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In] 산으로 가는 연금 개혁안…누구를 위한 개혁인가

입력 2024-04-28 06:30:00

◆개혁이 아닌 개악…"시민대표에 정확한 자료 주지 않아"
◆시민대표단 설문조사 결과 후폭풍…2030대 반발
◆정부와 집권여당이 결단 내려야…시민대표단 선택은 참고

김상균 연금개혁 공론화위원장이 22일 국회 소통관에서 숙의토론회 및 시민대표단 설문조사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상균 연금개혁 공론화위원장이 22일 국회 소통관에서 숙의토론회 및 시민대표단 설문조사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국민연금개혁특별위원회 공론화위원회(이하 공론화위)가 내놓은 '더 내고 더 받기'식 국민연금 개혁안을 두고 개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재정 안정화에 방침을 찍었던 정부가 "공론화 과정에서 많은 지지를 받은 안에 대해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며 공론화위 개혁안에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일부 전문가들도 소득대체율 상향이 재정 안정이라는 연금 개혁 취지에 맞지 않고, 미래 세대에 심각한 부담을 전가한다며 정부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

◆개악을 넘어 대참사

공론화위는 두 가지 연금 개혁안을 두고 시민대표단 500명을 상대로 4차례 토론회를 개최했다. 현재 보험료율 9%이며 소득대체율은 40%다. 이대로 두면 기금은 2055년 고갈한다.

이에 대해 1안은 보험료를 9%에서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생애소득 대비 노후연금 비율)도 40%에서 50%로 올렸다. 소득보장안이다.

2안은 보험료를 9%에서 12%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현행(40%)대로 유지했다. 재정안정안이다.

시민대표는 1, 2안을 두고 4차례 토론회를 개최했고, 지난 21일 4차 토론회 후 1안을 선택했다.

연금 전문가와 정부 등은 역대 연금 개혁을 재정 안정에 방점을 두고 추진해 왔다. 그 결과 보험료를 지속적으로 올렸고, 소득대체율은 꾸준히 낮췄다.

하지만 시민대표단이 보험료율을 올리는 대신 소득대체율도 올리는 방안을 채택하자 당혹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동안의 개혁안 방향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와서다.

1안과 2안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안은 기금 고갈 시기가 2055년에서 2061년으로, 2안은 2062년으로 늦춰진다. 보험료도 각각 13%, 12%로 비슷하게 오른다. 여기까지는 별 차이가 없다.

문제는 소득대체율과 그에 따른 후폭풍이다.

1안은 소득대체율이 50%, 2안은 40%로 현재와 동일하다. 보험료율과 기금 고갈 시기가 비슷한 데도 혜택은 1안이 훨씬 커 보인다. 1안 찬성이 높게 나온 배경이다.

하지만 1안과 2안의 재정 안정 효과 측면에서는 큰 차이가 난다. 전문가들은 이를 시민대표들에게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고 반발한다.

우선, 누적 적자 규모다.

1안대로 하면 기금 고갈을 2061년으로 늦추되 그 후 지출이 급격하게 늘어난다. 소득대체율 인상 효과가 30~40년 후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2093년이면 연금 적자가 702조원에 달한다.

반면 2안은 같은 기간 누적 적자를 1천970조원 감소시킨다. 두 안의 미래세대 부담 전가 규모 차이가 2천700조원에 이른다. 1안이 개악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둘째, 보험료율이 급등한다. 1안대로 개편한 뒤 2061년이 되면 기금이 고갈돼 매년 보험료를 걷어서 연금액을 지급하는 부과방식(지금은 수정적립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경우 1안은 2078년 소득의 최고 43.2%를 보험료로 내야 한다. 그래야 그해 연금을 받는 사람에게 줄 수 있다. 현행 제도를 그대로 두거나 2안대로 하면 35.1%다. 두 안의 격차는 8.1%포인트(p).

소득대체율을 10% 높였는데 1, 2안의 기금 고갈 시점은 고작 1년 차이가 난다. 반면 연금 고갈 뒤 내는 보험료는 8.1%p나 차이 난다. 이는 소득대체율 인상 영향이 뒤늦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소득대체율 40%의 의미는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1년 늘어날 때마다 매년 1%p씩 소득대체율이 올라 40년 가입하면 가입 기간 평균 소득의 40%를 연금으로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내년부터 50%로 올리면 매년 1.25%씩 소득대체율이 올라 40년 뒤인 2065년에는 소득대체율이 50%가 된다. 현 노인 세대가 아닌 40년 뒤 미래 세대의 소득대체율이 오르는 것이다. 이에 따른 영향도 기금 고갈 이후 뒤늦게 나타난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공론화위는 다수 전문가가 선호한 재정안정 방안은 무력화시키고 소득대체율을 더 올리자는 위원 중심으로 자문단을 구성했다. 공론화위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주장했다.

또 "공론화위에 보건복지부가 제출한 핵심 재정지표가 소득보장 강화를 옹호하는 자문단 항의로 학습자료에서 배제됐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연명(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지난 22일 브리핑에서 "1안의 소득보장안으로 가면 보험료로 재원을 충당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국고 투입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득보장에 무게를 두는 1안이 재정 안정에 심각한 약점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발언이다. 게다가 보험료로 운영하는 사회보험에 세금을 투입하는 것은 또 다른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이 23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공론화 결과, 연금개혁에 대한 연금행동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국민연금 국가지급 명문화와 소득대체율 50% 보장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이 23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공론화 결과, 연금개혁에 대한 연금행동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국민연금 국가지급 명문화와 소득대체율 50% 보장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포퓰리즘에 흔들리는 연금 개혁

시민대표단의 선택은 참고 자료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5월 29일 전까지 최종안을 마련해 본회의를 통과시켜야 개혁안이 완성된다.

시민대표단의 선택이 미래 세대에 책임을 전가하는 개악이라는 여론이 커지면서 정치권도 쉽게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정부도 지난해 10월 국회에 제출한 국민연금 운영계획안에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에 대해 백지안을 제출했다.

결국 정부와 여당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 야당이 시민대표단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입장이지만 미래 세대에 책임을 일방적으로 전가시키는 개악안에 정부와 집권여당이 손을 들어줄 수는 없다.

선거도 끝난 탓에 집권여당의 부담은 다소 줄었다. 개악을 넘어 대참사 수준이라는 시민대표단의 선택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거대 야당도 마찬가지다. 시민대표단의 선택에 매몰되지 말고 저출산 시대에 나라의 미래를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