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식객 이춘호의 미각기행] <5> 아! 봄의 맛이야…미나리삼겹살

입력 2024-03-01 06:30:00

40년 역사 자랑 '한재미나리'…미나리+삼겹살 조합 시작점
기름에 볶듯 구워내 깊은 향
가창 정대리 토종 돌미나리…고기 없이 미나리로만 승부
팔공산·화원 마을로도 확산

대구권의 햇미나리는 한재미나리 신드롬으로 인해 전국전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사진은 청도군 청도읍 평양1리 한 식당의 미나리삼겹살.
대구권의 햇미나리는 한재미나리 신드롬으로 인해 전국전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사진은 청도군 청도읍 평양1리 한 식당의 미나리삼겹살.

요즘 미식가들은 묵은지까지 곁들여 먹기를 좋아한다. 화원본리리의 한 식당의 미나리삼겹살.
요즘 미식가들은 묵은지까지 곁들여 먹기를 좋아한다. 화원본리리의 한 식당의 미나리삼겹살.

봄이 후각과 촉각을 어루만지며 고양이 수염처럼 다가선다. 칙칙하고 무기력해진 입은 자꾸만 '영춘식'(迎春食)을 갈구한다. 제주도는 수선화‧동백‧매화‧유채꽃, 울릉도는 고로쇠수액‧전호‧부지깽이‧명이나물, 전남 해안에서는 보리싹홍어애국, 부산~통영권에서는 도다리쑥국이 봄의 식탁을 연다.

◆봄나리가 된 미나리

언젠가부터 내륙의 봄 미각은 대구권 햇미나리와 함께 시작된다. '봄나리'로 불리는 미나리, 사람들은 그걸 먹지 못하면 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믿는 모양이다. 여기도 저기도 미나리 파티다. 언젠가부터 이 계절의 통과의례가 돼버렸다. 나도 그 미나리를 만나러 지난 달 13일 청도 한재로 차를 몰았다.

청도와 밀양을 잇는 25번 국도에서 902번 지방도로 들어서면 한재로가 펼쳐진다. 초현리~음지리~양지리~평지리~상리~사리로 이어진다. 도열한 하우스가 강줄기로 보인다. 지금 그 계곡 6km 구간에 200여 농가와 30여 개의 식당이 산재해 있다.

◆ 한재미나리의 뒤안길

40여 년 역사를 가진 한재미나리. 그 중심부에 권역별 미나리작목반을 하나로 합친 한재영농조합법인이 있다. 평양1리 '미나리사랑가든 ' 주인 서대우와 인사를 나눴다. 구릿빛 피부, 형형한 미소, 각별한 에너지를 가진 사내로 보였다. 19년 전 식당을 차렸을 때 그 언저리에 자리한 식당은 5곳, 터주대감이랄 수 있는 보리밥 팔던 '춘천집' 할매는 작고했다.

아무튼 그는 미나리삼겹살 요리의 신지평을 연다. 기름이 튀지 않는 두루치기 버전의 '미나리삼겹살'을 론칭한 것. 그 맛은 언뜻 제주도 흑고사리두루치기를 연상시킨다.

그동안 미나리 요리는 그렇게 다양하지 못했다. 동절기 대구‧복어탕, 두부무침 정도에 고명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미나리에 환장을 하게 된 건 미나리 옆에 삼겹살을 매칭시킨 탓이다. 맥주 옆에 프라이드치킨을 결부한 거랄까.

그가 삼겹살 위에 미나리를 올려 볶듯이 구워냈다. 기름도 튀지 않고 미나리향은 더 짙어지고 맛은 그래서 더 오묘했다. 괜찮다 싶었든지 삽시간 대구권 전역으로 확산된다.

'머슴소'를 자청한 그는 계명대 미대 서양학과 출신. 가게 옆에 '미사아트팩토리'란 나무대장간을 차려놓고 추억의 나무 장난감을 만든다. 얼마전 개인전도 가졌다.

요즘 이 식당은 밀키트 방식으로 품목별로 끄집어 내 먹도록 서빙한다. 갈수록 경쟁업소가 급증한다. 원조집의 전통이 좀 더 전통스럽게 진화했으면 하는 생각도 해봤다.

한재 미나리는 어떻게 유명해지게 됐나. 그 흐름에 마중물 노릇을 한 사내가 있다. 80년대 후반 대구에서 시내버스를 몰다가 고향으로 내려 온 이승밀 씨. 큰맘 먹고 고향에서 미나리 사업을 시작한다. 그 무렵 한재는 그럭저럭 보리농사로 연명해가는 빈촌이었다. 대다수 농민들은 빚더미에 앉아 있었다. 그의 미나리가 다른 농사보다 3배 이상 짭짤한 수익을 내자 하나둘 미나리를 품게 된다.

96년쯤 한재가 미나리 단지로 반듯하게 자리를 잡게 된다. 2000년부터는 대구, 포항, 부산, 울산, 밀양 등지 나들이객이 원정을 온다. 인파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주차전쟁이 벌어졌다. 작목반이 나선다. 그리고 미나리 재배와 판매, 식당업의 기준과 원칙을 정한다.

한때 물량이 부족했다. 현지로 오지 않으면 맛을 보기 어려웠다. 매년 1~3월 한재 농민들은 부유한 웃음을 짓는다. 그렇게 한재는 '대한민국 미나리의 대명사'가 된다.

