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처음 인터뷰한 것은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6개월 정도 앞두고 있을 때였다. 그는 정치적인 직함을 갖고 있지 않았고, <전원일기> 둘째 아들로 각인된 '국민배우 유인촌'이었다. 대선을 앞두고 「거침없이 걸어라」라는 책을 출판하고는 '걷기 ' 전도사가 되어 있었다, 그가 걷는 이유가 궁금했다. 매일신문 「김건표의 스타토크」를 진행할 무렵에 무작정 전화를 했다. 그는 네다섯 시간 뒤 경남 거창을 지나 길가에서 만나자고 했다. 인터뷰는 20~30킬로를 걸으면서 할 수밖에 없었다, 국도를 걸으면서 진행한 인터뷰는 걷기 훈련과도 같았다. 걷는다는 게 곤혹스러웠다. 무더운 여름이라 옷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숙소에 도착해서 그가 밥을 먹고 가라고 했는데, 쉬고 싶었다. 이튿날 전국에 폭우가 쏟아졌다. 전화로 물었다. "어디쯤이세요? 진짜 걷고 있나요?" 들려오는 대답은 이랬다. "지금 충북 영동 쪽인데 난, 폭우가 쏟아져도 걸어." 그 뒤, 그는 이명박 정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되었고, 정치인으로 됐다. 재임 시절 국정감사장에서의 "찍지 마" 논란, 한국예술종합학교 일부 학과 폐과 논란으로 피켓 시위를 하는 학생과의 대화 장면, 공공예술단체장 인선 문제로 그는 '보수'의 이미지가 되어있었다.
퇴임 후에는 그를 <문제적 인간 연산> 등 대학로와 연극 무대에서 볼 수 있었다. 정치적인 대화를 나눌 기회는 없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유인촌이 대통령 문화특보로 언론에 오르내렸고, 최초로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두 번 맡은 배우가 되었다. 그는 연극·전통·영상 산업 등의 문화예술계와의 현장 소통을 광폭적으로 늘렸다. 몇 차례 연락한 뒤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인터뷰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격식 없는 대화로 진행됐다. 유인촌 장관은 보자마자 거창에서의 인터뷰부터 꺼냈다. 폭우가 쏟아진 충북 영동의 그날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웃음이 터졌다. 그는 양복을 입고 공무원 패찰을 달고 있었다. 질문을 하면 모범답안처럼 말하지 않았다. 인터뷰 답변 자료도 없었다. 형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 보였다. 취임 이후 진행 중인 정책을 자유롭게 설명해 주는 느낌이었다. 대변인과 문화정책 국장들도 보였다.
▶ 『거침없이 걸어라』(2007)를 발간하신 후 '땅끝 해남에서 서울까지 걷기' 전도사로 활동하실 때 거창에서 함께 걸으며 인터뷰를 했었지요. 그때만 해도 정치인이 되실 줄 몰랐습니다. 이제는 사이클을 타시더군요.
"장관으로 재취업(웃음) 하기 전까지는 계속 걸어 다녔어요. 걷는 것은 운동이 아니라 그냥 생활이에요. 대중교통 이용할 때도 한두 정거장은 미리 내려서 걸어가요. 그게 버릇이 돼서 굉장히 즐겁거든요. 취임 이후에 200회 이상 현장과 소통했어요. 역시 답은 현장에 있다고 느꼈습니다. 15년 전과는 달리 우리를 둘러싼 문화 환경이 창작·유통·소비 여건 측면에서 급변했어요. 생성형 AI나 글로벌 OTT의 확산, 지역 소멸, 저출산 등 환경 변화에 맞춰서 기존 틀에서 벗어난 정책을 혁신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 현장과 소통하면 '대한민국 문화정책' 해답이 보이던가요?
"정작 현장에서 일하는 예술가들에게 듣는 이야기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내년 정도부터는 예술인 지원 문제를 우리 직원들, 그리고 각 예술 협회 단위의 현장과도 의논할 계획입니다. 예술가나 단체에게 직접 지원하는 사업은 지역 문화재단이 할 수 있도록 지역 중심으로 개편하려고 해요. 말하자면, 서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지원은 서울문화재단이 하고, 경기도 쪽은 경기문화재단에서 지원하는 거죠. 내년부터는 그런 방향으로 예산을 짤 겁니다. 예술위는 해외에 우리 예술을 소개하는 일이나 국제 교류같이 큰 사업을 해야죠. 예술가 지원은 지금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거의 다 하고 있어요. 전시장이나 극장 조성 같은 대한민국 전체 인프라를 조성하는 일 같은 건 문화체육관광부가 합니다."
