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대곡초등학교 자율동아리 ‘키즈 일렉트릭 오케스트라’
어린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아무 걱정 없이 해맑게 뛰어노는 천진난만한 모습. 뭐가 됐든 행복한 게 제일이라는 아이다운 마음. 하지만 실제 어린이들을 만날 때면 상상과 조금 다른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경쟁의 시대에 주눅이라도 들어 버린 걸까. 학교·학원의 굴레에 갇힌 어린이들은 어딘가 힘이 빠져 보인다.
'너희들은 진짜 어린이 같구나!' 한 영상에 달린 댓글 하나. 영상에는 마스터 키보드를 치고 MPC(미디 패드 컨트롤러)를 누르며 전자 드럼을 두드리는 어린이들이 등장한다. 무엇보다 주목을 받은 것은 그들의 행복한 표정. 기자는 지난 1일 영상 속 화제의 주인공들을 만나고 왔다. 이들은 대구 대곡초등학교 자율동아리 '키즈 일렉트릭 오케스트라'다.
※동아리 부원 17명 중 해당 인터뷰는 김해림(13) 하윤지(13) 남나령(13) 진소연(13) 김채원(13) 학생과 진행했습니다.
-어린이 날을 맞아 이보다 더 좋은 주인공이 있을까. 동아리 소개부터 부탁한다.
▶'키즈 일렉트릭 오케스트라'는 미디 악기를 연주하는 밴드다. 보통 피아노를 치면 피아노 소리가 그대로 전파되지 않는가. 이를 실음 악기라고 하는데 이에 반해 미디 악기는 연주를 하면 컴퓨터가 소리를 바꿔 낸다. 쉽게 말해 나령이가 치는 키보드에서는 기타 소리가 나고, 윤지가 치는 키보드에서는 드럼 소리가 난다. 이런 키보드를 마스터 키보드라고 하는데 미디 악기의 한 종류다. 이 외에 우리가 다루는 미디 악기에는 MPC(패드로 된 드럼), 전자 드럼이 있다.
-초등학교 밴드는 캐스터네츠 혹은 트라이앵글이나 치는 정도라 생각했다. 미디 악기 밴드는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이 악기들이 어렵지는 않나.
▶실음 악기보다 오히려 더 쉽다. 컴퓨터가 알아서 소리를 변환시켜 주니 박자에 맞춰 악기를 누르기만 하면 된다. 밴드 담당 선생님(KUSYO 쌤)께서 처음에 미디 악기로 밴드를 만드셨던 것도 그 이유였다고 한다. 또한 KUSYO 쌤이 많은 것을 고려해 곡을 선곡해 주시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된다. 쉽게 연주할 수 있는 비트나 짧고 간단한 멜로디, 그리고 많지 않은 악기로 구성할 수 있는 곡들이 우리가 연주해온 것들이다. 예를 들어 힙합은 단순하고 몇 안되는 비트가 반복된다.
-그야말로 '스쿨 오브 락'이다. 밴드 활동을 시작했던 당시 이야기도 듣고 싶다.
▶작년 KUSYO 쌤이 우리 학교로 발령오셨는데, 그때 이 밴드를 개설하셨다. 그리고 오디션을 본다고 하길래 친구들과 함께 신청을 했다. 오디션은 매 학기마다 새로 하는데 때마다 부원을 새로 뽑고, 맡는 악기도 매번 달라진다. 쌤 말씀으로는 우리에게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기 위함이라 하셨다. 올해 1학기에는 40명 넘게 오디션에 응모했다. 오디션은 이 수많은 친구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해야 하는데 너무 떨렸다.
-연습을 하면서 실력이 느는 것을 느끼나. 대부분 동아리에서 처음 악기를 다룬 초보자들이라고 하던데.
▶동아리에 들어와서 처음 배운 악기들이 많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미디악기는 실음악기에 비해 익숙해 지는데 시간이 덜 든다. 연습하는 만큼 실력이 느는 기분을 느꼈기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합주가 어려운 부분도 있다. 각자 연습할때는 잘하다가도 맞춰보면 안 맞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함께 여러 번 맞춰보고 연습하다 보면 어느순간 합이 딱 맞게 된다. 그때 정말 뿌듯하고 성취감을 느낀다.
-교내 공연도 하는 것 같은데 그 이야기도 좀 해달라.
▶우선 졸업식 때가 기억난다. 질풍가도를 공연했었는데 정말 신났었다. 5,6학년이 참석하는 자리였는데 떼창을 해주더라. 그때 감정이 벅차 올랐다. 그때의 떼창을 기대하고 입학식 때는 1학년 친구들을 위해 뽀로로를 편곡해서 공연했다. 그런데 졸업식 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우리는 아무래도 락 느낌의 공연이다보니 동요 뽀로로의 느낌과는 많이 달랐다. 그래서 1학년 후배들이 놀라더라. 한 친구는 울먹이기까지 했다. (웃음) 버스킹 공연이라고 학교 1층 정문쪽에서 공연을 한 적도 있다. 그 때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연주했다. 우리 밴드가 힙합, 아이돌 노래, 영화 OST, 동요 편곡 등 다양한 장르를 다루다 보니 공연 때마다 호응이 좋다.