한재 미나리는 좀 특별한 구석이 있다. 진한 자줏빛 줄기가 유달리 발달돼 있다. 밑동을 잘라보면 대나무처럼 속이 비어있지 않고 꽉 차 있다.

한재미나리 비닐하우스촌
한재미나리 비닐하우스촌
가창면 정대미나리
가창면 정대미나리
화원읍 본리미나리촌
화원읍 본리미나리촌

◆확산 일로 미나리촌

한재 특수를 타고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 정대미나리, 팔공산미나리, 화원의 본리미나리와 명곡미나리, 그 틈을 파고든 이런저런 변두리 독가촌식 미나리하우스가 봄한철 특수를 누리고 있다.

한재가 '좌청룡'이라면 달성군 가창면 정대미나리는 '우백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재보다 더 골이 깊고 햇볕보다 그늘이 더 풍성한 게 특징이다. 정대미나리는 그래서 토종 돌미나리의 포스를 닮고 있다.

'벚꽃집 아저씨'로 불리는 김정복 씨가 중심 구실을 했다. 그가 들어왔을 때 정대리에는 식당도 거의 없었다. 수제비와 멧돼지바비큐를 잘했던 '큰바위집', 정대숲 안에서 칼국수 두부 닭백숙 등을 팔았던 가게 두 곳이 전부였다. 지금은 명물이 된 미나리조차 없었다.

현재 정대마을회관 근처에 자기 논이 있었던 추병수 씨(2002년 83세로 작고). '추 노인'으로 불렸던 그가 오늘의 정대미나리 농사의 터전을 닦는다. 어느 날 대구 서북쪽 변두리 미나리밭에서 미나리를 키우던 한 사내가 추 노인을 찾아와 논을 임차해 달라고 부탁한다. 조건도 괜찮고 해서 추 노인은 그 사내에게 논을 넘긴다. 하지만 빚만 지고 사내는 정대를 떠난다. 사내가 떠나자 빈 논을 보고 있던 추 노인은 쌀농사보다 미나리 농사가 훨씬 경제성이 있을 것 같았다. 정대미나리가 인지도를 갖게 된 것은 헐티재로 가는 길이 포장되었기 때문이다. 판로가 괜찮았다.

20여 년 전 '정대미나리작목반'이 만들어진다. 15년 전부터 농장별 간이 판매대가 설치된다. 최우석, 최판용, 김정복, 이말돌, 이영환, 이영만, 우진기, 김재현, 이영태씨 등이 그 판매대에 매달린다. 다른 곳은 미나리삼겹살 때문에 북적거리는데 여기는 아직까지 미나리에만 집중하는 게 특징.

팔공산 미나리도 점점 발언권이 세지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등장했는데 현재 100호 농가가 재배를 한다.
후발주자인 '화원미나리작목반'은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뉜다. 본리리 작목반과 명곡리 작목반. 이 밖에 화원읍 설화리, 옥포읍 등지에서도 후발 미나리 하우스촌이 세를 형성 중이다.
2년 전 나는 무려 26명의 회원이 진을 치고 있는 본리리(일명 인흥마을) 미나리촌을 방문했다. 마을 입구에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비닐하우스에선 고기를 팔지 않는다'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그도 그럴 것이 미나리하우스는 거의 그린벨트구역이라 식당업을 할 수 없게 돼 있었다. 이 때문에 여타 식당주와 이런저런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이 마을에서 가장 먼저 미나리를 재배한 농민은 누굴까. 경남 창녕군 출신인 김선칠 씨다. 아내(김명옥)와 함께 미나리농사를 시작한다. 82년쯤 고향을 떠나 본리리로 이사를 와 터전을 닦아나간다. 처음에는 미나리가 아니라 원예농원을 꾸려나갔다. 그 무렵 이 마을은 미나리가 아니라 토마토와 부추 등으로 인기를 얻었다.

김 씨는 한재미나리 종묘를 갖고 화원미나리를 키워냈다. 이들이 미나리로 괜찮은 수입을 올리자 옆 마을 명곡리에서도 기술이전을 요청했다. 김선칠 씨는 명곡 작목반 김관명 씨한테 미나리를 전해준다. 명곡 작목반은 본리 작목반으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았지만 미나리삼겹살로 치고나갔다.

◆가을봄미나리

국내에 30여 품종의 마니리가 있다. 평균 생육기간은 50일 남짓. 보통 1월 하순부터 3월말까지는 햇미나리로 불리는 '하우스봄미나리', 이후 4월 중순부터 6월말까지는 '노지미나리', 그리고 3개월 휴지기를 거친다. 여름에는 직파하지 않고 저온 냉장창고에서 1달 이상 잠재운 뒤 파종을 하는 데 이 미나리가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가을봄미나리'라 한다. 그 흐름을 순차적으로 잘 조정하면 4계절 미나리를 출하할 수 있다.

예전 대구시 서구 비산동 등 변두리에 '미나리꽝'이 있었다. 수질이 불결했다. 거머리까지 붙어 있어 불결함의 상징으로 폄훼됐다. 하지만 한재미나리가 그 오명을 클린하게 불식시킨다.

갑자기 대구 출신 작곡가 권태호가 지은 봄나들이 첫 구절인 '나리나리 개나리~'란 대목이 '나리나리 미나리'란 구절로 오버랩된다.

어쨌든, 미나리발 봄햇살은 점점 명도와 채도를 증폭시켜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