▶ 유인촌 장관은 예술가나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맞춤형 모범답안만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소신과 철학을 거침없이 이야기해나갔다. '이명박 정부 장관 재직 시절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문화정책에서 달라진 방향도 있지요.'
"이전 재임 시절 성과를 꼽아보자면, 저작권법 개정을 통해 한국이 2009년 미국 무역대표부 지식 재산권 감시 대상국에서 최초로 제외될 수 있었어요. 게임, 케이팝, 애니메이션, 웹툰, 웹소설 등 전체적인 문화산업 규모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커졌잖아요. 그런데 이런 분야들의 베이스가 되는 순수예술은 옛날하고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요. 연극, 미술, 클래식 음악, 전통 등을 전반적으로 키워야 합니다. 그러려면 예산이 수반되어야겠죠. 이 문제부터 해결되어야 세부적인 계획을 실행할 수 있어요. 돈이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구상할 겁니다."
▶ '윤석열 정부의 문화정책 기조와 장관의 핵심 정책 방향은 무엇인가요?' 장관은 잠시 시선을 돌려 물 한 잔을 마시더니 분명한 시선과 또렷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설명을 하기 위해 테이블 위에서 지도를 그리듯이 두 손을 움직였다.
"윤석열 정부의 문화정책은 자유시장 논리를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약한 자가 언제까지나 약하지만은 않도록, 예술가들이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겁니다. 지원 제도를 1년에 한 번씩 운영하지 말고 수시로 문을 열어야 해요. 이번에 '방방곡곡 문화공감 공연 지원 사업'도 한 달 간격으로 세 번 지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잖아요. 지원 사업에 떨어져도 더 보강을 해서 그다음 기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는 거죠. 좁은 문일지라도 여러 번 열려야 하고, 그 좁은 문을 통과한 예술가들에게는 확실한 지원을 해주자, 그것이 내 원칙이에요. 정부도 예술가들의 창의성과 시장 경쟁을 활성화하기 위해 간접 지원, 사후지원, 다년 지원, 인큐베이팅 지원을 강화하고 문화 분야 투자와 융자를 확대할 계획입니다. 2023년에 비해 올해 콘텐츠 정책금융도 7,900억 원에서 1조 7,400억 원 규모로 120% 증가했어요."
▶ 이명박 정부 장관 시절, 문화 예술·체육·대중문화는 전략적인 육성을 하고 순수예술 분야는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하셨죠. 윤석열 정부 장관으로 돌아오신 뒤에도 '순수예술' 분야를 강화하겠다고 하셨는데.
"신규 사업을 검토하고 있어요. 먼저 지원 단위를 개편하려고요. 예술인 개별 지원에서 예술 단체 육성, 예술축제 지원 중심으로 바뀌는 거죠. 거기에다 산업적인 접근을 확대해서 예술 분야에서도 정책융자나 정책펀드와 같은 자금 지원 정책을 도입할 겁니다. 청년예술가와 장애 예술가의 무대 기회를 확대하는 정책도 고민하고 있지요."
▶ 장관은 문화 분야 정책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또 순수예술 분야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 보였다. '기초예술'에 대한 지원 육성은 확실하게 하겠다며 몇 번을 강조했다. 물었다. '현장에서는 문화 예술 분야 예산이 삭감된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문체부 문화 예술 예산이 21년도에 32%였다면, 올해는 34%에요. 현장에선 체감이 덜 되겠지만, 분명 문화 예술계 예산 비중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내년엔 순수예술 분야가 완전히 힘을 받도록 예산을 대폭 늘릴 겁니다."
