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남편 폭언·폭행 해방되니…“이젠 가난이 덮쳐온다”

입력 2024-04-09 06:30:00 수정 2024-04-09 13:08:00

시아버지 감시 속에 신혼생활 시작…남편은 아이들에게도 손찌검
살기 위해 딸들과 도망쳤지만 생계 이어나가기 막막해
현재는 고관절·발목 다쳐 거동도 힘들어

지난 5일 김기진(가명·45) 씨와 세 딸이 소파 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성현 기자
지난 5일 김기진(가명·45) 씨와 세 딸이 소파 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성현 기자

"대학교 생활은 어때?"

이제 막 대학교에 입학한 딸에게 질문을 던져 봤지만 대답은 없었다. 알고 보니 딸은 학과 친구가 말을 걸어오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있는 상태였다. 친구를 사귀면 밥도 같이 먹어야 하고 쇼핑도 하면서 어울려야 하는데 그럴 돈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딸의 속마음을 들을수록 김기진(가명·45) 씨는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개강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그가 딸에게 해줄 수 있는 건 30km 거리의 학교를 오갈 수 있는 교통카드를 쥐어주는 게 전부다.

◆ 남편 따라 한국으로...딸들까지 폭언·폭행 시달려

기진 씨는 필리핀 이주여성이다. 그는 2004년 필리핀에서 결혼을 전제로 6살 터울의 한국인 남자를 소개 받았다. 외국인 남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컸지만 필리핀에 있는 동안 그의 다정함이 마음에 들었고, 결국 기진 씨는 한국행을 택했다.

부푼 꿈을 품고 향한 한국에서 기진 씨는 아무런 선택도, 기회도 받지 못했다. 방이 몇 채 딸려있는 시아버지의 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는데, 밤낮을 떠나지 않고 시아버지의 감시가 극심했던 탓이다. 심지어 장을 보러 갈 때도 매번 시아버지가 동행했다.

남편의 무관심은 기진 씨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첫 만남 때 그렇게 따뜻했던 남편은 한국에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버렸다. 그는 매일 밤마다 만취 상태로 집에 들어왔고, 이후엔 시아버지와 고성을 지르며 싸우곤 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을 때에는 남은 화를 기진 씨에게 쏟아냈다.

그러는 사이 첫째 딸인 진주(가명·18) 씨와 둘째 딸 진희(가명·17)가 1년 사이로 태어났다. 그즈음 남편이 음주운전으로 큰 사고를 쳤고, 시아버지와 관계가 틀어져 자연스레 독립을 하게 됐다. 시아버지의 지원이 끊기자, 기진 씨는 그때부터 인근 공부방에서 원어민 강사로 활동하며 조금씩 돈을 벌기 시작했다. 남편이 가져오는 돈 만으로는 생계를 꾸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셋째 딸 진아(가명·12)까지 태어났지만 술 취한 남편의 폭언과 폭력은 더욱 심해져 갔다. 기진 씨는 물론 아이들에게도 서슴없이 손찌검을 날리는 남편을 보며 독립을 결심했고, 그때부터 세 딸과 함께 이주여성쉼터를 다니기 시작했다. 남편의 '거짓 반성'에 속아 몇 번 터를 나오기도 했으나 사람은 바뀌지 않았다.

기진 씨는 하루빨리 아이들을 안정된 환경에서 키우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결국 돈이 필요했고, 한국말이 서툰 이에게도 높은 임금을 준다던 경북의 한 공장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그나마 안전한 시아버지에게 맡겼다. 주말마다 온다는 얘기에도 시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냈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고 기진 씨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이 결정을 후회했다. 경북에 간 뒤 남편의 연락을 잘 받지 않고 있던 중 하루는 남편이 아이들을 가만두지 않겠다며 기진 씨에게 거세게 협박을 한 것이다. 소식을 듣자마자 앞이 하얘진 기진 씨는 곧장 시아버지 집으로 향했고 인근 경찰들의 도움으로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나왔다.

◆ 생계 이어가야 하는데...거동도 힘들어

경북에서도 변변찮은 집이 없던 기진 씨는 또다시 인근 이주여성쉼터로 향했다. 이곳의 도움으로 남편과는 이혼소송을 진행했고, 아이들은 전학절차를 밟았다.

다시 희망이 보이려는 찰나, 이번엔 기진 씨의 건강상태가 문제가 됐다. 유년기 시절 큰 교통사고가 났었고 그때 1년 가까이 입원할 만큼 고관절이 크게 다쳤는데, 나이가 들면서 고관절은 물론 최근엔 발목까지 상태가 나빠져 버린 것이다. 지체장애인으로 등록된 기진 씨는 지금도 양 다리의 길이가 달라 절뚝이며 걷고 있다.

