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에 영향' 이유…세월호 10주기 다큐 연기 지시한 KBS

입력 2024-02-16 19:34:15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 4.16기억교실. 연합뉴스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 4.16기억교실. 연합뉴스

다가올 총선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유로 KBS 제작본부장이 총선 직후 방영 예정이던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를 일방적으로 방송 연기 결정했다. 또한, 프로그램 내용을 다른 재난들과 엮으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제작본부 차원의 결정으로 KBS '다큐 인사이트' 제작진은 '세월호 10주기 방송-바람이 되어 살아낼게'(가제)를 오는 4월 18일 방영을 계획으로 만들어 왔다. 다큐멘터리는 참사 후 10년을 보낸 단원고 생존자를 중심으로 한 평범한 주변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었다.

촬영이 40%가량 진행된 상황에서 지난달 30일 임명된 이제원 제작1본부장은 부임 일주일여 만에 간부들을 긴급 소집해 돌연 제작 일정 변경을 지시했다. 그는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방송을 6월 이후로 연기할 것을 지난 15일 제작진에게 통보했다.

제작진은 이 과정에서 "총선은 4월 10일이고 방송은 8일 뒤인 4월 18일인데 무슨 영향을 줄 수 있냐"고 묻자 이 본부장은 "나는 총선 전후로 한두 달은 영향권이라고 본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큐 인사이트 이인건 PD는 15일 KBS PD협회 협회원에 방송 지연 사태의 과정을 담은 입장문을 보내며 "이 소식을 두 달여 동안 저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세월호 생존자와 현장에서 도와주시는 많은 분에게 설명해야 한다. 이분들은 이와 같은 KBS의 결정을 어떻게 받아들일까"라고 말했다.

그는 "4월 16일은 세월호 10주기이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방송사가 이를 다룰 것이나 KBS 제작본부는 이 시기에 방송을 내보낼 수 없게 됐다"며 "4월 18일로 제작된 방송을 그냥 8월에 방송할 수는 없다. 이는 저와 같이 일선에서 제작하는 작가와 카메라감독도 일치한 의견"이라고 전했다.

제작본부장의 이번 결정에 KBS 내부에서도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16일 KBS PD협회는 성명을 내고 "이제원 본부장의 이번 결정은 명백한 제작 자율성 침해 행위이자 해사 행위"라며 "예정된 일정대로 세월호 10주기 방송 제작이 진행될 수 있기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제작 중인 프로그램에는 세월호에 대한 편견을 배제하고자 정치인이나 유가족 대표, 혹은 세월호 관련 단체의 구성은 제하고, 참사를 겪은 평범한 당사자들의 지난 10년과 앞으로의 인생을 응원하는 내용으로 제작될 예정이었다"며 "세월호 아이템을 민감한 아이템으로 판단하는 본부장이야말로 정치적 편향성을 보이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본부장의 판단은 KBS에 대한 시청자들의 외면은 물론, 공영방송의 추락을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시상교양 구역도 이날 성명을 내고 "무엇보다 세월호 10주기 방송이 총선에 영향을 미친다는 판단부터 우리는 동의할 수 없다. 이미 10년이 지난 사안인 데다, 학생들 수백 명이 숨진 대참사"라며 "국민의 생명에 대한 방송이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는 자체가 이 사안을 정파적으로 바라본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은 오는 19일 KBS 본관 앞에서 '세월호 10주기 다큐 불방 규탄 및 저지를 위한 기자회견'을 진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