(이명박 정부 장관 시절, 폐과 논란이 일었던 한국예술종합학교 학부모와 학생과의 대화 영상을 뉴스를 통해 본 적이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는 1999년 '국립예술대학교 설치법', 2005년 '한국예술학교 설치법' 제정을 통해 석박사 대학원 설치를 희망했으나 기존 예술대학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번 21대 국회에서도 2022년과 2023년에 걸쳐 세 건의 유사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 법안이 발의되었으나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 지자체장 선거와 총선을 치르면서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이전 문제가 선거 구호로도 등장했더군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는 석박사 제도를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습니다만.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령 자체가 실기 전문인을 육성하려는 취지에요. 그 중심으로 특화되어 있고, 많은 정부 예산이 투여되고 있어요. 석박사 학위 제도를 위한 「한예종 설치법」은 다른 예술대학의 반대가 있는 만큼 충분한 공감대 형성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지역 균형 발전의 일환으로 학교를 이전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라고 생각해요. 부지 이전은 재정과 교육 환경, 예술 학교의 특수성, 미래발전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신중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 공교롭게도 이명박 정부 장관 시절, 국립극단을 장충동에서 서계동으로 이전하면서 전속 단원제를 폐지하셨어요. 서계동 시대를 연 것은 국립극단 제작 운영의 독립성을 위한 것이었는데, 당시 연극계에 찬반 논란이 있었죠. 이제 다시 남산 장충동으로 제자리를 찾아가는데. 창작 환경의 독립성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창작 환경의 독립성은 지금보다 더 강화될 겁니다. 제가 연극계 현장 이야기를 누구보다 더 잘 압니다.(웃음) 연극계가 뭘 원하는지도 알아요. 창극단, 국악관현악단, 무용단은 국립극장 소속 단체지만 국립극단은 앞으로도 독립된 법인 체제로 운영될 계획이에요. 2010년도에 국립극단을 서계동으로 이전했던 건 새로운 활동 무대에서 법인화된 조직이 독립성을 키우고 더 나은 창·제작 여건을 마련하길 바라서였어요. 국립극단이 서계동으로 가서 프로그램도 많이 만들고 열심히 했어요. 이제는 국립극단이 국립극장의 대표 선수로 활동하면서 남산 일대 공연 창작의 구심점으로 도약하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이제 장충동 대극장에서 공연을 좀 해야죠. 국립공연예술창작센터(가칭)와도 연계해 민간이 제작하기 어려운, 규모 있는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에요."
▶ 장관께서는 그동안 국립극단 시즌 단원제를 더 확대해야 한다고 얘기하셨지요.
"국립극단이 법인화될 때 전속 단원제에서 시즌 단원제로 전환됐잖아요. 당분간은 계속 시즌 단원제로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단원들이 작품에 들어갈 때도 경쟁을 하는 게 필요해요. 공연을 안 할 때는 국립극단에서 교육도 받고, 자기 개발을 위해 치열하게 연습을 해야죠. 단원으로 일 년 만 있는다고 해도 배우로서 업그레이드가 되어 나가야지. 새로운 단장이 된 박정희 연출가에게 요구한 것도 딱 하나에요. 대한민국에서 가장 올바르고 아름다운 우리 말을 하는 극단으로 만들어달라. 지금 국립극단이 시즌 단원과 별개로 청년교육단원을 40명 더 뽑았는데, 총 9개 국립예술 단체에서 선발한 청년교육단원이 350명이에요. 내년에는 이를 천 명으로 대폭 확대할 계획입니다. 청년 공연예술가들에게 국립예술 단체 무대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와 전문적인 실무교육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청년교육단원 제도의 핵심은 국립극단 작품 활동으로 현장에서 무대 경험을 쌓고,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배우로서의 역량을 개발하는 데 있는 것 같다. 배우들이 국립극단 간판으로 작품을 올리고, 국가의 대표적인 극단에서 제대로 배워 보라는 얘기로 들렸다. 앞으로 국립극단이 장충동으로 이전되면 남산 자유센터(한국자유총연맹) 공간에 '국립공연예술창작센터'가 조성된다. 연습실·공연장·무대장치 분류센터에 이르기까지, 연극 제작과 유통이 유연해지도록 인프라가 만들어진다. 서계동 복합문화센터, 명동예술극장, 남산 장충동으로 이어지는 공연 환경이 현실화되면 대학로 다음으로 공연문화 로드가 형성되는 셈이다.)
▶ 서계동-명동-남산으로 이어지는 문화지형의 밑그림에서 공연과 축제로 '공연예술 거점 도시'로 특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런 점도 생각하고 있어요. 홍대, 대학로는 지역 분위기에 맞는 문화와 축제가 형성되어 있잖아요. 예를 들면 사람들이 음악은 '홍대', 연극은 '대학로'를 떠올리는 것처럼요. 서계동-명동-남산 공연예술 벨트의 밑그림은 문화부가 기획하고 있어요. 좀 기다리면 분위기가 살아날 겁니다. 남산 '국립공연예술창작센터'는 국립극장과 국립공연예술 단체들이 함께 운영하는 공간이 될 거예요. 남산 공연예술 벨트가 한국 공연예술 세계화의 구심점 역할을 하도록, 국립공연예술 단체의 창·제작 거점 공간으로 거듭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할 겁니다. 그래야 하는 게 맞고요."
