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들 밥 때문에 서두르다…", 자전거 훔친 고교생의 속사정

입력 2024-02-25 19:51:20 수정 2024-02-25 20:00:17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자전거 자료사진. 매일신문 DB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자전거 자료사진. 매일신문 DB

자전거를 훔쳤다며 경찰에 자수한 고등학생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졌다. 경제적 빈곤 속에 부모 대신 동생 6명을 돌보는 이 학생은 "동생들 밥을 챙겨주려고 서두르려다 다른 사람 자전거를 타게 됐다"고 토로했다.

25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20일 경기도 오산경찰서 한 지구대에 고등학생 A군이 고개를 숙인 채 들어왔다. 그는 자신이 자전거를 훔쳤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A군이 자전거를 훔친 날은 같은 달 18일이다. 이날 A군은 오후 9시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도보 30분 거리의 집으로 퇴근하던 중 아파트 단지에 있는 자전거를 타고 귀가했다. 이윽고 자전거 주인이 경찰에 신고했고 곧바로 수사가 시작됐다.

자신의 범행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A군은 "평소 친구가 타던 자전거와 비슷하게 생겨 친구의 자전거로 착각했다"며 "잠시 빌려 타려고 한 것인데, 뒤늦게 다른 사람의 자전거라는 사실을 알고 돌려줬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A군이 자전거를 훔친 동기는 그를 기다리는 동생들 때문이었다. A군은 14평짜리 국민임대아파트에 거주 중인 6남1녀 가정의 장남이었고, 부친은 물류센터에서 근무하고 모친은 심부전과 폐질환을 앓고 있었다. 사실상 A군이 여섯 동생을 돌보고 있었다.

A군은 "일을 끝내고 귀가하다가 시간이 너무 늦은 것 같아 빨리 동생들의 밥을 챙겨줘야 한다는 생각에 서두르느라"고 말하며 말끝을 흐렸다.

사연을 전해 들은 경찰은 A군 가족이 복지 사각지대에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주민센터와 보건소 등 관계기관과 합동으로 그의 보호자를 면담하고 아이들의 건강 상태도 살폈다.

A군은 경찰의 도움으로 생활지원으로 긴급복지지원, 가정후원물품, 급식비, 주거환경개선, 자녀 의료비 등을 지원받았다. 또 교육지원으로도 방과후 돌봄 제공, 중학생 자녀 대상 운동프로그램 제공 및 진로 상담이 이뤄졌다.

경찰 관계자는 "A군이 경찰에 고맙다는 뜻과 함께 앞으로 중장비 관련 기술을 배워서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고 동생들을 보살피겠다는 말을 전해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번 위기청소년 발굴 사례는 자전거 절도 사건에서 범인 검거 및 피해품 회수에 그치지 않고, 범죄소년이 처한 가정 환경 등을 면밀히 살펴 복지 사각지대를 찾은 사례"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한편 A군은 자전거 절도 사건과 관련해 지난달 11일 선도심사위원회에서 즉결 심판 처분을 받고, 법원에서 벌금 10만원의 선고 유예를 받았다. 선고유예는 가벼운 범죄에 대해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미루고, 유예일로부터 2년이 지나면 사실상 없던 일로 해주는 판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