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무에서 4만원으로 가방 9개 사기"…SNS 인기
지난해 국내 온라인 쇼핑몰 폐업 건수 '역대 최대'
11번가 '슈팅셀러'·쿠팡 '로켓그로스', 풀필먼트 강화 나서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 등 초저가와 무료배송을 앞세운 중국 이커머스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잠식하는 속도가 워낙 빠른 나머지 '중국 이커머스의 공습'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시장 분석업체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국내 종합몰 애플리케이션(앱) 사용 순위에서 알리익스프레스 이용자 수는 818만명으로 쿠팡(3천10만명)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테무는 4위다. 알리와 테무를 합치면 국내 사용자만 1천400만명이다.
◆알리·테무의 공습
유튜브 쇼츠, 인스타 릴스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알리깡', '테무깡'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쏟아진다. '테무에서 4만원으로 가방 9개 사기', '15만원으로 봄옷 8개 장만하기' 등 알리와 테무에서 값싸게 구매한 물건들을 소개하는 영상들이다.
알리와 테무에서 배달된 택배 상자를 뜯는 영상물을 올리고 신규 회원 가입을 유도하는 이러한 광고 방식으로 테무는 2월 기준 한국에서만 581만명의 회원을 모았다. 광고를 하는 사람도 24시간 이내 다른 고객을 유치하면 추가 할인까지 해준다.
공격적인 광고에 중국 직구는 날로 늘고 있다. 17일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서 온 전자상거래 물품 건수는 8천881만5천건으로 전년(5천215만4천건)보다 70.3% 증가했다. 지난해 전체 통관된 전자상거래 물품이 36.7%(1억3천144만3천건)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전체 해외직구가 늘어나는 규모보다 중국발 직구 규모가 더 가파르게 올랐다.
한국이 그야말로 글로벌 이커머스 격전지가 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온라인 쇼핑 시장은 크게 성장했는데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227조3천47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209조8천790억원) 대비 8.3% 증가한 수치로 역대 최대다.
JP모건은 한국 온라인쇼핑 시장 규모가 2026년 300조원대까지 성장할 것으로 평가했다. 글로벌 업체의 투자 의지도 강력하다. 최근 알리익스프레스의 모기업 알리바바는 축구장 25개를 합친 면적의 대형 물류센터를 짓는 것을 포함한 1조5천억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우리 정부에 제출했다.
◆국내 시장이 죽는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의 공습에 국내 업체들이 고전을 겪고 있다. 중국 이커머스가 국내 시장을 잠식하면서 지난해 국내 온라인 쇼핑몰의 폐업 건수가 역대 가장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는 폐업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2일 행정안전부 지방행정 인허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폐업 신고를 한 인터넷 통신판매 업체(인터넷을 통해 가구·가전·식품·의류 등을 판매하는 업체)는 모두 7만8천580곳으로 역대 집계 이래 가장 많았다. 올해의 경우 이미 2월까지 두 달 사이에 폐업한 인터넷 쇼핑 업체만 2만4천35곳을 넘어섰다. 지난해 같은 기간 폐업한 업체 수(1만 8천586곳)보다 29.3% 증가한 수치다. 이 속도가 연말까지 이어질 경우 올해 폐업하는 업체는 지난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경향은 이미 미국에서 먼저 시작됐다. 중국 기업 핀둬둬(PDD)가 2022년 미국 보스턴에 설립한 테무는 2월에 열린 미국 '슈퍼볼(미식축구 결승전)' 30초짜리 중간 광고에 90억여원을 들이는 등 마케팅 비용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았다.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쑥쑥 커온 테무에 미국 저가 상품 판매점이 직격탄을 맞았다. 미국판 다이소 '패밀리달러'는 지난 13일 매장 약 1천곳을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올 상반기 중 매장 600곳의 문을 닫은 후, 향후 임대 기간이 만료되는 매장 순으로 추가 폐쇄할 예정이다.
미국과 한국의 폐업 업체 대다수는 중국에서 공산품을 구입한 뒤 국내에 되파는 방식으로 영업하던 곳이었다. 같은 제품인데 알리나 테무에서 더 싼 값에 살 수 있게 되자 소비자들이 중국 플랫폼으로 옮겨 갔고 매출이 급감해 문을 닫은 것이다.
비슷한 온라인 쇼핑몰 플랫폼인 지그재그, 에이블리, 브랜디 등도 알리와 테무의 공세에 매출이 급감했다. 지그재그의 경우 모바일인덱스 기준 올해 1~2월 MAU가 두달 연속 3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때 에이블리, 지그재그와 함께 '3대 여성 패션앱'으로 불렸던 브랜디도 이용자가 급감하고 있다. 모바일인덱스 기준 브랜디의 2월 월간사용자수(MAU)는 약 53만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43% 줄었다.
◆'풀필먼트'·'차별화', 바빠진 국내 이커머스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에 판매자를 빼앗길까 국내 이커머스 업계의 움직임도 바빠지고 있다. 11번가는 처음으로 셀러 대상 풀필먼트 서비스를 시작했다. 쿠팡과 G마켓 등도 각종 셀러 우대책을 내놓고 있다.
11번가는 오픈마켓 판매자를 대상으로 제공하는 자체 풀필먼트 서비스인 '슈팅셀러'를 시작한다. 풀필먼트란 재고 보관부터 포장, 배송, 재고관리, 교환·반품까지 물류 서비스 전반의 과정을 기업에서 직접 관리한다. 번거로운 과정을 판매자 개인이 전담하는 것이 아니니 판매자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다.
쿠팡과 G마켓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3월 풀필먼트 서비스인 '로켓그로스'를 도입했던 쿠팡은 올해 대규모 인력 채용을 진행한다. G마켓은 '스마일배송 저온 물류 서비스'를 새롭게 선보이고 냉장·냉동 제품 익일배송을 시작했다.
중국 이커머스의 공습에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는 국내 이커머스 업체들도 물론 있다. 디자이너 패션 브랜드를 취급하는 무신사, 29CM 등의 플랫폼이 그렇다.
아이지에이웍스의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패션 플랫폼 무신사의 지난 2월 MAU는 약 506만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9.3% 증가했다. 지난해 4분기부터 무신사 MAU는 지속적으로 20% 이상 늘고 있다.
온라인 편집숍 29CM(이십구센티미터)도 이용자가 큰 폭으로 늘고 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29CM MAU는 전년 동기 대비 60.5% 증가하며 122만명을 돌파한 이후 이용자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무신사에는 보세가 없다. 스트리트, 캐주얼, 포멀 등 다양한 스타일의 개성 있는 디자이너 브랜드를 주로 다룬다. 29CM도 여성 패션과 감각적인 취향의 라이프스타일 전문 브랜드 위주로 입점시켰다.
이들이 취급하는 물품은 알리, 테무 소비층과 겹치지 않는다. 중국산 공산품을 사입해 웃돈을 얹어 판매하는 것 외에 별다른 판매 전략이 없는 소매상들과 그런 소매상들이 모여있는 패션 플랫폼과는 달리 감각적이고 독창적인 상품들이 입점해 있다는 것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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