▶ 인터뷰 전날 국립극단 예술감독으로 박정희 연출가가 선임됐다. 유인촌 장관은 국립극단의 방향에 대해 말을 이어갔다.
"예술감독 선임은 후보 추천도 받고 현장 의견을 수렴해서 가장 국립극단을 잘 이끌 수 있는 적임자를 뽑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많은 연출가가 후보에 있었고 최종적으로 박정희 연출이 된 겁니다. 이제 예술감독이 선임됐으니 아까 얘기한 것처럼 민간에서 할 수 없는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작품들, 혹은 우리 연극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작품을 국립극단이 선보이면 좋겠어요. 상업적인 논리로만 작품을 만들지 말고요. 우리 말을 대표할 수 있는, 말의 정확성을 지닌 배우들도 점차 육성해야겠죠."
▶ 국립극단 작품 개발과 역할에 있어,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조직과 위원, 전문가들을 확대·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박정희 예술감독이 연극계 현장의 여러 의견을 수렴해 극단을 운영해나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국립극단과 연극 현장이 서로 겉돌지 않으려면, 외부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경청할 필요도 있겠죠. 국립극단은 나라의 대표 선수가 되어서 미래 한국 연극을 위해 비상업적이고 실험적인 대규모 작품을 다양하게 만들어야 해요. 남산 이전을 계기로 국립극단과 국립극장, 국립공연예술창작센터와의 협력체계를 강화할 생각입니다."
▶ 어린이·청소년 연극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국립극단으로 독립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제가 2010년도에 국립현대무용단을 창단시켰기 때문에 어린이청소년극단까지 국립단체를 두 개나 만들기는 어려웠어요. 그래서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를 출범시킨 거예요. 원래는 국립극단 소속으로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렇게 돼있더라고요. 올해 안에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를 별도 법인으로 독립시켜서 작품 제작과 지역 유통까지 활성화할 계획입니다. 공연을 본 어린이들이 감수성, 창의력, 사고력을 갖춘 관객으로 성장해서 공연예술의 소비인구가 된다면 좋겠지요."
▶ 장관께서 정책 변화를 예고했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책임심의관' 제도가 추가공모 사업부터 시범운영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특정 책임심의관이 선정부터 평가 환류까지 전담하는 방식인데, 이를 밀어붙이시는 이유가.
"장르별로 심사만 전문적으로 하는 직원을 뽑아, 일회성 심의의 한계도 극복하고 치우치는 결정을 하지 않도록 하려고요. 그 대신 책임심의관이 심사 결과에 책임을 지게 되니 편파적인 심사는 엄두도 내지 못할 겁니다.(웃음) 책임심의관제는 영국이나 캐나다 같은 해외에서도 이미 운영 중인 제도에요. 캐나다의 경우 외부 전문가가 심의를 하더라도 내부 직원이 최종 선정을 해요. 올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부터 책임심의관제를 시범 도입하고, 내년부터는 다른 문화 예술 기관으로 제도를 확대할 생각입니다."
(예술경영센터의 창·제작 유통사업은 '2023 전국 공연예술 창·제작 유통 협력 생태계 구축 사업'(156억), '2024 지역 맞춤형 중소규모 콘텐츠 유통 공모'(132억), '중형 공연예술 유통 공모'(신규 92억) 등의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학로에서는 예술경영센터 지원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 그동안 기존 예술경영센터 유통사업이 공연 확산에 효과적이지 않았고 특정 단체들만 선정되는 경우도 많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올해 여러 사업을 통폐합해 확대·개편하는 과정에서 일부 연극인들에게 불편한 점도 있었죠. 지난달 연극계 간담회를 통해 그들이 겪은 어려움을 들었고, 순수 공연예술 단체들을 대상으로 새롭게 공모 신청을 받고 있어요. 예술경영센터 공연예술 유통사업 예산이 올해 크게 확대되면서 현장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는데,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론 대학로의 어려움이 오롯이 전달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 최근 예술경영센터의 몸집이 커지고 있는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비교했을 때 지원체계에 어떤 차이가 있죠?
