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On] 한동훈 위원장이 일으킨 변화…여권에 자신감 심어줘

입력 2024-02-02 06:30:00 수정 2024-02-03 13:25:52

◆윤석열 대통령과 갈등을 통해 아바타 이미지 탈피…자생력 높여
◆한강 벨트 자객 공천을 통해 민주당 86운동권과 대결 전선 만들어
◆차기 대권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와 경쟁…정부 심판론 희석 효과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1일 오후 경북 문경 육가공공장 화재 현장을 찾아 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1일 오후 경북 문경 육가공공장 화재 현장을 찾아 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이 4·10 총선에서 선전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 이후 김기현 전 대표 체제에서 '100석 건지기도 힘들 것'이라던 때와 비교하면 반전의 계기를 잡은 셈이다. 그 중심에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있다.

한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26일 취임 이후 빠르게 당을 장악했고, 용산과 관계에서도 기대 이상의 정치력을 발휘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하는 양상이다.

한 위원장이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선거 프레임에도 변화 양상이 나타났다. 야당은 '정권 심판론' 프레임으로 선거를 손쉽게 이길 것으로 예상했고, 여전히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한 위원장이 주도하는 '86운동권 심판론'과 '한동훈 대 이재명' 구도에도 힘이 실리는 양상이다. 정권 심판론에 기대 선거를 치르려던 야권으로선 당혹스러운 대목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가진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오찬에서 창밖을 보며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가진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오찬에서 창밖을 보며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용산과 관계

한 위원장이 비대위원장 취임 전후로 야권은 그를 '윤석열 아바타'로 공격했다. 검사 후배로 윤석열 사단의 핵심인 탓에 용산에 할 말을 못 할 것이라고 단정했다. 보수층에서도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차별화에 실패할 것이란 얘기다.

2012년 박근혜 비대위가 이명박 대통령과 차별화를 통해 성공한 사례가 회자됐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임기 1년밖에 남지 않아 차별화가 가능했지만 임기가 3년 남은 윤석열 대통령과 차별화는 애초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도 "애초 차별화를 할 수 없다. 결국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고, 대다수의 정치권 인사도 비슷하게 전망했다.

차별화 여부의 잣대는 김건희 여사 리스크였다. 김경률 비대위원이 김 여사 문제를 당내에서 공론화했고, 용산이 격노(?)하면서 한 위원장은 최대 위기에 빠졌다. 여권에서 대통령과 당 대표가 공개적으로 부딪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보수층은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고, 야권 지지자들은 내심 환호를 질렀다.

이럴 경우 통상 당 대표가 고개를 숙인다. 2, 3일 언론을 피하고 잠행을 하면서 근신한다. 반(半)공개적으로 사과한 뒤 자리를 보전하거나 사표를 낸다. 잠행 동안 물밑에서 거취를 조율한다. 정치권의 통상 수법이다. 김기현 전 대표가 물러날 때도 큰 틀에서 이런 과정을 거쳤다.

한 위원장은 뻔한 루틴을 거부했다. 그는 "사퇴 요구를 받았지만 내가 거부했다"며 용산과의 물밑 내용을 수면 위에 끌어올렸다. 현실 정치에서 본 적도, 앞으로도 보기 힘든 광경이다. 공멸 부담을 느낀 양측은 봉합할 수밖에 없었다.

정치적 파장이 상당했다. 수직적 당정 관계 극복이라는 숙제를 자연스레 해결했다. 여권의 속성상 수평적 당정 관계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하지만 한 위원장이 '아바타' 이미지를 벗어나 어느 정도 차별화를 했다고 국민들이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충돌 이후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한 위원장이 당 대표 직무를 '잘하고 있다' 52%, '잘못하고 있다' 40%로 조사됐다. 2012년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긍정 52%, 부정 24%와 비슷한 수치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원회 참조)

특히 '충돌'은 한 위원장이 정치적으로 홀로서기를 하는 데 중요한 계기로 작용한다. 총선 성적표가 그의 정치적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치겠지만, 패하더라도 정치적 미래까지 일순간에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살아 있는 권력과 충돌이라는 큰 정치적 자산을 확보한 덕분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윤재옥 원내대표가 29일 오전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국민인재 영입 환영식에서 박수치고 있다. 오른쪽은 신동욱 전 TV조선 앵커. 연합뉴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윤재옥 원내대표가 29일 오전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국민인재 영입 환영식에서 박수치고 있다. 오른쪽은 신동욱 전 TV조선 앵커. 연합뉴스

◆공천 주도권

선거에서 공천이 가장 민감하다. 여러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다. 여권의 공천은 대통령 주변이 사실상 주도했다. 이명박 정부 때도 박근혜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김기현 전 대표 체제에서 용산이 공천을 주도할 것이라는 예측이 압도했다.

한 위원장은 당이 공천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드러냈다. 공천 신청자 심사 과정에서 평가자로도 참여한다. 한강 벨트에 민주당 86운동권 세대와 대결에 자객 공천 가능성도 열어놨다.

원희룡 전 장관, 김경율 비대위원, 윤희숙 전 의원 등 자객 공천 대상자를 언론에 공개적으로 띄웠다. 경쟁 후보들의 반발에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며 물러서지 않는다. 대통령과 갈등 당시 대통령실에서 '사천 논란'을 문제 삼았던 것을 감안하면 한 위원장은 자신의 방식으로 공천을 끌고 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한 위원장이 공천을 오롯이 주도할 수는 없다. 영남 등 텃밭 공천의 경우 용산에 끌려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갈등 2라운드를 불러올 개연성도 있다.

다만 한 위원장이 상징성 있는 몇몇 지역구를 자신의 의지대로 공천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운동권 86세대 심판을 위한 자객 공천을 통해 프레임 전환 꾀하는 동시에 자신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공천을 하면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예컨대 최근 당이 유승민 전 의원 공천 여부를 검토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미래 경쟁

한 위원장이 연착륙에 성공하고 여론의 호응을 받으면서 강력한 차기 대권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재의 여론조사가 차기 대권 후보 가능 여부와는 큰 상관이 없지만 국민의힘 총선 전략으로는 의미가 있다. 현 정부 심판론을 희석시킬 수 있어서다.

1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는 두 사람은 팽팽한 접전을 벌였다. 차기 대통령감을 묻는 질문에 한 위원장과 이 대표는 각각 26%를 얻었다. 이어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이낙연 새로운미래 인재영입위원장, 홍준표 대구시장이 각각 3%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처럼 차기 대통령을 두고 두 사람 간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윤석열 정부 심판론은 관심에서 멀어지는 효과가 있다. 김건희 여사 문제도 비슷한 효과를 얻는다. 설 명절 여론이 한 위원장, 이재명 대표, 이준석 대표 등 차기 대권 주자들에게 쏠리면 여권 입장에서 불리할 게 없다.

한 위원장이 일으킨 변화는 크다. 총선 패배론에 휩싸였던 여권에 '싸워볼 만하다'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수직적 당정 관계에 균열을 일으켰고, 공천 주도권을 당으로 가져왔다. 미래 정치를 두고 경쟁에 불 지폈다. 정치 입문 40여 일 만에 일으킨 변화다. 평가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