한국말이 서툰데다 거동마저 불편한 이를 써줄 곳은 없었다. 그나마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시간제 단기 아르바이트나 청소 일자리를 찾아다녔지만 이젠 이마저도 무리다. 영어를 잘한다는 특기를 앞세워 앉아서 할 수 있는 통역 일이라도 구하기 위해 지금은 이주여성쉼터의 도움으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문제는 당장이다. 기진 씨가 경제활동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인 딸 셋을 기초생활수급비 150만원, 주거급여 22만원, 한부모 수당 42만원 등 약 214만원으로 키워내야 한다. 이마저도 둘째 딸이 내년에 20살이 되면 지원은 더 줄어든다. 생활비가 급할 때마다 빌려 썼던 대출도 약 300만원이나 있다.

생계가 빠듯하다 보니 세 딸은 용돈은커녕 휴대폰 요금도 제대로 못 내고 있고, 고3인 둘째 진희는 버스비가 부족해 학교에서 30분 거리인 집을 하교할 때마다 걸어가고 있다. 급한 대로 첫째 진주 씨가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구하기 위해 20곳이 넘는 곳에 지원을 했지만 모두 다 감감무소식이었다. 진주 씨는 최근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고 있다.

집안일을 하다 저릿하게 올라오는 발목 통증에 기진 씨가 소파에 몸을 뉘자 방에 있던 딸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달려와 안긴다. 딸들에게 용돈도, 문제집 살 돈도 줘야 하는데, 몸은 무겁기만 하다. 배가 고프다는 막내딸의 투정에 기진 씨는 겨우 옅은 미소를 띤다.

*매일신문 이웃사랑은 매주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소중한 성금을 소개된 사연의 주인공에게 전액 그대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개별적으로 성금을 전달하고 싶은 분은 하단 기자의 이메일로 문의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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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성금내역]

◆딸에게 늘 미안한 엄마 이정희 씨에게 2,288만원 전달

건강 안 좋아 일은커녕 외출도 못 해 생계가 막막한 이정희 씨(매일신문 3월 26일 10면 보도)에게 2천288만3천870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엔 ▷㈜다우약품(윤종규) 50만원 ▷대흥분쇄기(한미숙) 20만원 ▷동산내과(박경아) 5만원 ▷동산내과(박준석) 5만원 ▷전시형 10만원 ▷이병규 2만5천원 ▷방태표 2만원 ▷신종욱 2만원 ▷석봉호 1만원 ▷성영아 1만원 ▷이정현 1만원 ▷김서연 2천원 ▷이장윤 2천원 ▷'재원수진' 5만원 ▷'혜린이성금' 5만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부신백질이영양증' 앓는 동선이에게 2,319만원 성금

불치병에 가까운 희귀병 판정받아 집에서 투병생활 이어가는 이동선 군(매일신문 4월 2일 10면 보도)에게 48개 단체, 130명의 독자가 2천319만6천76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에스엘㈜ 200만원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200만원 ▷건화문화장학재단 150만원 ▷㈜대구은행 100만원 ▷㈜일지테크 100만원 ▷㈜태원전기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태린(김규남) 40만원 ▷최상규이비인후과 40만원 ▷㈜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한미병원(신홍관) 30만원 ▷㈜동아티오엘 25만원 ▷㈜백년가게국제의료기 25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20만원 ▷대백선교문화재단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삼이시스템 10만원 ▷㈜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10만원 ▷경주천마운전전문학원 10만원 ▷극동특수중량(김형중) 10만원 ▷김영준치과의원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신성산업(김용환) 10만원 ▷신세계로약국(박태환) 10만원 ▷우리들한의원(박원경) 10만원 ▷창성정공(허만우) 10만원 ▷㈜명EFC(권기섭) 5만원 ▷㈜이구팔육(김창화) 5만원 ▷건천제일약국 5만원 ▷다빈치커피대명마루점 5만원 ▷베드로안경원 5만원 ▷선진건설㈜(류시장) 5만원 ▷세무사박장덕사무소 5만원 ▷시온작명소(성병찬) 5만원 ▷위브디자인(김영민) 5만원 ▷이전호세무사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채성기약국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흥국시멘트 5만원 ▷국선도풍각수련 3만원 ▷농협동신통신㈜(김기원) 3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국(방일철) 3만원 ▷청산(우창하) 3만원 ▷사단법인대한민국힐링문화진흥원 1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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