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린에서 빌뉴스까지 620km, 자유를 꿈꾼 '발트의 길'
구소련에 강제 점령당한 3국, 200만 인간사슬로 독립 쟁취
◆발트의 길, 자유의 사슬
폴란드 바르샤바 쇼팽공항 22번 게이트 앞에 앉아 임윤찬의 '녹턴'을 듣는다. 나는 곧 폴란드항공 LO773기를 타고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로 갈 것이다. 창밖 활주로로 서서히 움직이는 비행기들이 보인다. 이제 극단적으로 섬세하게 귀를 두드리는 선율, 이백여 년 전 어느 날 조국을 떠나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한 쇼팽은 바르샤바가 러시아에 함락됐다는 소식을 듣고 끝없이 절망했을 것이다. 계속되는 연주는 낭만적이라기보다 격렬해져 설핏 든 선잠을 깨운다.
내게 폴란드 그리고 발트 3국(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의 역사는 늘 남의 일 같지 않게 가슴이 아릿하다.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공하기 직전인 1939년 8월 23일 스탈린과 독소불가침조약(Nazi-Soviet Nonaggression Pact)을 비밀리에 맺고 이리와 승냥이처럼 폴란드를 합병하고 발트 3국을 강제 점령했다.
그로부터 50년이 흐른 1989년,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서 리가, 빌뉴스까지 620km '발트의 길'에서 200만 명의 시민들이 인간 사슬을 만들어 세상을 흔들어 깨웠고 2년 후 기어코 독립과 자유를 쟁취했다. 당시 그곳의 총인구는 약 700만 명이었다. 터지는 박수와 환호성을 끝으로 임윤찬이 연주를 마친다. 바르샤바에서 듣는 쇼팽이 이토록 순수하고 감각적이라니.
발트 시민들은 총과 칼이 아니라 손과 손을 잡고 인간 띠를 만들어 구(舊)소련을 그렇게 굴복시켰다. 발트족 가톨릭국가 리투아니아, 발트족 정교회국가 라트비아, 아시아계 핀족국가 에스토니아는 1991년 마침내 다시 태어났고 '발트의 길'은 이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돼 비폭력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2020년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다시 한 번 발트 3국 시위대들의 인간 사슬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동조하는 벨라루스 독재자 루카센코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였다. 발트 3국은 현재 여전히 러시아의 발호에 불안해하며 군비를 확장하고 나토에 가입하는 등 자구책을 펴며 중유럽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해나가고 있다.
◆리투아니아, 빌뉴스 그리고 십자가 언덕
빌뉴스는 네라스강을 경계로 신, 구시가지가 나뉘는 동화 같은 리투아니아의 수도다. 1세기경 로마황제 네로의 폭압으로 피신한 팔레온 가문이 리투아니아를 세웠다고. 그래서인지 로마 건국신화와 비슷하게 도시에서 철갑을 두른 늑대가 수호하는 게디미나스 대공(1275-1341) 동상을 볼 수 있다.
리투아니아의 영웅 게디미나스는 로마 교황, 독일기사단국의 모태인 튜튼기사단과 극렬 대립하던 1323년 천혜의 요새 트라카이성을 벗어나 꿈에서 철로 된 늑대가 울부짖던 곳에 빌뉴스 성채를 건설했다. 치세 동안 한자동맹, 절묘한 결혼외교 등으로 폴란드, 독일,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유대인 등 정교회와 가톨릭, 개신교, 유대교, 이슬람까지 인종과 종교, 문화의 용광로였던 크지 않은 나라를 번성시켰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빌뉴스 중심 대광장에는 광화문 이순신장군과 흡사한 게디미나스의 동상이 서 있다. 신고전주의풍 거대한 대성당과 도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종탑, 국립미술관이 된 대공의 궁전은 마치 그를 위해 조성된 부속건물처럼 느껴질 정도로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광장 한 켠에는 공중부양하는 행위예술가와 인파, 밀집한 야외카페를 지나면 골목길마다 셰익스피어 얼굴 문장이 걸린 호텔, 도자기를 그대로 벽에 상감한 찻집, 몇 백 년은 족히 되었음직한 건물들이 즐비하게 나타난다. 그러다가 갑자기 중세로 워프한 듯 붉은 벽돌 성 안나 성당이 나타난다. 역시 고딕양식의 정수라 할만하다. 하지만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성당을 일별하곤 셰익스피어호텔을 다시 찾아가 로비에서 광고지를 챙기느라 리투아니아 '발트의 길' 문양을 놓치는 낭패까지 보고 만다.
