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982년 11월 5일, 하늘이 내려앉은 듯한 하루였다"

입력 2024-05-05 14:47:28 수정 2024-05-05 18:43:21

독도 수호영령 고(故) 주재원 경비대장…아내 장노식 씨 42년 만의 사부곡
두 아들·손자녀 등 7명 독도 방문…마음 담은 편지 읽으며 눈물 흘려

4일 독도 동도 정상에 설치된 위령비를 찾은 고 주재원 경비대장의 가족이 주 대장의 명복을 빌고 있다. 사진 앞쪽부터 주 대장의 손자 주예성(재만 씨 아들), 장남 주재현, 아내 장노식, 며느리 황은하(재현 씨 아내), 손녀 주예린(재만 씨 딸), 손자 주예준(재현 씨 아들). 주재만 씨 촬영
4일 독도 동도 정상에 설치된 위령비를 찾은 고 주재원 경비대장의 가족이 주 대장의 명복을 빌고 있다. 사진 앞쪽부터 주 대장의 손자 주예성(재만 씨 아들), 장남 주재현, 아내 장노식, 며느리 황은하(재현 씨 아내), 손녀 주예린(재만 씨 딸), 손자 주예준(재현 씨 아들). 주재만 씨 촬영

독도 정상에는 독도를 수호하다 순직한 7명의 경찰관을 추모하려 세운 독도 경찰 위령비(이상기 경위, 주재원·허학도·김영열·이이출 경사, 권오광 수경, 김영수 상경)가 있다. 모두 20~ 40대로 사회에서 가장 왕성히 활동할 나이에 가족을 떠나 독도의 별이 됐다.

지난 4일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동도 정상에 주둔 중인 독도경비대에 7명의 귀한 손님이 찾았다.

이들은 1982년 11월 5일 새벽 독도에서 순직한 고(故) 주재원 경비대장의 아내 장노식(75) 씨와 자녀 등 후손들이었다. 42년 만에 가족의 흔적을 찾아 온 것이다.

주 대장은 당시 침몰하는 독도순시선에서 2명의 대원을 구하고 남은 대원을 구하다 순직했다. 서른셋 나이에 남편을 잃은 장 씨는 두 아들 재현(당시 8살)과 재만(당시 6살)을 뒤로하고 세상을 떠난 주 대장이 야속했고, 남편을 데려간 독도가 너무나 미웠다.

장 씨의 부친 장영주 상병 또한 6·25 전쟁 때 전사했다. 당시 그녀 나이 4살 쯤이다. 장 씨는 혼자서 자식을 키운 어머니의 아픔을 알았고, 어린 나이에 아버지 없이 자란 자신의 경험을 자식인 재현, 재만이가 느낄 것 같아 마음이 더욱 아팠다.

그간 아들들의 권유에도 독도를 찾지 않았던 장 씨는 42년 만에 자식과 손자, 손녀를 이끌고 시공간을 뛰어넘어, 30대에 머물러 있는 주 대장을 이날 만났다.

그간의 원통함, 서러움, 분노 등 모든 감정이 한으로 승화한 그녀는 남편의 비석 앞에서 준비해 간 편지를 읽으며 정제된 감정을 표현했다.

장 씨는 "1982년 11월 5일 그날은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 꺼지는 듯한 하루였다"며 "당신은 헤엄도 잘 쳤잖아요. 두 사람 구하면 됐지 마지막 세 사람까지 구하려고 했느냐"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했다.

그는 남편 없이 자녀를 키우며 살았던 그간의 인생을 담담히 읽었다. 다른 이의 뒷모습을 보고 죽은 줄 알았던 남편인가 싶어 따라간 일과, 목소리라도 듣고 싶은 그리운 마음을 털어놨다.

장 씨가 "행복하게 지내라. 조만간 보자"며 4쪽 분량의 편지를 모두 읽자 동행한 가족들도 모두 장 씨 가슴에 오랜 시간 담겨 있던 마음을 느끼며 울음바다를 이뤘다.

이번 만남을 오랫동안 준비한 아들 주재현(50·국세청 재직) 씨는 "어릴 때 아버지의 빈자리가 컸었다.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운 마음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그렇지 못하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어머니는) 독도를 생각하면 아버지가 떠오르시는 듯, 싫어하시는 것 같았다. 긴 세월 재가도 하지 않으시고 오로지 자식 뒷바라지만 하셨다"며 "이제 자식들도 자리잡고 손자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니 당신의 남편 앞에 떳떳이 마주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기력이 더 떨어지기 전에 만나고 싶다고 하셔서 이번 방문을 추진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