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제점 21대 국회] 협치 실종·민생 뒷전, 입씨름만…법안 처리율 36.6% 역대 최악

입력 2024-05-28 16:49:24 수정 2024-05-28 21:22:07

1만 6천여 건 자동 폐기 수순
입법 독주·대통령 거부 ‘악순환’…시작부터 단독 개원한 巨野
양곡·간호·노란봉투법 강행…특검법 정쟁 이어지며 파행
22대 국회 처음부터 다시 논의
저출생發 시급한 연금개혁…K칩스·AI육성·고용평등법
미래 과제 못 풀고 빈손 종료

김진표 국회의장이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개회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표 국회의장이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개회하고 있다. 연합뉴스

28일 오후 국회에서 재의결 안건으로 상정된
28일 오후 국회에서 재의결 안건으로 상정된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 등을 표결하는 본회의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29일로 임기를 마무리하는 21대 국회는 끊임없는 갈등과 대치로 협치는 실종됐고 민생 현안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였다. 시작부터 원(院) 구성에 합의하지 못하며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단독 개원하는 촌극을 벌였고 정권이 교체된 후반기에는 거대야당의 입법 독주와 대통령의 거부권(재의 요구권) 행사가 '악순환'처럼 반복됐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 시설을 만들기 위한 '고준위특별법' 등 시급한 민생 법안들은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의 운명을 맞았다.

◆낙제점 받은 법안 처리율

2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률안 2만5천849건 가운데 9천453건만 처리돼 1만6천396건은 계류돼 있다. 법안 처리율은 36.6%로 20대 37.9%, 19대 44.9%, 18대 54.7% 등 수치와 비교해 가장 낮다.

여야가 임기 내내 강 대 강 대치를 이어온 것이 수치로 증명되는 것은 물론 역대 최악의 무능 국회라는 오명을 쓴다고 해도 변명을 하기 어려운 처지다.

특정 정당이 원내 절대 다수당의 지위를 유지하며 법안을 밀어붙이는 구도는 여야가 뒤바뀐 뒤 국회의 생산성을 현저히 떨어뜨리게 됐다. 양곡법을 시작으로 '간호법', '노란봉투법', '방송 3법' 등 야당의 입법 강행에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를 반복하며 여야 관계를 악화시켰다.

각종민생 법안들은 전세사기 특별법과 같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거나 여론의 주목을 받지 않으면 상임위원회 안건으로 오르기도 어려웠다. 22대 국회의원 선출을 위한 총선에 임박해선 '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 야권의 각종 특검법 공세와 여당의 방어가 이어지며 잦은 국회의 파행을 낳았다.

21대 국회에서 집권여당의 마지막 원내대표였던 윤재옥 국민의힘 의원(대구 달서구을)은 지난 8일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여야가 당장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또다시 극한 정쟁의 늪에 빠진다면 우리 국민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민생 파탄, 민주주의 파괴, 국가 발전의 지체밖에 없다는 것을 다같이 깨달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21대 국회가 남긴 숙제들

협치가 실종된 21대 국회는 시급한 민생 법안은 물론 대한민국 미래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법안들을 잔뜩 쌓아둔 채 임기를 끝마치게 됐다. 여야와 정부가 각종 이견을 조율해 서로 처리하기로 약속한 법안들도 임기 만료로 폐기돼 22대 국회에서 다시 논의를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21대 국회에서 여야가 처리하기로 합의했다고 22대 국회에서 곧바로 통과되는 게 아니다"면서 "대표발의 의원도 새로 정해야 하고 상임위원회 의원 설득 작업도 모두 다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준위 특별법은 여야 지도부가 처리하기로 약속해 놓고도 '채 상병 특검법'이 여야 간 쟁점이 되면서 폐기 운명에 놓인 대표 법안이다. 원자력발전소 가동으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의 영구 처분시설을 마련하기 위해선 특별법 제정이 첫 단추이지만 정치권에 가로막혀 있다.

챗GPT로 대표되는 인공지능(AI) 산업의 급격한 발전에 따라 이를 진흥하고 적절히 규제하기 위한 내용이 담긴 AI 산업 육성 및 신뢰 기반 조성에 관한 법률안도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반도체 산업 경쟁 가속화에 따라 반도체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늘리는 등 정책 대응이 시급하지만 소위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도 뒷전으로 밀려 있다.

비대면 진료를 제도화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다가 정부·여당이 재추진했던 간호법, 온라인 법률 플랫폼 활성화를 위한 일명 '로톡법'(변호사법 개정안), 재판 지연 해소를 위해 법관을 증원하는 판사정원법 등도 폐기 운명 앞에 섰다.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상속인의 상속권을 박탈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구하라법'(민법 개정안), 저출생 극복을 위해 육아휴직 기간을 3년으로 늘리는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 등도 22대 국회에서 다시 논의해야 할 처지다.

대형마트 휴무일을 주말에서 평일로 바꾸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주식 등 금융투자 상품으로 낸 수익 중 연 5천만원이 넘는 부분은 20~25%의 세금을 내도록 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법안, 예금보험료율 한도(0.5%) 적용 기한 연장을 골자로 한 예금자보호법 개정안 등 경제 법안들도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대규모 기업 투자에 수반되는 적시 전력 공급을 위해 필요한 '국가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 산업기술 유출 방지와 보호를 위한 처벌 강화의 내용을 담은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 정부 재정 적자를 일정 규모로 제한하는 재정 준칙을 제정할 국가재정법 등도 차기 국회의 과제로 남았다.

21대 국회 후반기 김진표 국회의장은 지난 22일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정치는 시기마다 사안을 선택하는 직업이라는 생각을 했다. 유불리가 아니라 옳고 그름을 따진다면 그 선택이 최선이고 후회가 없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국회에서는 당리당략과 유불리의 오류에 빠지지 않고 오직 국민 눈높이에서 상생의 정치, 대화와 타협의 정치, 진정한 의회주의가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