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포 50곳 이르렀던 이천동 고미술거리
재건축 등 악재로 상인 다수 떠나거나 폐업…현재 18곳에 불과
소프트웨어적 가치 발굴 미진한 구청 도시 재생 아쉬워
“지역주민과 외부인 모두가 공유할 가치 발굴, 탐색해야"

29일 오후 찾은 대구 남구 이천동 고미술거리. 문을 연 가게는 카페와 식당을 제외하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수십년을 그 자리에 있던 것 처럼 오래돼보이는 고미술품 가게 유리 너머로 잔뜩 놓여있는 고미술품은 먼지가 앉은 채 닫혀있었다. 고미술품을 취급하는 가게 중 문이 열린 가게는 3곳 정도에 불과했다.
◆고미술거리는 쇠락 중
동서 방향으로는 대봉로에서 이천로까지 약 300m, 남북으로 이천 어울림도서관부터 대구도시철도 3호선 건들바위역이 있는 명덕로까지 약 300m 구간에 자리잡은 고미술거리는 1960년대부터 자연스레 형성됐다.
대구에 주둔하던 미군들이 한국 토속 기념품을 찾으려는 수요에 힘입은 영향이 컸다. 이천동 고미술거리는 호황기에는 대구뿐만 아니라 전국, 나아가 일본 등 외국에 있는 애호가에게도 인정받는 대구를 대표하는 명소로 이름이 드높았다. 그러나 현재 이곳 거리에 있는 고미술품 가게는 20개가 채 되지 않는다.
이천동 고미술거리의 마지막 호황기는 지난 2008년 당시 지식경제부로부터 '고미술 특화거리'로 선정될 때였다. 이후 시작된 아파트 재건축은 이 지역의 고미술품 상인들을 몰아냈다. 높아진 지대를 감당하지 못한 상인들과 일반 시민들의 이탈이 시작되며 지역 전체가 침체에 빠진 것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을 지나며 이천동 고미술거리의 쇠락은 빨라지고 있다. 상인 다수가 고령인데 마땅한 후계자가 없고, 고미술품 매매만으로는 생계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거리를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고미술협회 대구지회에 따르면 지난해까지도 20곳이 넘었던 이천동 고미술거리 내 고미술품 가게 수는 추락을 거듭한 끝에 이제 18곳에 불과하다.

◆외양에 치중한 육성책… '속 빈 강정'
고미술거리의 쇠락은 남구청의 그간 육성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천동 고미술거리에서 10년 이상 고미술품을 취급한 박모(62) 씨는 구청의 도시 재생 사업 성과를 일정 부분 인정하면서도, 방향성을 잘못 삼았다고 지적했다.
박씨는 "이전보다 거리가 정돈되고, 주차 공간이 마련된 점은 성과지만, 그렇다고 방문객이 눈에 띄게 증가하진 않았다"며 "구청에서는 지난해에 예산 부족으로 고미술품과 신천을 엮어 축제를 열었는데, 이 역시 방향성이 모호하고 솔직히 반응이 좋지 않았다"고 평했다.
실제로 남구청이 수행한 '2000배 행복 마을' 사업을 살펴보면, 도로 정비나 벽화 사업 등 외연 확장에만 주안점이 있고, 고미술거리의 가치를 발굴하는 노력은 확인하기 어려웠다. 남구청은 '2000배 행복 마을'사업에서 '주민들의 참여 증진' 등을 시도 했으나, 고미술거리와 연관된 시도는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고미술거리에서 사람이 떠나며 악순환도 생기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이전부터 주민의 참여도도 높았고, 상인들은 자연스럽게 고미술품을 알릴 수 있어 주민과 상인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던 '고미술 벼룩시장'이 예산문제로 10여년 째 열리지 않는 점도 뼈아프다는 지적이다.
이천동 고미술거리에서 고미술 매매업을 하는 한 상인은 "상인들은 물론, 거리 자체에 더 이상 사람들이 많이 없으니 예전보다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며 "지역주민들조차 이곳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르는데 외부인 관광객이 올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숨 쉬었다.
◆고미술거리 의미 탐구 없이 제안된 '고미술품 상설 경매장'
이런 가운데, 남구청은 올해 초 재건축이 예정된 이천동 행정복지센터 1층에 고미술품 상설 경매장을 설치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상인들에게 제시했다. 상설 경매장을 통해 업자는 물론 일반인들도 고미술품 경매를 관람할 수 있게 유도해 고미술품 경매의 문턱을 낮추겠다는 계획이다. 올해 말까지 13억원을 들여 부지를 매입한 뒤, 곧 착공한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상설경매장의 주민 및 관광객 유입 효과에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따른다. 이미 대구 달성군에 있는 한 경매장 역시 예상보다 저조한 실적으로 고전 중이기 때문이다.
이천동 주민들의 반응 역시 싸늘하다. 이천동에 오래 살았다는 한 주민은 "고미술상점에서 경매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경매를 한다 해도 별로 관심이 없어서 가볼 의향은 없다"고 밝혔다. 다른 주민들도 대부분 "경매가 열려도 가볼 생각이 없다"고 말하며 남구청이 주장하는 상설 경매장의 주민 응집 효과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이천동 고미술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고미술거리의 진정한 가치 탐구가 이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구청과 주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고미술거리의 가치'에 대한 탐색이 선행돼야한다는 지적이다.
오동욱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천동 고미술거리에 대해 주민뿐만 아니라 외부인들도 납득할 수 있는 문화적 가치 탐색 및 발굴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라면 다른 고미술거리나 업계와의 소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우화 대구창의도시재생지원센터 센터장도 "고미술거리가 갖는 잠재성에 대해서 면밀하게 평가한 뒤, 이를 주민들과 상인들의 의견 모두 반영해 어떻게 발전시킬지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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