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식객 이춘호의 미각기행] <13>삼복 복달임의 인문학

입력 2024-06-21 12:30:00

뜨거운 여름, 지친 가족에 내어주는 사랑의 한 그릇
찜통더위지만 몸 안에는 냉기 가득…염소탕·육개장·닭백숙 먹으며 보신
개 식용 목적 식육·도살·판매 금지…보신탕, 저주의 먹거리 폄훼되기도

2024 삼복(三伏)이 눈앞에 도래했다. 오는 7월 15일부터 8월 14일까지. 옛글에 따르면 삼복이란 '가을의 기운(金)이 염천 세 굽이 속에 바짝 엎드려 있는 형국'이다. 하지 후 세 번째 경(庚) 일이 초복, 네 번째 경 일은 중복, 입추 후 첫 경일은 말복이다. 그 안에 입추가 끼어들어 있다. 더위의 절정이지만 이미 가을이 와 있는 것이다.

굵은 대파와 소고기를 끓인 육개장, 이 소고깃국은 개 대신 소를 사용해 끓인 개장국의 변형이다.
'가마솥 정신', 그게 결국 어머니의 손맛, 그리고 남편과 자식의 무병장수를 바라는 모정이 아닐까 싶다. 온갖 정성이 가득한 곰탕 한 그릇은 태양이 가장 절정으로 향하는 삼복철의 이열치열의 기운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복달임 문화

보양식의 절정은 '보신탕'이었다. 중국 사기에 '이구어고'(以狗禦蠱)란 구절이 나오는데 이는 '삼복에 독충이 창궐하는 걸 개를 갖고 막았다'는 의미다. 개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구체적인 구절은 없다. 후인들은 그 대목을 보고 개를 잡아 보신탕을 해 먹은 것으로 풀이했다. 사실 중국의 보신탕 문화는 우리와 비슷하게 유구하다. 공자 시절에는 개고기를 '향육'(香肉)이라 했다.

삼복, 찜통더위에 갇힌 몸의 안과 밖 온도 차는 상당하다. 밖은 지글거리지만 몸의 내부에는 냉기가 감돈다. 그래서 '이열치열'(以熱治熱) 전략으로 온갖 보양탕을 챙겼다. 오뉴월을 무사히 건너기 위해서는 어머니(아내)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그 옛날, 세거지 대가족의 삶, 부부의 삶은 통과의례에 따라 자동적으로 돌아갔다. 절기마다 해야 될 매뉴얼을 공유했다. 출세를 위해 대처로 나갈 이유가 그다지 많지 않았던 시절. 십리 고향 언저리에서 살다 죽으면 선산에서 영면했다. 사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의 궤적은 음양처럼 부합했다. 둘 다 숭고했다.

그래도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세상이었다. 층층시하 속에서 여성은 속맘을 속시원하게 드러낼 수 없었다. '칠거지악'(七去之惡) 때문이었다. 시집가면 여자에게 친정은 갈 수 없는 고향이었다. 이름도 없었다. 그냥 본관과 택호로만 살았다. 남편은 아내와 거리를 둔 채 사랑방에서 세월을 보냈다.

엄마는 삼신할매였다. 집안을 살리는 현모양처이자 자식들에게는 영원한 사랑의 품이었다. 선인들은 그 숭고한 기운 앞에 '살림'이란 말을 봉헌했다. 살림이 정점에 도달하면 아내는 사라진다. 그 자리에 '어머니'란 새로운 대륙(地)이 열린다. 한 가문의 생명이 거기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것에 조응해야 아버지란 하늘(天)도 비로소 엄정해진다. 제대로 된 가문의 법도였다.

◆남녀란 절대조건

남자와 여자. 하늘과 땅처럼 우열의 조건이 아니라 생존의 절대조건이다. 땅만을 위한 땅, 하늘만을 위한 하늘, 그럼 세기말 비극이 전개된다. 그럼 대기가 순환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저기압과 고기압도 평행선을 긋고 그럼 비도 없을 것이다. 궁극에는 오곡백과는 절멸하고 생명은 자동적으로 전멸한다.