호수가 자연 해자(垓字)인 트라카이성 외부를 요트로 찬찬히 둘러보고 박물관이 된 내부를 관람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 아름다움에 취해 샤울라이 북쪽 십자가언덕에서 세계고에 함몰될 줄 생각도 못했다. 주변 강대국의 각축장이었던 발트 3국의 지난한 이력들, 중세부터의 분할과 점령, 유혈 봉기, 제2차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 이 모든 슬픔이 고스란한 십자가언덕에서 나는 헉!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그 염원의 십자가 앞에서 '해도 믿고, 달도 믿는 다신교도'라 자처해온 나는 인간인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 누가 볼세라 눈물을 훔칠 수밖에 없었다.
◆라트비아 리가, 에스토니아 탈린
4월 말의 발트는 궂은 날씨가 종잡을 수 없으니 두꺼운 외투가 필수라곤 했지만 여행 내내 화창했다. 저절로 가수 남진의 '저 푸른 초원 위에'가 흥얼거려지는 끝없는 초원을 달려 검문도 없는 국경을 넘어 룬달레궁전을 향했을 때가 아마도 화창의 절정이었을 것이다. 발트의 베르샤유로 불리는 라트비아 초입의 궁전 또한 바로크식 절정이었다.
푸른 비닐 덧신을 신고 들어간 궁전에는 러시아 여제 안나 이바노브나의 애인이었던 에른스트 뷔렌 공작과 가족들의 초상화가 가득했다. 물론 지극한 총애와 여제의 죽음으로 인한 시베리아 유형, 복귀 등 부침이 심했던 공작의 영욕이 그대로 서린 궁전은 말 그대로 바로크와 로코코가 뒤섞인 화려 그 자체였다. 그러나 나는 시인 김수영처럼 '고궁의 음탕'보다 후원 마로니에 가로수와 드넓은 목초지, 자잘한 민들레가 훨씬 맘에 들어 한참 그곳을 걸었다,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는 금발 여인들이 무척 아름다웠고 해안가라 그런지 좀 더 느긋해 문을 열어놓은 대통령궁 정원에도 들어갈 볼 수 있었다. 상인과 선주, 외국인을 위한 길드의 수호신 성 모리셔스가 정면에 그려진 한자동맹의 상징 검은 머리전당 앞에선 테너가 바다 노래를 불렀고 햇빛 쬐려는 시민들이 죄다 나왔는지 광장은 흥겨웠다,
나는 드디어 리부광장에서 세 개의 별(삼성)을 든 라트비아 자유의 여신상과 직선거리 바닥에서 '발트의 길' 표식을 볼 수 있었다. 그 흥분은 50년간 라트비아 주재 러시아 KGB건물을 개조해 만든 점령박물관(Museum of Occupation of Latvia)으로 뛰어갈 때까지 이어졌다. 주변과 어울리지 않게 섬찟할만큼 시커먼 외관을 한 박물관에는 히틀러와 스탈린에서 인간 사슬로 독립을 쟁취하기까지의 발트 3국의 모든 여정이 담겨 있었다.
'독소불가침조약을 그들은 아직도 부정하고 있다'란 영상에서부터 점령 후 러시아어 사용 강요와 독립운동가들의 수용소 수감, 알래스카 추방, 강제 이주, 2차대전 국지전 그리고 다시 독립을 향한 인간 사슬… 나는 자꾸 우리나라 역사에 데쟈뷰되어 내부의 붉은 조명이 따갑기만 했다. '다시 한 번 어둠의 미로가 이끄는 빛을 향한 여정…(From the labyrinth of darkness leads the road to light again…)'이란 관람 마지막 문구가 또 슬프다.
발트해변에서 어디 호박(琥珀)이 밀려온 게 없나 두리번대다 다시 국경을 넘어 당도한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은 호빗 마을이나 민속촌 축제에 온 것 마냥 흥겹다. 아시아계 핀족이라 사람들이 핀란드 무민처럼 무뚝뚝하다지만 도심에서 고전의상에 나무구두를 신고 꿀에 적신 아몬드를 파는 청년은 유쾌하기 이를 데 없다. 톰페아언덕 거리의 악사가 우리 일행을 향해 '아리랑'과 '도라지 타령'을 불렀던가.
발트 3국에서 러시아식 동상과 건물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예카테리나 2세의 카드리오궁전이나 해변의 춤추는 천사상, 러시아 영웅 알레산더 네프스키의 이름을 딴 성당 등 3국 중에서 가장 많이 남은 듯하다. 그렇다고 그들의 독립 의지를 의심하는 것은 금지다. 노래하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하는 탈린 시민들은 세계에서 가장 큰 라울루피드합창제를 5년마다 개최하고 1989년 8월 23일 이 합창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발트의 길 인간 사슬을 처음 이었기 때문이다.
시인 박미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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