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만 남긴 R&D 예산…흐트러진 연구 생태계 복원해야

입력 2024-06-30 16:35:35 수정 2024-06-30 20:11:32

내년 R&D예산 24조8천억원…작년 수준 복원

박상욱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이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2025년도 연구개발(R&D) 재원 배분 결과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상욱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이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2025년도 연구개발(R&D) 재원 배분 결과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예산은 복구됐지만, 상한 마음은 복구되지 못했습니다."

대구경북의 한 공과대학 교수의 말이다. 그는 "정부 정책의 수혜자 중 1, 2%가 지지자가 된다면 손해를 본 사람은 80~90%가 정부를 비판한다"는 말로 자신과 동료 교수들의 마음을 전했다.

지역 한 공학박사는 "날아간 연구개발(R&D) 예산이 돌아왔다고 해서 당장 종전 수준으로 연구인력 정원과 연구 성과가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한번 깨진 연구 연속성이 회복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정부의 R&D 예산이 1년간 혼란만 남긴 채 결국 지난해 수준으로 편성됐다. 정부는 그간 '나눠먹기식 사업'을 구조조정한 결과라면서도 과학계를 다독이는 데 힘을 쏟지만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는 분위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최근 열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를 열고 '2025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안'을 의결했다. 이 안에 따르면 내년 국가 주요 R&D예산은 24조8천억원으로 대규모 삭감을 겪은 올해(21조9천억원)보다 13.2%(2조9천억원) 증가했다. 지난해(24조7천억원)와 비교하면 1천억원 늘었다.

정부는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나눠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말 한마디에 R&D 예산을 큰 폭으로 삭감했다. 관련 예산이 삭감된 것은 1991년 이후 33년 만에 처음이었다. 이에 따른 연구 현장의 혼란은 적지 않았다. 예산이 줄면서 대학들은 인공지능(AI) 등 차세대 산업 분야 연구원 수를 줄였다. 연구 지원이 사라지면서 특히 젊은 연구자들이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한 과학기술계 관계자는 "몇 년 새 배터리 분야가 급성장하면서 관련 연구 인력이 1천 명을 넘겼는데 예산 삭감으로 석박사 인력을 내보내는 등 연구를 중단해야 하는 곳도 생겼다"고 전했다.

이어 "삭감한 예산을 1년 만에 도로 복원했다는 것은 올해 R&D 예산 정책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는 꼴"이라며 "정부의 오락가락한 정책은 이공계 학생들에게 우리나라가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인식을 심어줬다"고 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복원이나 회복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세계적으로 치열한 패권 경쟁이 일어나고 있는 이른바 '3대 게임 체인저 기술'(AI 반도체·양자·첨단바이오)에 주요 R&D 예산의 14%를 몰아주는 등 질적 변화를 이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상황은 예산안 규모 회복과 추가 지원책 제시, 유화적인 메시지를 통한 과학계 다독이기로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박상욱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비서관은 지난달 27일 브리핑에서 "재정 여력이 정말 없는데도 최선을 다해 큰 폭으로 증액한 것"이라며 "주요 R&D 예산은 2023년도보다 조금 큰 수준이지만, 내용상으로는 환골탈태에 가깝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힘든 상황에도 연구 현장을 지키고 있는 연구자와 이공계를 선택한 학생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김현덕 경북대 첨단정보통신융합산업기술원장은 "세계가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R&D 예산은 국가적 전략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시간을 두고 세밀하게 정책을 만들고 과학기술계와 대화를 통해 기초와 응용에 투자하는 비중을 적절히 조절했다면 더 많은 성과를 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