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중앙일보'로 등단, 시집 '어디에도 없다' 외
〈 행복은 내 안에〉
열세 살짜리 손녀 노트 첫 장에 '행복은 내 안에'라고 쓰여 있다. 행복은 잡을 수 없는 파랑새라는데 어린 것이 참 당돌하다. 파랑새를 찾아서 산 넘고 물 건너 멀리 갔다가 허탕 치고 지쳐서 돌아왔더니 그 새는 뜰앞 나뭇가지에 앉아있었다는 시구가 생각난다.
문득 창밖에서 새소리가 들린다. 커튼 사이로 내다보니 곤줄박이가 난간에 앉아 햇살을 쪼고 있다. 방금 티비가 보여주는 거짓과 위선이 난무하는 뉴스에 속이 상했는데, 저 작고 예쁜 새가 쪼는 햇살이 얼핏 내 안에 부싯돌처럼 반짝이며 왠지 모를 생명의 기쁨과 황홀의 순간을 열어준다.
그렇구나 아이야, 행복은 산 너머 저쪽 파랑새가 아니라 지금 내 안에서 반짝이는 햇살이구나. 바로 여기 생생하게 살아있는 자신을 잊고 산 너머 저쪽만을 바라보는 어리석음을 깨닫게 해 준 아이야, 지금 이 순간 내 안에서 너의 말이 부싯돌처럼 반짝인다.
<시작 노트>
이 시를 읽는 분은 아마도 마테를링크의 <파랑새>나 칼 붓세의 <산 너머 저쪽>을 떠올리실 것 같습니다. 저도 역시 행복이란 산 너머 저쪽(피안)에 있어서 잡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지요.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어린 손녀의 노트에 적어놓은 "행복은 내 안에"라는 말(아마도 어디선가 베껴놓은 것이겠지만 어린이는 누구나 시인이지요)이 웬일인지 가슴에 울려왔습니다. 그때 마침 우리 집 난간에 곤줄박이 한 마리가 날아와 햇살을 쪼고 있었는데, 그것이 마치 부싯돌처럼 반짝이며 왠지 모를 생명의 기쁨과 황홀의 순간을 열어주는 듯해서 그 느낌을 그대로 써 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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