"최근 예술시장이 성장하면서 시장 활성화를 위한 정책적 지원의 필요성이 커졌어요. 그래서 예술경영센터 규모가 확대되고 있죠. 기본적으로 문예위는 예술창작 지원, 예경은 예술 유통 등 예술시장 활성화를 목적으로 하는 기관이에요. 예술경영센터가 일을 잘 한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사업이 커지고 존재감이 생긴 거라고. 그래도 설립 초기 목적을 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미 확장시킨 사업을 다 없앨 수는 없지만, 여러 논의를 거쳐서 예경도 예술위도 중복되는 운영 사업에 대해 전면적으로 재조정을 해야죠."
▶ 극장 대관료 지원 사업 폐지에 대해 아쉽다고들 말합니다. 대관료 지원금과 티켓 보조금을 조성해서 연극을 활성화하고 관객을 개발하자는 여론이 있는데.
"서계동 복합문화공간 등 국립시설을 중심으로 공연장, 연습실 공간을 확충할 수 있도록 앞으로 공간 지원 정책을 계속 늘릴 거예요. 그리고 올해부터 19세 청년들이 공연과 전시 예매를 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청년예술 문화패스를 도입했어요.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통합문화이용권과 같이, 관객을 개발하기 위한 정책을 확대해나갈 겁니다. 1991년 시행된 '사랑의 티켓'처럼 티켓 보조금 정책이 나쁜 건 아닌데, 결국은 그것도 사재기와 같은 편법으로 이용되다 보니까 없어진 거거든요. 좋은 작품을 통해서 사람을 모을 생각을 해야 해요. 난 지금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기획 단계부터 잘 된 연극은 관객이 꽉 차요. 연극 볼 사람이 없는 게 아니에요. 공연예술 분야에서 가장 대중화돼있는 게 연극이에요."
▶ 관객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작품성도 필요하지만, 공연산업 확장에 있어서 공연기획프로듀서들이 그 역할을 생산적으로 수행해왔습니다. 결국 대중이 원하는 기획적인 시선이 중요한데, 전문 공연기획자와 프로듀서 양성도 정책적으로 보완되었으면.
"작년에 한 <고도를 기다리며>도 난리였잖아요. 물론 거기에 박근형, 신구, 박정자, 김학철 같은 훌륭한 배우들이 나와서일 수도 있겠지만 기획자들이 잘했어요. 결론은 연출가, 배우, 스태프는 작품을 잘 만들고 제작비가 공급되면 기획자는 죽기 살기로 뛰어서 표를 팔아야 하는 거예요. 요즘 연극을 보면 배우들이 집에서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나오는 것 같아요. 미니멀리즘이라는 게 말로는 근사하지만 아무리 작은 극장이라 해도 배우들이 정말 고귀하게 보여야 해요."
"배우로서 더 얘기하자면, 예전엔 사투리 쓰면 무대도 못 올라갔는데 요즘엔 자연스러운 게 좋은 모양이에요. 지역민을 연기할 때는 당연히 사투리를 써야죠. 사투리를 쓰더라도 배우들이 정확한 우리 말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하는데… 깊이도 없고 연극배우가 무대라는 공간에서 어떻게 해야 존중받고 고귀해 보이는지에 대한 인식이 없는 듯해요. 아무튼 돈과 사람을 끌어모으는 좋은 기획자가 붙지 않는 팀들은 가망이 없어요. 사람들을 극장으로 잡아끌 수 있는 분위기를 제도권에서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가 지금 저한테 가장 큰 고민입니다."
▶ 장관의 톤이 높아졌다. 정부 지원 시스템 속에서 안정적으로 공연하는 걸 존중하면서도, 결국 연극과 공연예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중이 선호하는 상품을 만들어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얘기로 들렸다. 무엇보다 배우 정신이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많은 듯했다. '소극장 대관료 지원 사업이 없어지면서, 극단과 극장이 상생하고 협업하는 데에 어려움이 많다고들 하더군요.'
"공연장이나 연습 공간을 지원할 예정이에요. 연극이나 무용 같은 공연예술 분야는 아예 심사를 극장에다 맡기는 게 어떨까도 생각해 봤어요. 극장이 스스로 살기 위해서는 경쟁력 있는 팀들을 선정하겠죠. 한국에 정말 많은 극장들이 있는데, 각자 나름대로 색깔을 살려야 해요. 어디는 창작 초연만 하는 극장, 아니면 사실주의만 하는 극장, 실험극만 하는 극장처럼요. 사업 형태를 바꾸는 것도 검토 중이에요. 새로운 창작품은 서울문화재단이 지원하고, 문화예술위원회는 과거에 했던 것 중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을 가지고 레퍼토리 사업을 하는 거죠. 왜냐하면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 해도 대부분 한 번 하고 나면 지원을 못 받아요. 그런 것들을 살려서 지속적으로 공연을 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어요. 나는 사후지원 정책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어떻게든 자비로 꾸려서 만든 작품이 정말 좋은 평가를 받았다면 나중에라도 지원을 받을 가치가 있어요."
