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방·무신사·컬리 등 국내외 유니콘 기업 발굴…스타트업 신화적 존재
"가장 무섭고 냉정한 것이 돈…벤처 투자는 기다림의 미학"
대중에게 이름은 다소 낯설지만 스타트업, 벤처기업에 신화적 존재가 있다. 직방·무신사·컬리·두나무·몰로코 등 국내외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과 카카오를 초기에 발굴하고, 설립 10년 만에 운용자산(AUM) 1조2천억원을 넘긴 국내 톱티어 창업투자회사(벤처캐피탈, VC) DSC인베스트먼트. 자본시장 최전방에서 미래 산업의 주축이 될 초기 기업을 키우는 DSC인베스트먼트의 수장, 윤건수 대표이사(한국벤처캐피탈협회장).
지난달 25일 서울숲이 보이는 서울 성동구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2년 전 광화문에서 만났을 때와 한점 달라진 게 없었다. 예전에는 회사 이야기를 했다면 이날의 윤 대표는 관계와 경험, 독서, 비전 같은 인문학적 이야기를 하며 고향 젊은이를 향한 응원의 메시지에 주력했다는 점이 달랐을 뿐.
"학생들이 창업을 해보는 게 중요해요. 창업을 해서 초대박이 나면 그 길로 계속 가면 되고 그게 아니더라도 도전하고 경험해보는 게 중요한 거예요. 이런 경험이 있는 사람이 토익 900점을 받는 사람보다 가치 있어요."
-전공이 금융이 아닌 전자공학이다. 어떻게 VC라는 영역에 도전하게 됐나?
▶보통 대학 학과를 정할 때 거기에 관심이 있다기 보다 성적 따라, 친구 따라 간다. 그래서 경북대 전자공학과를 진학했고 후에 적성검사를 했더니 경상계열이 잘 맞는 것으로 나오더라.
학교를 마치고 LG에 입사해 연구개발(R&D) 엔지니어로 3년 정도 근무했는데 확실히 적성에 맞지 않다고 느꼈다. 그래서 연구기획 부문으로 업무를 바꿔달라고 했고, 그제야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았다.
그리고 회사에서 유학을 보내줘 미국 메사추세스공과대에서 MBA를 취득했다. 당시 미국에서 VC를 처음 보고 '이런 비즈니스도 있구나'라며 강한 인상을 받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잊지 못하다가 1999년 한국기술투자에서 심사역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DSC인베스트먼트를 설립 4년 만에 코스닥에 상장했다. 어려움은 없었나?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냉정한 것이 돈이다. 이 세계는 내가 투자를 해서 실수를 몇 개 하면 계속 있기 곤란하다. 한 번 실수하면 투자사가 존폐 갈림길에 서는 투자도 있다.
투자한 다음부터 내 생각처럼 잘 되는 회사는 거의 없다. 투자받은 회사가 굴곡을 거쳐서 나중에 성장한다. 그 시간을 내가 기다려주고, 기업과 같이 호흡을 맞춰서 나가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서로 도와야 한다. 벤처 투자는 '기다림의 미학'이다. 이게 익숙하지 않으면 힘들다.
-대구경북 스타트업은 지역의 창업 생태계와 지원 체계에 만족도가 높다. 목마른 부분은 서울 성수동을 중심으로 한 VC와 접점이다.
▶아니다. 서울 한복판에 있어도 기업의 핵심 인재가 글로벌 시장에서 클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우리 할아버지 세대는 경북 칠곡에 살아도 밥 먹고 살 수 있었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대구에 가야 돈 벌 수 있었고, 우리 세대는 서울에 와야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됐다. 다음 세대는 서울도 아니고 글로벌이다.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앞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준이 아니면 힘들다. 국내 시장이 자꾸 줄어들어서다. 벤처에서 제일 큰 화두가 글로벌이 됐다. 대구경북 벤처도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생각이 지역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생각, 비즈니스 모델, 기술 등 모든 것이 세계를 지향해야 한다.
