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고양이 괴질’ 과 ‘볼드모트 사료’

입력 2024-04-24 12:03:36 수정 2024-04-24 19:04:44

고양이 급사 질병 전국으로 확산…신고 300건, 94마리 이미 사망
기력저하·검은색 소변 등 증상 급성 집단 발병 독성 사료 의심

지난 3월부터 고양이가 급사하는 질병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양이 급사'. '고양이 괴질' 이라고 불려지는 이 질환이 사료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언급되면서 불안감은 더 고조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고양이가 급사하는 질병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양이 급사'. '고양이 괴질' 이라고 불려지는 이 질환이 사료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언급되면서 불안감은 더 고조되고 있다.

◆'고양이 괴질', '고양이 신경근육병증'

최근 반려묘 집사들의 불안이 극에 달해있다. 지난 3월부터 고양이가 급사하는 질병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양이 급사'. '고양이 괴질' 이라고 불려지는 이 질환이 사료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언급되면서 불안감은 더 고조되고 있다.

'고양이 괴질' 과 관련된 증상은 기력저하와 걸음걸이 이상, 그리고 검은색의 소변이 특징이다. 검사를 해보면 근육 손상으로 인한 CK 수치 상승과 근색소뇨가 두드러진다. 그래서 '고양이 신경근육근병증' 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질병이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다묘 가정의 고양이가 동시에 급사하는 사례들이 수의사들 간에 공유되면서 부터 였다. 수의사회와 고양이 전문 수의사들의 고민도 크다. 여느 고양이 질병과의 연관성을 찾기 어려우며, 급성의 집단 발병 사례로 보아 먹거리 독성 소인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감염성 질환은 확률적으로 고양이 보호소나 길냥이들을 임시보호 중인 가정에서 다발하는 경향이 있다. 바이러스, 원충성 감염증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고양이 괴질'의 특성을 살펴보면 가정에서 살뜰히 돌보는 반려묘들에게 집중되는 특징이 있다.

21년 영국에서도 곰팡이 독소 mycotoxin에 오염된 고양이 사료가 고양이 집단 사망을 유발시킨 원인으로 지목되며 사회적 논란이 일었듯이, 사료에 의해 '고양이 괴질'이 발생한 것은 아닌가를 신중하게 고민하게 된다. 현재 수의과학검역원, 농관원, 여타 연구기관에서 해당 질병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과 성분 검사 중에 있다.

4월 22일 현재, 동물보호단체 '라이프'와 '묘연' '에 신고된 고양이 괴질 의심 사례는 약 300여 건에 달하며, 이들 중 94마리는 이미 사망한 것으로 파악되어 있다.
4월 22일 현재, 동물보호단체 '라이프'와 '묘연' '에 신고된 고양이 괴질 의심 사례는 약 300여 건에 달하며, 이들 중 94마리는 이미 사망한 것으로 파악되어 있다.

◆신고접수 300건 , 94마리는 이미 사망

4월 22일 현재, 동물보호단체 '라이프'와 '묘연' '에 신고된 고양이 괴질 의심 사례는 약 300여 건에 달하며, 이들 중 94마리는 이미 사망한 것으로 파악되어 있다.

동물보호단체 '라이프'와 '묘연' 측은 환경 소인을 염두에 두고, '고양이괴질' 의심 사례를 신고한 가정에서 급여한 사료 등의 환경 정보들을 취합 분석하였다. 이 과정에서 밝혀진 공통된 특이점이 확인되었다. 올 1월부터 4월 사이 특정 사료제조사에서 생산된 사료들이 유난히 많다는 사실이다.

동물보호단체 '라이프'와 '묘연' 측은 '고양이 괴질'의 원인이 감염성 질환이 아닐 경우를 대비하여, 해당 사료제조사에서 생산된 사료들이 고양이에게 해를 끼쳤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를 농축식품부에 알리고 신속한 조치와 검사를 요청한 상태다.

'고양이 괴질'을 신고 접수한 반려묘 가족에게는 급여 중이던 사료를 밀봉하여 냉동보관하도록 권고했으며, 사료의 일부는 소비자가 직접 농축식품부로 검사를 의뢰토록 권장하고 있다.

◆ 농축식품부의 시료 3종 유행성 평가결과 '음성'

지난 19일, 농축식품부는 최초 의심 사례로 추정하며 제출된 3건의 사료 시료 분석을 마치고 유해물질(78종), 바이러스(7종), 기생충(2종)에 대한 평가에서 유해성분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아직 추가 접수된 30여 종의 사료 시료에 대해서는 검사 중이라고 발표했다.

이번 검사는 현행 '사료관리법'에 근거해 사료 안정성을 평가하는 유해성 평가 검사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 검사 결과 만으로 고양이가 먹어도 무해하다는 주장은 섣부르다. 이미 의뢰된 폐사체에 대한 부검 결과와 신고된 사료 시료 전반에 대한 검사 과정들을 지켜봐야 한다. 국내외 고양이 질병 전문의들과 독성분야 전문가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의외로 사료에 의한 독성 소인들은 단편적으로 감별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국내 개와 고양이 사료의 생산, 승인, 유통 관리는 농축식품부 소관으로, 가축 사료 관리와 마찬가지로 '사료관리법'에 근거하여 관리되고 있다.
국내 개와 고양이 사료의 생산, 승인, 유통 관리는 농축식품부 소관으로, 가축 사료 관리와 마찬가지로 '사료관리법'에 근거하여 관리되고 있다.