아무튼, 땅의 역사, 그 센터에 자궁을 둔 여자의 역사는 장구했다. 부계보다 모계(母系)의 시간이 더 두터운 지층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가부장'이란 이름의 남존여비 세상이 강물을 이루었다. 하지만 얼마전부터 그 강줄기는 '양성 가부장'이란 이름의 바다에 이른다. 남편보다 아내의 일상이 더 파워풀해진 게 사실이다. 자연스럽게 보양식의 문화도 부엌의 범주에서 벗어나 식당으로 가고 있다.

◆깡아리 센 대구 더위

참으로 깡아리가 센, 그러면서도 제대로 익은 대구의 오뉴월. 그 무렵 남정네들은 출전하는 무장의 기세로 '별식'(別食)을 탐식했다. 보양식의 상징이었던 보신탕! 특히 경상도는 대한민국 보신탕 사령부나 마찬가지였다.

대구에서 왜관으로 연결되는 지방국도변은 그 무렵 개를 사고파는 시장으로 변했다. 보신탕은 묻지마 삼복의 복달임 통과의례식이었다. 원대동 '대원식당', 경주의 '한양식당' 등은 보양식의 성지로 군림하게 된다. 일제강점기 만주로 건너가 눌러앉은 경상도 출신 조선족에겐 아직도 귀한 손님 대접용 최고 음식이 보신탕이다. 조선족과 북한에서는 보신탕을 '단고기'라 한다.

하지만 이제 법적으로 개고기를 먹기 힘들게 돼버렸다. 지난해 6월 개를 식용 목적으로 사육, 도살, 유통, 판매하는 걸 금지하는 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지난 2월부터 시행이 되기 시작했다. 정부는 보신탕 관련 식당의 폐업에 따른 각종 보상책을 마련 중이다. 보신탕은 단군 이래 가장 유구한 역사를 가진 전통음식이었지만 반려견이 가축이 아니라 '가족'으로 등극한 이상, 저주의 먹거리로 폄훼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소양이 들어간 현풍의 특미로 불리는 현풍할매곰탕.
굵은 대파와 소고기를 끓인 육개장, 이 소고깃국은 개 대신 소를 사용해 끓인 개장국의 변형이다.

◆보양식과 건강식

어머니는 보양식, 아버지는 건강식이었다. 아버지는 '바깥일' 그리고 아내는 가정 내 살림을 커버했다 그래서 남편은 '바깥사람', 아내는 '안사람'으로 통용됐다. 남편은 '투수', 아내는 '포수'였다. 돈을 벌어 아내의 글러브 안에 잘 넣어주면 그 자식이 괜찮은 사회인으로 무럭무럭 성장하게 된다. 결혼하고 아이 놓고, 그 아이 모두 결혼시켜 분가할 때까지. 그게 잘 되면? 두말할 필요 없이 '홈런'이다.

그런 어느 날부터 여성이 가장 구실을 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어느 집안이나 여성의 발언권이 압도하는 '여존남비(?) 세상이 도래한 것일까. 세상은 투덜대는 남정네들을 향해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고 했다. 나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모르긴 해도 자식이 명문대학에 가야 출세하는 시절, 그래서 혈투적으로 사교육에 의존하다 보니 어느새 아내의 발언권이 절대적이 된 것 같다. 이로 인해 조부모와 친척과의 시간이 사라지고 심지어 시월 상달 집안 묘사에서도 '열외'가 됐다.

그럴수록 아버지는 '돈 버는 기계'로 변해갔다. 늙어서도 발언권이 없어졌다. 자꾸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의 권위는 엄존했다. '아버지란 그 이름' 때문에 극강 비즈니스 세상에서도 버텨야만 했다. 남의 가랑이 사이라도 기어들어 갔다. 지금은 그 광경이 사라졌지만, 매달 정해진 날에 아내에게 전해지던 누런 월급봉투. 삼복 철, 아내는 남편의 고생을 잘 알기에, 그 봉투 받기가 여간 미안한 게 아니었다. 그 딸의 엄마인 장모는 더더욱 그랬다. 그런 맘이 십전대보탕 같은 보약 특수를 발흥시켰다. 한의사와 약전골목 한약재 약업사는 즐거운 비명을 질러댔다.