-투자 결정을 할 때 어떤 점을 눈여겨보나?
▶자기만의 '스트라이크존'이 있다. 투자를 하며 존을 미세조정한다. 나는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
국내 유니콘 기업에는 공통점이 있다. 먼저 벤처기업이 세운 가설 비즈니스 모델이 성공할지 안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만약 생각대로 된다면 시장 규모가 엄청나게 크고 내 삶을 편리하게 바꿀 수 있겠다는 상상이다.
다음은 벤처와 투자자 관계가 최소 1년 이상 잘 아는 사이다. 처음 투자자를 만나면 비즈니스 모델을 부풀려 말하기도 한다. 심사역도 그런 점을 알고 걸러 듣는다. 그런데 만나고, 또 만나고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시간이 1년 이상 걸렸고, 그 사이 기업이 말한 비전을 향해 조금씩 이루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투자자는 기업에 대한 확신이 생긴다. 이런 투자가 확률적으로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투자는 결혼 후 배우자와 비슷하다. 투자한 다음 기업 모습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초기 기업은 한 번 투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3~5회 더 투자를 받아야 한다. 올해 1월 1일 투자하면 다음 투자는 1년에서 1년 6개월 길게는 2년 후 이뤄진다. 그 사이 벤처가 투자자에게 얼마나 성실한 데이터를 서류로 만들어 제출하느냐가 중요하다. 사업은 문제 해결의 과정인데 여기서도 서로 교감하면서 함께 간다면 신뢰는 더 두텁게 쌓인다. 그래야 다음 투자가 이루어진다.
대한민국 유니콘 중 여기에 예외는 단 하나도 없다.
-정부와 자치단체의 창업 지원 정책은 어떻나?
▶지방의 창업은 학교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학부생 창업도 권장하지만 대구를 예로 들면 경북대와 복현동을 중심으로, 경북은 포스텍과 포항을 중심으로 교수 창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 지역사회에서 가장 엘리트들이 경북대,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포스텍(포항공대), 울산과학기술원(UNIST) 등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 인력이 지방 창업 생태계에 활기를 불어넣어 줘야 한다.
학교에서도 30대 젊은 박사를 적극적으로 데려와서 학내 창업을 하게 돕고, 학생들도 곁에서 배우는 선순환이 필요하다. 요즘 대기업도 신입이 아닌 경력을 뽑으려 한다. 도서관에서 취업 공부만 한 학생이 무슨 경력이 있겠느냐.
또 하나. 연말이면 자치단체에서 우리가 지원한 기업이 CES 혁신상 몇 개 받는다고 자랑이다. 혁신상 받았다고 성공한 기업이 몇 개나 되는지 모르겠다. 상에 얽매이지 말고 비즈니스 모델을 어떻게 더 구체화, 현실화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수상했다고 투자를 받고, 기업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벤처든 상업이든 자기 일에 도전하는 고향 후배들에게 전하고픈 말은?
▶보는 만큼 생각한다. 많이 보고 넓은 세상을 경험하는 게 중요하다. 대구경북에 틀어박혀 있으면 그거밖에 모른다. 이제는 지역만으로, 한국만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그리고 직접 경험 못지않게 간접 경험이 중요하다. 벤처하는 분들에게 '한 달에 두 번은 서점에 가보시라'고 말한다. 서점이 주는 메시지가 있다. 갈 때마다 매대에 있는 책에 변화가 있다. 그게 시대의 흐름이고 기술의 흐름이다. 요즘은 다 인공지능(AI), 반도체다. 작년에는 2차전지, 블록체인이었다. 이런 트렌드도 한 번 보고, 그 책도 사서 한두 권씩 읽기를 권한다. 종이신문도 매일 읽으며 흐름을 짚어보면서 간접 경험을 많이 쌓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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