-공연을 하다가 실수한 적도 있나.
▶물론이다. 박자를 틀린다던가, 실수로 다른 음을 눌러버린다던가, 노래를 부를 때 첫 음을 잘못 잡았다던가. 그런데 우리 밴드는 실수를 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내가 실수를 했다고 고백하면 옆에 친구가 말한다. '사실 나도 틀렸어'. 그러면 깔깔 웃고 지나간다. KUSYO 쌤도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다. "아무도 모르니까 그냥 넘어 가세요~"
-우리는 어릴 때부터 실수를 두려워 하는 법을 배우며 큰다. 그렇기에 무언가에 도전 하는 것이 어려워 진 것 같다. 하지만 이 밴드 안에서는 그런 게 없는 것 같다. 이번 질문은 조금 추상적일 수도 있겠다. 밴드를 하면서 본인들의 생활 혹은 생각이 변한 점이 있는가
▶동아리가 생기기 전에는 학교에서 공부만 했었다. 또 매일매일이 항상 똑같았었다. 집-학원-집-학교. 하지만 동아리를 하면서 생활이 다양해졌고 밴드 활동이 삶의 활력이 됐다. 어떻게 보면 단조로운 하루는 똑같지만 거기에 밴드가 더해지니 모든 생활이 즐거워진 것 같다. 또 우리가 힘들게 완성시킨 결과물을 발표할 때 짜릿하고 즐거운 마음이 든다. 거기에다 주변에서 잘한다고 격려 해주니 자신감도 생긴다.
-본인들이 연주하는 영상이 SNS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사실을 아는가. 래퍼 빈지노, 세븐틴, 백예린 등 인기 연예인들이 "수준 높은 연주"라며 댓글도 달았더라. 외국인들 선플도 정말 많다.
▶당연하다. 평소에 좋아하던 가수들이 우리 음악을 좋아해주니 진짜 뿌듯하다. 영상을 편집해서 올려준 KUSYO 쌤 덕분이다. 다른 밴드나 가수와 콜라보도 해 보고 싶다.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 있는가. 어떤 말이라도 좋다.
▶오늘 이야기 한 것들이 신문에 나간다고 했지 않나. 그러면 부모님도 볼 수 있는건가. 받고 싶은 어린이날 선물을 말해도 되는건지 모르겠다.
-하하. 어린이 다운 답변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을 바꿔야겠다. 이 밴드를 만들어준 KUSYO 선생님께 한마디씩 부탁한다. 영상 댓글을 보면 "저런 스승이 있는게 부럽다" "저 학교로 전학가고 싶다"라는 글이 많다. 기자 본인도 매우 동의하는 바다.
▶여태까지 선생님들께는 쭈뼛쭈뼛 대느라 바빴던 것 같다. 하지만 KUSYO 쌤은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친구 같은 존재다. 쌤이 악보를 직접 만드셔서 그런지 궁금한 점을 잘 설명해주신다. 음악이란 장르를 보는 눈을 키워주신 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에게 이런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 너무 감사하다. 쌤은 2013년도 첫 발령 받은 학교에서부터 밴드를 만드셨다고 하시더라.
그때 학생들이 지금은 고등학생이 됐단다. 한 선배님은 밴드 활동을 계기로 실음 악기에도 관심을 갖고 중고등학교 밴드에 들어가 기타도 배우고 드럼도 치고 한다더라. 우리가 나중에 음악을 하게 될지, 아니면 다른 걸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뭘 좋아하는지에 대한 길을 열어준 선생님께 고맙다. 가끔 "연습 안하면 다른 학생으로 밴드 멤버 교체합니다" 라고 협박만 안 했으면 좋겠다. (웃음)
사실 이 인터뷰는 본인의 실명도, 얼굴도 밝히지 말아 달라는 담당 교사(가명 KUSYO)의 조건 하에 진행 됐다. 자신은 그저 아이들에게 길을 내어주는 사람일 뿐이라며 주목 받기를 한사코 거절한 것. 그리고 KUSYO 쌤은 말한다. 밴드를 만들고, 연습을 주도하고, 영상을 찍고, 편집을 하고, 유튜브에 올리는 일련의 귀찮은 일들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라고.
"학생들에게 성공하는 경험을 심어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평가 기준이 모호하고 정답이 없는 음악 교과를 선택했고, 미디 악기라는 쉽지만 성취감은 극대화 할 수 있는 분야를 택했습니다. 매 학기마다 오디션을 보고 다른 악기를 경험해보게 하는 것은 많은 학생에게 '취향의 씨앗'을 만들어 주기 위한 노력이죠. 모든 아이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그걸 키워 주는 게 교육자가 해야 할 일이고요.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이 쑥쑥 자라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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