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숙주를 멸종시키는 미생물에 관하여
에밀리 모노선 지음 / 반니 펴냄
지난 2016년, 감염 환자의 30~60%가 사망할 정도로 치사율이 높고 항진균제에 내성을 가진 새로운 병원성 곰팡이가 출현했다. 미국 질병통제연구센터의 분석 결과 '칸디다 아우리스'(귀 곰팡이)라고 이름 붙여진 효모의 한 종인 곰팡이가 원인이었다. 일반 곰팡이는 높은 온도의 인간 체온에 살아남지 못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높은 온도에 적응하고 어떤 항생제에도 죽지 않는 다제내성균인 신종 곰팡이가 생겨난 것이다.
이 치료 불가능한 곰팡이는 특히 코로나19 기간동안 급속히 세력을 키웠다. 코로나19 이전까지 모든 기간 동안의 칸디다 아우리스 감염자가 3천105명에 불과했지만, 2020년에는 2천66명이 감염됐고, 2021년 한 해 동안에만 5천512명의 환자가 발생하는 등 기하급수적으로 불었다.
독성학자이자 과학작가 에밀리 모노선이 쓴 '곰팡이, 가장 작고 은밀한 파괴자들'은 지구 역사 속에서 특정 곰팡이가 개구리, 소나무, 바나나, 박쥐 등 여러 생물을 어떻게 멸종위기에 빠뜨렸는지를 추적하면서 그 위험성을 경고한다. 코로나19 사태처럼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또다른 역병의 위기가 곰팡이로부터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인간을 감염시키지 않는 생물의 멸종도 종국에는 인간의 삶의 위기를 초래한다. 먹이사슬의 관계가 변화하면서 단순한 하나의 동·식물의 문제가 아니라 생태계 전체의 지각변동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곰팡이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과 곰팡이는 10억년 무렵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 현재 식물 40만 종, 동물 200만 종이라면 곰팡이는 600만 종에 달할 정도로 무섭게 번성한 생명체다. 일상 생활뿐만 아니라 러시아 미르 우주정거장 내에서도 곰팡이가 발생한 사실이 보고됐을 정도다.
항아리곰팡이라는 개구리의 병원체인 호상균의 일종은 여러 종류의 개구리 개체수를 급격하게 감소시켰고, 고산지대의 강풍과 추위를 견디며 가파른 사면의 갈라진 바위 틈에 뿌리를 내리고 살던 화이트바크소나무는 오엽송물집녹병균에 멸종 위기를 겪고 있다. 바나나를 감염시킨 바바나푸사륨시들음병은 우리가 흔히 먹는 바나나의 품종을 바꿔놓았다. 19세기 초·중반 아일랜드 등 유럽인들의 대기근을 유발했던 '감자역병' 확산 역시 곰팡이를 닮은 난균류(卵菌類)가 원인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손놓고 당하고 있을수 많은 없는 노릇이다. 저자는 미국 산림병리학자 리처드 빙엄의 '저항성소나무 육종 프로젝트'와 케리 파울러·헨리 샌즈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국제 종자저장고', 유전자가위 등 곰팡이 팬데믹을 이겨내고 해결하기 위한 연구자들의 다양한 노력을 보여준다.
치명적인 곰팡이와 함께 살아가려면 '살아남은 집단 중에 곰팡이에 저항하는 유전자가 있어야 한다'와 '모든 개체가 절멸하기 전에 이 유전자가 집단에 퍼져야 한다'라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체군내의 유전적 다양성'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지구에 대한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환경파괴 행동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여행을 하고, 대규모 단일작물을 심고, 동식물을 거래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판도라의 상자를 단순히 연 것이 아니라 상자를 흔들어버렸다. 곰팡이는 바이러스와 달리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제는 잘 알려져 있다."
"곰팡이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될 수 있지만, 우리 인간이 그렇게 되도록 부추길 때가 더 많다. 사람이 새로운 식량 공급원을 제공하고, 면역력이 저하된 사람이 계속 늘어나고, 온난화는 곰팡이를 죽느냐 진화하느냐 하는 위기로 몰아넣는다."
코로나19라는 긴긴 암흑기를 겪은 우리가 더 극심한 위기 상황에 처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전 세계적인 협력과 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328쪽, 2만2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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