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기운이 세상을 덮치고 있어도 기어이 정의가 승리하는 때가 온다는 뜻으로 통석하는,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은 핍박에도 의연히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이들이 즐겨 쓰는 관용구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빌려 쓰면서 정치적 환난을 대신하는 표현으로 회자했다. 이솝 우화에 실린 말이다. 우화에서 게으른 일꾼은 '수탉 때문에 새벽이 온다'고 오판한다. 그러고는 수탉을 죽인다. 남 탓을 하더라도 번지수는 제대로 찾아야 하는데 엉뚱한 희생양을 삼은 것이다.
아시안컵 4강 요르단전에서 졸전을 보이다 패배한 당시 축구대표팀 감독 클린스만과 수석 코치였던 헤어초크의 외신 인터뷰가 국민감정을 다시 자극하던 차다. 자신들이 잘 다져 놓은 기술력과 경기력을 몇몇 선수들이 개인감정으로 망쳤다는 내용이었다. 이른바 '핑퐁 게이트' 때문이라는 주장인데 그들의 원격 근무 등 불성실을 1년 가까이 지켜본 터다. 이들에게 논리가 있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냉정히 말해 이번 아시안컵에서 꼭 우승해야 했던 건 아니다. 대한민국 축구 팬들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라고 한 것도 아니다. 아시안컵과 비슷한 기간 열린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천신만고 끝에 우승한 코트디부아르도 월드스타 디디에 드로그바가 있을 때 우승한 적이 없다. 우리 축구 팬들이 격분한 지점은 '경험한 적 없는 불성실'에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보고 꿈을 키워온 주축 선수들이 성장을 거듭했음에도 그에 비례한 열매가 불성실 탓에 온데간데없어졌다 보는 것이다.
좋은 스승과 감독은 이미 완성된 재원을 고르는 게 아니라 완성될 재원을 알아채고 재능을 끌어낸다. 우리 팬들이 클린스만 감독에게 바란 것은 어떤 조합으로 최적의 결과를 낼지 궁리하는 것이었다. 하여 '성실한' 클린스만이 국내 경기도 충분히 보고 선수들을 관찰했더라면 선수들의 행동 양태나 분위기를 십분 파악했을 것이다. 더구나 경기 결과가 좋지 않아도 선수가 감독 탓을 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반대로 선수 탓을 하는 감독도 없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았을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아시안컵 4강전 직전 선수들의 다툼 관련 기사가 쏟아진다. 공식적인 조사 발표가 없으니 각색된 이야기도 부지기수다. 유튜버들의 먹잇감으로 방치돼 있다시피 하다. 이제는 개인 갑질 사례까지 끼어들어 퍼진다. 옳지 않다. 성인이라지만 평생 격려와 칭찬에 익숙한 선수들이다. 지금의 억측과 모욕은 맷집이 좋다는 정치인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선수들도 알아야 제대로 반성한다.
클린스만을 감독으로 선임한 과정도 공개해야 한다. 검증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인재를 보는 눈높이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권위에 의한 독단적 감독 선임이었다면 구조적 병폐로 봄이 마땅하다. 권위는 힘을 과시하거나 규칙을 마음대로 정해 독점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누구도 찍소리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갖는 건 권위가 아닌 광신적 맹종이다. 권위를 신뢰하는 것과 무비판적으로 맹종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중용은 '화살이 정곡을 맞히지 못하면 과녁을 탓하지 말고 자기 몸의 자세를 바로잡으라'(失諸正鵠, 反求諸其身)고 했다. 클린스만 등 외국인 코치진이 알기 어렵겠지만 대한축구협회는 알 만하리라 짐작한다. 여론이 잠시 끓다 말 것이라 오산하면 얼렁뚱땅 넘기고 같은 처방만 반복할 공산이 크다. 대한축구협회가 자세를 바로잡아야 할 시간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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