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8년 태조의 아들 이방원은 세자인 동생 방석을 죽이면서 정도전의 목도 친다. 1차 왕자의 난이다. 조선 건국 이후 10년도 안 된 때다. 태조 이성계에게서 '儒宗功宗'(유종공종·유학도 으뜸이요 공적도 으뜸이다)이라는 어필을 받았을 만큼 조선 개국 일등 공신으로 분류됐던 정도전이었다. 1차 왕자의 난을 도운 공신으로 민무구·무질 형제가 꼽힌다. 이방원의 처남이다. 왕위에 오르자 이방원은 이들 형제도 죽인다. 권력을 등에 업은 가벼운 입과 값싼 행동을 이유로 삼았다.
공신 중 숙청된 이무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도전 일파 제거로 정사공신에 오른 그는 이방원과 삽혈동맹(歃血同盟)을 맺은 관계였다. 태종이 이무를 죽인 건 인사 개입 때문이었다. 우의정이던 이무가 보고하지 않고 인사에 개입해 특정인의 품계와 관직을 올려준 걸 왕권 위협으로 봤다. 유배를 보내 놓고 뒤쫓아가 참수했다. 왕권 강화의 핵심은 공신도 넘볼 수 없는 인사권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에 머물고 있는 때에 저의가 궁금해지는 인사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 비서관으로 기용된 것이다. 민심을 대통령에게 전하는 임무다. 여론을 읽고 민심의 향배를 가리는 능력에 대통령의 의중을 읽을 줄 아는 코드 적합성이 발탁 기준에 포함된 것이리라 짐작된다.
그렇다 해도 자연스러운 인사로 보기 어색한 지점들이 적잖다. 2016년 탄핵 정국 때 하루가 멀다 하고 이름이 오르내렸던 그는 박근혜 정부의 몰락을 가져온 국정 농단의 핵심 인물인 최순실에게 기밀 문건을 유출한 혐의 등으로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당시 수사 검사가 윤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실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자 온갖 설이 부유한다. 상상의 영역에서는 정 비서관의 굳은 심지를 윤 대통령이 탁월하게 봤다는 설부터 당시 수사에 적극 협조한 대가라는 허무맹랑한 설까지 나온다. 가능한 모든 상상적 서사가 결합되며 근자에 소환된 태블릿PC 괴담과 섞여 음모론자들의 이야기 전개에 자극적인 소재가 된다. 더 큰 괴담으로 각색되기 전에 대통령실의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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