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좋은 차는 선한 사람을 찾아간다"…진정한 茶人의 길 인도해 주신 선생님

입력 2024-03-06 17:01:16 수정 2024-03-07 17:59:23

문청함 청암문화예술원 원장의 스승 고(故) 강종원 씨

청암문화예술원 개원식에서 문청함(뒷쪽 왼쪽) 원장과 강종원(뒷쪽 오른쪽) 선생님이 함께 서서 덕담을 나누고 있다. 문청함 씨 제공
청암문화예술원 개원식에서 문청함(뒷쪽 왼쪽) 원장과 강종원(뒷쪽 오른쪽) 선생님이 함께 서서 덕담을 나누고 있다. 문청함 씨 제공

최근 차인의 길을 30년 걸어오신 강종원 선생님께 차 한잔 올리고 돌아왔다. 긴 수염에 회색빛 모자를 눌러 쓰고 환하게 웃고 계신 영정사진 앞에서 삼배를 드리고 가슴이 시리도록 저려 아무 말씀 드리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좋은 차는 선한 사람을 찾아간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들리는 듯했다.

선생님과의 인연이 어느덧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나는 차인의 길을 가겠다고 우리나라 전국은 물론 대만, 일본까지 유명하다는 차인을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안동 이수다원의 강종원 선생님을 뵙게 되었다. 선생님께 차를 배우려면 3년이라는 시간을 가지고 지금까지 차 배운 것은 다 보자기에 싸두고 벙어리, 귀머거리가 되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한자로 써진 다서 한 권을 주시더니 하루에 3장씩 공부를 할 테니 읽어 오라고 하셨다. 당나라 육우의 다경(茶經)이었다.

나는 초등시절부터 한자를 공부하였고 시와 수필을 써 왔다. 차에 대한 많은 공부와 음양오행, 주역 등을 배우고 익히면서 차시를 쓰고 붓을 잡고 묵락을 즐기기도 하였다. 공부한지 2년이 시작되는 어느날, 선생님께서 차를 품평하면서 제가 느끼는 차 맛과 다서에 대한 질문을 하기 시작하였고 벙어리의 입을 열어 주셨다. 차에 대한 자작시나 한시를 작시하여 보여 주시기도 하면서 소통하기 시작했다. 가끔씩 차 행사나 강좌를 하시는 날에 동행을 하기도 했다.

3년이 되던 봄, 선생님께서 '맑은 청(淸)'에 '머금을 함(含)'자로 다호를 지어 족자에 써 주셨다. "청함아, 맑은 차를 머금고 차인의 길을 가면서 많은 이들에게 맑은 차를 나누어 주어라"고 하시면서 찻잔 하나를 주셨다. 그날의 기쁨은 귀머거리, 벙어리 3년의 귀한 선물이었다. 나는 진정한 차인이 되고자 그동안 홀로서기를 하면서 아리랑 열두 고개를 넘어왔다. 산으로 들로 바다로 전국을 누비며 다도 교육에 나섰다. 모두 형언할 수 없지만 아픔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새로운 차 문화를 보급하고 싶었다. 우리의 소리 아리랑과 차를 접목한 아리랑다법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리랑다법은 마음이 행복한 아이들, 꿈을 꾸는 아이들에게 뭔가를 깨우쳐 주기 위해 착안됐다.

2년 전, 드디어 나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문경 농암면에 있는 폐교가 된 청암중·고등학교에서 청암문화예술원을 개원하게 되었다. 개원식 날 선생님은 좋은 차를 가져다 주시고 차객들이 보시는 앞에서 제 손을 꼭 잡아 주셨다. 선생님의 손을 잡고 있노라니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지난날들 생각에 눈물이 쏟아져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선생님은 한 달 전쯤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셨다. 이후 심장마비까지 와서 얼마 전 돌아가셨다. 나는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환자복을 입은 초췌한 모습과 양말도 신지 않은 선생님을 뵈니 눈물만 쏟아졌다. 그날이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뵙게 된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선생님이 그리워진다. 다도실에서 아이들과 수업을 할 때는 뒷자리에 앉아 계신 듯하고, 오룡차를 우리면 찻잔에 선생님 모습이 담겨있는 듯하다.

오늘 밤은 유난히 보름달 빛이 밝다. 보름달을 벗 삼아 찻물을 돌탕관에 올리고 다서를 넘겨 본다. 찻물 끓어오르는 소리는 내 가슴속에 파고들자 선생님을 그리워하는 이 마음을 찻잔에 담고 청향을 저 달님께 보낸다.

----------------------------------------------------------------------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매일신문이 함께 나눕니다. '그립습니다'에 유명을 달리하신 가족, 친구, 직장 동료, 그 밖의 친한 사람들과 있었던 추억들과 그리움, 슬픔을 함께 나누실 분들은 아래를 참고해 전하시면 됩니다.

▷분량 : 200자 원고지 8매, 고인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 1~2장

▷문의 전화: 053-251-1580

▷사연 신청 방법
1. http://a.imaeil.com/ev3/Thememory/longletter.html 혹은 매일신문 홈페이지 '매일신문 추모관' 배너 클릭 후 '추모관 신청서' 링크 클릭

2. 이메일 missyou@imaeil.com

3. 카카오톡 플러스채널 '매일신문 그립습니다' 검색 후 사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