그 애틋한 맘 위에 피어난 복달임 음식이 바로 '보양식'이다. '보약'도 동행했다. 그걸 먹고 난 남자는 아무리 절망스럽고 괴롭고 서러워도 묵묵히 인내한다. '비겁하게 도망치지 말자' 그게 그 시절 가장들의 '거룩한 신사협정'이고 불문율이었다.

오뉴월 들일을 나간 남편을 위해 아내가 이고 온 막걸리 새참, 농경사회 가부장이 중노동에서도 버텨나갈 수 있는 또 다른 보신의 음식이었다.
소양이 들어간 현풍의 특미로 불리는 현풍할매곰탕.

◆보양식의 계보

그 시절 보양식에도 나름 계보가 있었다. 맏형은 보신탕이었다. 그걸 잘 못 먹는 이들은 염소탕, 다음은 육개장과 닭개장, 돼지찌개, 그리고 곰탕, 마지막에는 인삼과 황기, 당귀, 대추 등 좋은 한약재가 들어간 닭백숙이 있었다. 광복 전에는 백숙이 강세였는데 90년대로 접어들면서 삼계탕과 각종 장어 요리가 신 보양식으로 등장한다. 이 사이를 냉면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천렵을 해서 잡은 잡어로 민물매운탕도 해먹었다. 팥빙수와 수박 화채는 최고의 디저트였다.

하지만 전라도 목포권으로 가면 단연 '민어탕'이 최고의 보양식이다. 부산‧통영마산권은 장어탕, 여수권은 갯장어(하모)탕이 삼계탕을 밀어낸다.

◆ 보양식과 건강식

이제 아버지의 보양식을 집에서 직접 해주는 어머니는 거의 없다. 아이의 보양식, 반려견의 보양식만 있다. 아버지는 '투명인간' 같은 존재다. 세상의 흐름이니 받아들여야 한다.

아버지의 보양식은 고단기어를 달고 건강식으로 건너가고 있다. 건강보조식품 춘추전국시대. 수제 보양식은 진기(生氣) 가득했다. 본연의 맛과 성분, 그리고 정성이 첨가됐다. 그게 '엄마표'랄 수 있다. 하지만 제조사가 공급하는 공장표 건강식품은 정성보다 마케팅전략이 더 중시된다. 느닷없이 '만병통치약'으로 팔린다. 나는 한때 정말 효과가 확실한 건강식품이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관계 전문가들의 견해를 취재한 적이 있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이 있었다. 효과가 입증된 게 거의 없다는 사실, '면연력! 어쩌구 저쩌구' 하는 주장 중 의학적으로 검증된 게 내가 알기로 한 건도 없었던 것 같다. 건강식품은 의약품이 아니다. 한 식품이 약품으로 평가받으려면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장구한 시간의 고난도 임상실험이 포함된 메타분석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건 너무 어렵다. 그래서 실험실 쥐를 통해 특정 성분 특정 약효 검증 데이터를 갖고 침소봉대 식으로 광고한다. 건강식품이 아무리 좋다고 호언장담 하지만 제철 채소와 과일, 산과 들의 제철 풀들의 진정한 에너지보다는 더 나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장 좋은 것은 어쩜 이름 없는 잡초이거나 그 흔하다는 물과 공기, 더 근원적으로는 무한하게 공짜로 사용하고 있는 저 태양의 열기가 아닐까 싶다.

오뉴월 들일을 나간 남편을 위해 아내가 이고 온 막걸리 새참, 농경사회 가부장이 중노동에서도 버텨나갈 수 있는 또 다른 보신의 음식이었다.

부모는 가족이란 세계를 지켜주는 또 다른 '태양'이다. 그 태양이 가장 뜨겁고 가장 힘겨울 때가 바로 삼복. 자식은 부모, 남편은 아내, 아내는 남편을 위해 사랑의 맘을 대접해주자. '정말 고생합니다. 덕분에 행복하니 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이 말을 능가하는 보양건강식이 있을까. 이 말만 있으면 굳이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운운할 필요가 없다. 보신(補身)이 아니라 완벽한 '보심'(補心)의 주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