▶ 문화 예술 분야도 서울과 지역 사이의 양극화가 심각합니다.
"단편적인 지원정책보다는 지역 문화 예술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에요. 문화 인프라나 콘텐츠, 인력이 다 수도권과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는 게 문제지요. 수도권이 아닌 지역들은 문화 인프라의 질적이고 양적인 측면에서 모두 취약합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민속박물관 등 국립문화시설을 지방으로 옮기고 권역별 문화 예술 거점 인프라를 조성할 계획이에요. 인구감소 도시와 같은 취약 지역에서도 문화 예술 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박물관·미술관·도서관 등의 인력 고용에 특례를 두려고 제도를 정비 중입니다. 지역 시민들이 다양한 예술작품을 향유할 수 있도록 지역 순회공연·전시나 전국적인 문화 예술 유통사업도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지역을 대표하는 예술 단체를 육성해서 자생력을 기르게 하고, 지자체의 다양한 공연예술축제를 세계적인 축제로 키우는 일이 중요해요. 다른 도시가 모방할 수 없는 그 지역만의 고유한 문화 예술 콘텐츠를 가꾸어야 합니다. 특색이 있는 도시를 정부가 '대한민국 문화도시'로 키워서, 내외국인의 방문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그 지역 콘텐츠를 널리 알려야겠죠."
▶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배우 유인촌이 이례적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두 차례 거치면서 정치인 이미지가 커졌지요.
"제가 아무리 다른 일을 해도 어디 가면 다 <전원일기> 이야기만 하더라고요. 이후에도 수없이 많은 드라마와 작품을 했어도 사람들 인식에는 그게 가장 크게 남아있나 봐요. 저는 그냥 좋은 배우로 기억되고 싶어요. 좋은 작품에서 좋은 배역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관객들이 내 연기를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 실내에 있는 벽시계를 올려다봤다. 인터뷰 예정 시간을 넘기고 있는 듯했다. "끝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하자 장관은 "아냐, 좀 더 해도 돼. 괜찮아."라며 말을 이어갔다. ' 윤석열정부 임기 동안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마무리하고 싶으신 문화정책도 구상하고 계시지요. '
"한국 콘텐츠 발전의 뿌리가 되는 순수예술을 지원하고 키워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요. 앞으로 불필요한 규제 개선, 저금리 대출 지원이나 정책 펀드 마련 등을 통한 순수예술 투자 활성화와 금융 지원이 확실하게 확대될 겁니다. 문체부의 핵심 역할이 창작자 보호인 만큼 지적재산권을 확보하고, 해외 진출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일에도 집중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올해에는 외래관광객 2천만 명 유치를 위해 열심히 달려 보려고요. 지역에 직접 가서 보고 좋은 점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알리겠습니다. 비자나 교통 문제 개선 등 지자체·관계 부처와 함께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는 그가 점심을 하자고 했다. 일정상 계획되지 않은 말이었다. 연극인 후배로 생각한 배려처럼 느껴져 일행들과 현대미술관 옆 비빔밥 집으로 향했다. 길가에서 그를 알아보는 시민들이 인사를 건냈고 동네를 걷는 것 처럼 행동했다. 1시간 정도의 식사 시간 동안 그는 주로 연극계의 변화되는 지원제도와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꺼냈다. 그는 사석(私席)의 질문에도 거침없이 장관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대화에는 편집은 없었고 그도 그것을 인식하지 않았다. 문화현장에서 답을 찾으려는 듯 보였다. 말투는 감각적인 배우의 대사처럼 들렸고 가공되지 않았다. 진솔해 보였다. 식사를 마친 뒤 밖으로 나와 대변인과 현대미술관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무대 위 화려한 배우 유인촌 보다는, 고단해 보이는 장관 유인촌이였다. 그는 몇차례 질문을 던진 문화정책 변화예고를 재차 확인하는 말에 "알았어, 알았어"하며 1막에서 퇴장해 2막 등장을 기다리는 배우처럼 현대미술관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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