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전 사회부장
'화륜거(기차) 소리가 우레와 같아 천지가 진동하고,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했다.'
1899년 독립신문은 국내 최초의 협궤열차를 이렇게 보도했다. 이동 거리는 서울 노량진-인천 제물포 간 33.2㎞였고, 속도는 20㎞/h를 넘지 못했다. 현대 기술과 비교하면 당시 표현은 '과대 광고' 수준이다. 뼈아픈 역사도 숨어 있다. 산업 발전을 위해 건설된 게 아니라 조선의 물자를 착취하기 위해 일본에 의해 건설됐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초기 철도는 사실상 '수탈의 역사'다.
철도만 보더라도 지금의 대한민국은 참으로 대단하고 자랑스럽다. 철로는 4천㎞에 달해 100배 이상 길어졌고, 속도는 20배 빨라졌다. 전쟁 직후 아프리카 빈민국보다 가난했던 한국은 현재, 세계 200여 개 국가 중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부자 나라로 성장해 있다.
우리는 또 산업혁명 이후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세계 유일한 나라다. 가난과 질병, 기아의 고통을 겪던 게 언제였냐는 듯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를 누리며 최저 문맹률까지 자랑한다. 지구상 어디를 가더라도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를 찾아보긴 어려우니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하지만 속살을 조금만 들춰 보면 끔찍할 정도의 갈등 구조가 도사리고 있다. 갈등과 반목이 우리처럼 깊게 파인 나라가 어찌 이리도 잘 성장해 왔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종전선언이 이뤄지지 않아 남북으로 쪼개진 문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수도권과 지방으로 갈려 있는 데다 동서로도 너무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의대생 증원 문제를 놓고 의료계와 정부가 전시를 방불케 하고 있고, 양곡법은 농민과 도시민 사이를 갈라놨다. 중대재해법과 노란봉투법으로 경제인과 노동자들이 서로 적대시하는 데다 젠더와 세대별 갈등 등 사회 곳곳이 반목과 대립투성이다.
누구보다 고민해야 할 정치권이지만 갈등을 더욱 부추기고 있으니 한심한 꼴이다. 국회의원들은 여전히 '민주화'와 '산업화', 두 세력으로 갈라져 지금의 발전상이 자기들만의 전리품인 양 착각 속에 빠져 있다. 선거에 한 번 이기기라도 하면 영원히 권력을 누릴 것처럼 거만을 떠는 모습도 이젠 익숙해졌다.
그러는 사이 경제성장은 곤두박질쳤고, 수출과 소비는 동반 하향세를 탄 지 오래다. 최근엔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초청 대상에서 제외되는 수모까지 겪었다.
성장 동력을 상실한 주요 원인은 모래알 같은 분열상이다. 상대방을 물어뜯기만 하는 갈등 구도 속에서 발전을 기대하기란, 폭식을 즐기며 살 빠지길 고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들이 편할수록 임금의 존재가 작아져야 하지만, 지금은 국태민안(國泰民安) 같은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국민생산 5만달러 시대에 진입하느냐, 다시 후진국으로 돌아가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리더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커야 하고 중요한 시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이제부터 (제대로) 정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정작 할 일은 뒤로 미뤄 놓은 채 진영 간 갈등을 키우는 정치가 계속되면 나라의 미래도, 국민의 민생도 어두울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앞으로 남은 3년, 할 일을 제대로 해내길 응원한다. 정치적 호불호를 떠나 국익을 위해, 우리 후손을 위해 응원하는 것은 국민으로서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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