해 핑크빛이던 발바닥은 나날이 단단해져 가는 중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것이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백사자 부부에게는 다행인 일이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 쉬기에는 동물 사육에 대한 법망이 허술하다는 것이다.

◆새 보금자리 얻은 백사자 부부 어떻게 지내나

울창한 나무 사이로 보이는 백사자 두 마리가 햇살이 눈부신지 눈을 꿈뻑꿈뻑거린다. 베이지색 갈기가 바람에 흩날리고, 커다란 네 발은 어느새 흙투성이가 됐다. "사자는 야행성 동물이잖아요. 그래서 이 녀석들 지금 졸고 있는 겁니다"

네이처파크로 옮겨진 뒤 쾌적한 생활을 하고 있는 백사자 부부. 울창한 나무 사이로 보이는 백사자 두 마리가 햇살이 눈부신지 눈을 꿈뻑꿈뻑거린다. 베이지색 갈기가 바람에 흩날리고, 커다란 네 발은 어느새 흙투성이가 됐다.
네이처파크로 옮겨진 뒤 쾌적한 생활을 하고 있는 백사자 부부. 울창한 나무 사이로 보이는 백사자 두 마리가 햇살이 눈부신지 눈을 꿈뻑꿈뻑거린다. 베이지색 갈기가 바람에 흩날리고, 커다란 네 발은 어느새 흙투성이가 됐다.
네이처파크로 옮겨진 뒤 쾌적한 생활을 하고 있는 백사자 부부.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행복한 생활을 이어가는 백사자 부부를 보기 위한 관람객들도 줄을 잇고 있다.
네이처파크로 옮겨진 뒤 쾌적한 생활을 하고 있는 백사자 부부.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행복한 생활을 이어가는 백사자 부부를 보기 위한 관람객들도 줄을 잇고 있다.

백사자 부부가 대구 달성군 네이처파크로 이사 온지 어느덧 보름. 내실공간과 야외 방사장으로 나눠진 150여평 공간에서 백사자 부부는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네이처파크 손인제 사육팀장은 "지난해 8월 폐업한 실내 동물원에 백사자 부부가 방치돼 있었습니다. 상가의 경우 폐업을 하고 오래 놔둔다고 해도 상관이 없지만 동물들은 아니잖아요. 그렇기에 구조 과정이 빠르게 진행됐던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네이처파크는 해당 동물로 수익을 창출하기 보다 위급한 동물을 더 나은 생활환경으로 이동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매입을 결정했다. 이를 위해 경매 시 매입 금액을 낮추기 위한 의도적인 지연 과정을 생략하고, 가능한 빠른 매입 후 이동을 준비해 왔다.

"유리한 쪽으로 하자면 경매가격을 떨어뜨려 다음 회차에 진행 할 수 있었던건데 그런 것 보다는 열악한 곳에 있는 백사자 부부를 구출하는 걸 최우선으로 생각했습니다"

네이처파크 야외 방사장으로 이사 중인 백사자 부부
네이처파크 야외 방사장으로 이사 중인 백사자 부부

백사자 부부 이동에는 네이처파크와 협력관계에 있는 수의사, 이동 전문 업체가 참여했다. 사육장에 있는 백사자들을 안전하게 옮기기 위해서는 마취가 필요했고, 또 이들의 건강상태를 꼼꼼히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검진 결과 다리 곳곳에 나 있는 상처를 제외하고는 큰 건강상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게 백사자 부부는 2.5평에서 150평, 60배나 넓어진 보금자리에서 새 삶을 시작하게 됐다.

다만 이전 동물원에서 균형 잡힌 식사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평생을 닭고기만 먹고 지낸 것 같아요. 그래서 이곳에 오고 나서는 선지, 생간, 우족, 소고기 등 다양하고 싱싱한 고기들로 영양을 고르게 채워주고 있습니다" 백사자 부부의 이사가 특히 더 반갑다는 이도 있었다.

바로 사육사 최예나 씨. "네이처파크에 근무하기 전 백사자가 있었던 실내 동물원에서 3년 정도 근무를 했었어요. 누구보다도 해당 동물원 동물들의 사육 환경을 바꾸어 주고 싶었던 사람 중 하나고요. 가장 가까이서 봐 왔기에 백사자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화장실에서 생활하던 펭귄, 케이지에 갇혀 지내던 하이에나

네이처파크를 새 보금자리로 얻은 동물은 백사자 부부 뿐만이 아니다. 손인제 사육사는 네이처파크로 이사 온 몇몇 동물들을 소개하고 나섰다. "좁고 비위생적인 화장실에서 생활하던 케이프펭귄은 발견 당시 발이 짓물려 걷기조차 힘든 상태로 먹이마저 거부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보다시피 지금은 상처도 없고 건강해진 상태죠. 깨끗한 야외 환경에서 수영과 일광욕을 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좁고 비위생적인 화장실에서 생활하던 케이프 펭귄(왼쪽)은 수영과 일광욕이 가능한 깨끗한 야외 공간으로 옮겨졌다.
좁고 비위생적인 화장실에서 생활하던 케이프 펭귄(왼쪽)은 수영과 일광욕이 가능한 깨끗한 야외 공간으로 옮겨졌다.
좁은 케이지에 갇혀 지내던 하이에나(왼쪽)는 네이처파크로 옮겨진 뒤 넓은 야외 방사장에서 쾌적한 생활을 하고 있다.
좁은 케이지에 갇혀 지내던 하이에나(왼쪽)는 네이처파크로 옮겨진 뒤 넓은 야외 방사장에서 쾌적한 생활을 하고 있다.
미니돼지가 생활하던 열악한 공간(왼쪽)과 새롭게 네이처파크로 옮긴 뒤의 쾌적한 공간.
미니돼지가 생활하던 열악한 공간(왼쪽)과 새롭게 네이처파크로 옮긴 뒤의 쾌적한 공간.

