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48>수험생들의 열망이 만들어낸 시험의 신, 괴성(魁星)

입력 2024-05-09 00:16:17 수정 2024-05-13 00:04:29

미술사 연구자

김덕성(1729-1797),
김덕성(1729-1797), '괴성도(魁星圖)' 종이에 담채, 33×23.3㎝,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중국풍이 물씬 느껴지는 괴상한듯하면서 멋진 그림이다. 왼무릎을 들어 올린 특이한 자세로 용의 이마 위에 곧추선 인물이 오른손에 붓을 높이 들었고, 왼손엔 사각형의 어떤 물건을 들고 있다. 주인공은 고개를 들어 붓 끝을 쳐다보는 반면, 용의 눈동자는 마치 관람자를 힐끗 곁눈질하는 듯 화면 밖을 향한다. 시선의 처리부터 예사 솜씨가 아니다. 용의 뿔 뒤로 고사리 순 같은 하얀 물보라가 있어 구름 속의 운룡(雲龍)이 아니라 바다의 용이다.

오른쪽에 누군가가 '현은(玄隱) 김덕성(金德成)'으로 써넣어 영조~정조 때 활동한 화원화가 김덕성의 작품으로 일찍이 알려졌지만, 주인공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의견이 많았다.

그래서 제목도 여럿이었다. 기우(祈雨)의 염원이 담긴 뇌공도(雷公圖)라고 했던 것은 비를 내려주는 용의 머리를 밟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문창제군도(文昌帝君圖)라고 한 것은 왼손의 물건을 벼루로 보아 붓과 벼루를 들었으므로 문장과 학문의 신인 문창제군으로 이해한 것이다. 문창제군은 별자리인 문창성(文昌星)을 의인화하고 신격화한 도교의 신이다. 용은 신선의 조력자이자 탈 것으로 신선도에 종종 등장한다.

여러 연구자들이 중국의 비슷한 그림이나 조각상, 중국을 여행했던 조선 후기 학자들의 기록 등을 추적한 결과 이 그림의 주인공이 과거시험과 관련되는 '괴성(魁星)'임이 밝혀졌다. 청나라에서는 별도의 공간에 조각상으로 주로 모셔졌고, 조선에서는 그림으로 그려져 괴성도로 불렸다고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나온다. 김덕성의 '괴성도'는 과거 급제를 열망한 수험생들의 신을 그린 작품이다.

김덕성은 영조 38년인 1762년 궁중에서 교훈용 책자로 '중국소설회모본(中國小說繪模本)'을 만들 때 특별히 이름이 언급된 화원이다. 이 책은 왕실에서 소장한 중국의 소설류 책에 들어있는 삽화들 중에서 교육적 관점에서 128점을 골라 화원들이 재창작한 그림을 모은 책이다.

당시 이 일을 주관한 왕세자는 사도세자다. 사도세자는 병증이 심한 상황이었고 소설에서 위안을 얻고 있었다. 이 작업을 위해 사도세자가 화원 김덕성을 지목한 것은 신장(神將)을 잘 그렸다고 한 그의 화풍과 화가로서의 역량이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왕이나 왕세자의 그림에 대한 취미는 통치자 또는 차기 통치자의 성학(聖學), 예학(睿學)에 바람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 후기 왕들은 각각 총애하는 화원화가가 있었다. 숙종은 이명욱을, 영조는 김두량을, 정조는 왕세손일 때부터 줄곧 김홍도를 총애했다. 김덕성은 비운의 왕세자 사도세자가 총애한 화원이었다.

미술사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