◆국내 '사료관리법'은 가축 사료 관리법

국내 개와 고양이 사료의 생산, 승인, 유통 관리는 농축식품부 소관으로, 가축 사료 관리와 마찬가지로 '사료관리법'에 근거하여 관리되고 있다. 그런데 사료관리법의 제 1조 목적을 잠시 살펴보자 '축산업 발전에 이바지함이 그 목적이다.'

사료를 섭취하는 동물의 건강에 대한 배려보다는 사료를 생산 유통하는 축산업과 축산농가의 이익에 이바지함이 더 우선되는 법안이다. 목적이 이러다 보니 가축 사료에 사용되는 다양한 원료가 사용 허용되며, 유통기한이 지난 사료들도 일부 재활용하여 사용할 수 있으며, 다양한 첨가물들이 개와 고양이 사료에 실험적으로 첨가될 수도 있다.

국내사료 제조사들도 국제적인 반려동물 사료 제조 메뉴얼을 바탕삼아 위생적이고 건강한 사료를 생산하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현행 '사료관리법' 은 사료의 장기 복용에 따른 동물에 미치는 위해성 평가와 책임에 있어서는 의무화되어 있지 않다. 누구든 OEM 생산 방식으로 사료제조사를 통해 신제품을 출시할 수 있으며, 판매가 부진하거나 문제가 발생하면 생산을 중단하면 그만이다.

최근 수십 종의 다양한 국내산 반려동물 사료가 경쟁적으로 출시되었고, '휴먼그레이드' , '유기농' , '기능성' 등의 홍보들을 너무나 쉽게 활용할 수 있었던 배경도 이러한 배경 탓이다. 수의사들이 국내산 사료들을 반려인들에게 선뜻 권유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볼드모트 사료'의 발원은 국내산 사료의 불신

고양이 보호자들 간에 당장 어떤 사료가 위험한지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볼드모트 사료 리스트'가 활용되고 있다. '볼드모트 사료'란 특정 사료에 대한 경고를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은어다.

'볼드모트' 란 '해리포트' 영화에서 누구던지 그 이름을 말하면 죽게된다는 설정의 캐릭터인 '볼트모트'에서 유래되었다. 과거 소비자가 제품명을 직접 거론하며 특정 사료의 위해성을 언급할 당시, 제조사로 부터 블랙 컨슈머로 고소를 당하는 처지를 피하기 위해 은유적으로 위험한 제품의 정보를 공유하는 방법이다.

고양이의 더 큰 희생을 예방하고자 하는 반려인들의 고육책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확정되지 않은 사실을 바탕으로 '볼드모트 사료 리스트'가 퍼지다 보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는 않을까 염려된다.

이러한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는 농축식품부가 역학 조사를 바탕으로 의심되는 사료 시료에 대한 선제적 회수 조치와 신속하고 광범위한 성분 검사들을 마쳐야 한다.

◆안전한 사료가 반려동물 사료의 경쟁력

'볼드모트 사료 리스트' 정보가 공유되면서 고양이가 조금만 이상해도 죽을 병은 아닌지를 걱정하는 보호자들이 늘고 있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국내산 사료 전체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호소한다. 이번 사태로 사람들의 집단 질병 발생 시 소관 부처의 대응 조치들과 비교해보면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질병 예방과 확산 방지를 위한 신속하고 선제적인 조치들은 찾아볼 수가 없다.

동물보호단체가 역학 조사를 시작하고 그 심각성이 언론에 이슈화가 되고 나서야, 농축식품부는 제출된 시료의 유행성 여부를 평가하는 모양새다. 문제가 확인되면 행정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이다. 현행 '사료관리법'은 사료관련 산업군에 이바지함이 목적이지 동물의 건강을 배려하는 법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내 반려동물 사료 산업이 반려인과 수의사로 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반려동물의 건강을 최우선시 하는 '반려동물 사료관리법' 이 필요하다.사람들의 먹거리 안전 관리에 비견될 정도의 반려동물 사료에 대한 안전성 평가를 시행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가장 안전한 사료가 반려동물 사료의 국제적 경쟁력임을 강조하고 싶다.

◆'고양이 괴질' 증상이 의심된다면

고양이가 아래와 같은 증상 중 세가지 이상이 관찰된다면, 즉시 동물병원을 방문하시길 권고한다

1. 식욕부진 : 위장염, 간 신장 질환의 초기 징후일 수 있다.

2. 무기력: 섭취장애, 탈수, 발열, 통증 등의 초기 징후이다.

3. 구토와 설사: 위장염, 급만성 질환의 초기 징후일 수 있다.

4. 비틀거림 : 신경 및 근육병증, 간/신부전에 의한 악액질(cachexia) 상태.

5. 검은색 소변 : 심각한 질병 단계에서의 근색소뇨, 혈뇨.

동물병원에서는 혈액검사, X-ray, 초음파, 뇨검사 등을 통해 '고양이 괴질'과의 감별진단이 이루어진다. 고양이 신경근육병증, 간부전, 신부전의 소인이 관찰될 경우 집중 입원 수액치료 대상이다.

'고양이 괴질' 의심 환자묘로 진단이 되면 '동물보호단체 라이프'로 신고해주시기 바란다.'고양이 괴질' 의심 사례 환자묘를 대상으로 역학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박순석
박순석

박순석 수의사

SBS TV 동물농장 자문수의사

경북대학교 수의과대학 겸임교수

한국수의임상수의사회 부회장

박순석동물메디컬센터 대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