이 외에도 사막여우 사라는 홀로 좁은 수조 안에서 생활했었다. 답답한 수조를 벗어나 네이처파크로 이동한 첫날, 사라는 새로운 생활 공간의 이곳저곳을 누비며 한참을 뛰어다녔다고 한다. 게다가 친구들도 생겼다. 기존 네이처파크에 서식하는 사막여우들과 함께 행복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비좁은 실내 전시 공간에서 생활하던 하이에나 2마리도 새 삶을 찾았다. 특히 1마리는 2년 동안 좁은 케이지에 갇혀 지냈고, 케이지는 분변과 오물로 덮여 케이지 문을 여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였다고.

백사자 부부의 이송 당시 해당 동물원에 남겨졌던 마지막 동물들까지도 네이처파크로 이사를 마쳤다. "가장 까다로운 암‧수사자 이관작업을 끝으로, 아이니테마파크에는 원숭이 3종과 파충류 일부만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동물들(긴팔원숭이 4마리, 알락꼬리여우원숭이 12마리, 사바나원숭이 1마리, 아나콘다 등 파충류)도 지난달 30일 네이처파크로 왔습니다.

사육장이 덜 만들어져 임시장에 둔 동물들도 있지만, 공사가 완료되는 대로 옮길 예정입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온 동물들이 좋은 여건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제 2의 백사자 부부 막으려면…남겨진 과제

백사자 부부와 케이프펭귄, 사막여우, 하이에나는 전보다 훨씬 나은 환경에서 지내게 됐다. 그렇다면 이 동물들이 열악한 실내 동물원의 마지막 희생양일까. 물론 아니다. 대구경북은 물론 전국에는 열악한 동물시설들이 여전히 영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동물자유연대의 '2023 전시·체험형 동물시설 사육환경·동물상태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동물전시체험시설은 300개소로 그중 동물원으로 등록한 민간업체는 88개소(29.3%)에 불과했다.

동물 관리 인력에 있어서도 1명이 92마리까지 돌보는 업체가 조사됐으며 총조사 시설을 보면 1명당 평균 53.5마리로 적지 않은 동물을 한 명이 관리하고 있었다. 특히 방문한 20개소 중 신선한 물 제공 여부의 경우 포유류 동물 총 1,692마리에게서 신선한 물을 제공받고 있는 마릿수는 667마리(39.4%)인데 그 중 털, 대소변, 이물질 등에 의해 오염된 물이 제공되고 있는 경우의 마릿수가 504마리(29.8%)나 차지했다.

이러한 동물 시설이 양산되는 데에는 법과 제도의 부재가 영향을 미친다. 동물자유연대 사회변화팀장 정진아 씨는 "동물에 대한 소유권을 사유재산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동물이 생명·안전의 위협을 당하더라도 지금의 법이나 제도로서는 동물구호를 위해서 조치를 취할 수 없는 여건입니다"라며 "이번 사례 역시 동물이 방치돼 있어도 제도적으로 개입 못했던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민간에서 나서 매입을 했기에 망정이지 그 전에는 어떤 법과 제도에 의해서도 구조조치를 할수 없었던 거죠" 라고 말했다.

백사자 한 쌍이 7년간 지하층에 방치될 수 있었던 것은 동물원 시설에 관한 별다른 요건이 없었기 때문이다. 해당 동물원이 조성될 때만 하더라도 '적정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라는 있으나 마나한 법령만이 시설에 관한 조건이었다. 다행히 지난 2023년 12월 동물원 시설 개원 및 운영 등을 다루는 동물원법 개정안이 시행되며 동물원 개원 기준은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강화했고, 운영 기준도 상향조정했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시설이 동물을 방치하거나 유기할 경우를 대비하여 정부에서 보호시설을 마련할 근거 조항도 규정했다. 다만 해당 시설의 소유자가 동물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시설 내 동물을 방치하거나 부적절한 환경에 가둬두어도 강제로 개입할 수는 없다. 동물원 시설에 관한 법은 마련됐지만, 동물을 사유재산으로 보는 법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전 동물원 주인이 백사자에 대한 소유권을 계속 주장했더라면, 백사자가 경매에 부쳐져 매입 대상이 되지 않았더라면, 과연 백사자 부부는 흙을 밟고 바람을 느끼고 하늘 높이 뛰어 오를 수 있었을까. 백사자 부부에게 쏟아졌던 관심만큼 우리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