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의 세계사] 히포크라테스…동서(東西) 명의 누가 더 뛰어날까?

입력 2024-01-31 14:30:00 수정 2024-01-31 19:35:33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권모술수는 짧고 진실은 오래간다
권력자 조조에 죽임당한 명의 화타…의사가 권력자 해칠 수 있다는 궤변
의술의 본질, 의사 사명은 무엇인가
상체는 사람, 하체는 말 켄타우로스…뼈 이식 성공 인류사 최초 외과의사
허벅지 박힌 화살촉 제거 이아픽스

히포크라테스
히포크라테스

2세기 말 권력자 조조(曹操)는 명의 화타(華佗)를 곁에 두고 치료를 맡겼다. 왕조 시대 주치의는 사소한 일로 변고를 겪는다. 화타 역시 조조의 두통을 잘 치료했지만, 조조에게 죽임을 당한다. 현대 민주사회의 권력은 입법, 사법, 행정부로 나뉜다. 법을 만드는 입법부는 국회 다수당의 지배를 받는다.

민주당 소속 출마예정자 여선웅 전 청와대 행정관은 이재명 대표 피습 6일 뒤 YTN에 "이 대표나 민주당에 반(反)하는 의료행위들이 진행돼, 비극적 상황이 일어났다고 치면 감당할 수 없는 것"이라며 서울대 이송의 불가피성을 강변했다.

권력자 조조가 명의 화타를 죽인 사례는 있어도 의사가 권력자를 해칠 수 있다는 궤변은 낯설다. 의술의 본질, 의사의 사명은 무엇일까? 현대의학의 비조 히포크라테스의 의술 세계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히포크라테스 동상. 서울 대학로 서울대 병원.
히포크라테스 동상. 서울 대학로 서울대 병원.

◆명의 화타, 관우의 어깨뼈 수술을 고통 없이 진행?

서울대학교 병원부터 가 보자. 서울 대학로 병원 입구에 히포크라테스 동상이 높이 솟았다. 히포크라테스가 작금의 섬뜩한 의사 음모론을 어떻게 바라볼지 뒤로 돌리고, 동양 명의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가자. 관포지교(管鮑之交). B.C7세기 춘추시대 관중과 포숙아의 깊은 우정을 기리는 말이다. 두 사람을 중용해 제(齊)나라를 강국으로 만든 환공(桓公)의 안색만 보고 병을 진단해 고쳤다는 명의가 있다. 죽은 괵나라 태자 시궐을 살렸다는 전설의 편작(扁鵲)이다.

편작 이후 8백여 년 흘러 한나라 말기 화타에 대해서는 3세기 진수의 『삼국지(三國志)』, 5세기 범엽의 『후한서(後漢書)』 등에 자세히 소개된다. 마취제를 사용해 외과수술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몽골 대원제국 시절 14세기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도 화타의 활약상이 나온다. 허구의 스토리텔링이 허용되는 소설인 만큼 극적이다. 어깨에 독화살을 맞은 명장 관우가 바둑 명인 마량과 바둑을 두는 사이 화타가 어깨뼈 수술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칼로 신체를 절개하고 봉합하는 화타의 외과수술이 고대 과연 가능했을까?

나폴리만의 산타루치아 항과 멀리 베수비오 화산. 오른쪽은 달걀 성. 476년 서로마제국 멸망 뒤 마지막 서로마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유폐된 장소다.
나폴리만의 산타루치아 항과 멀리 베수비오 화산. 오른쪽은 달걀 성. 476년 서로마제국 멸망 뒤 마지막 서로마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유폐된 장소다.

◆명의 키론, 아킬레스 뼈 이식 수술 성공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는 가능하다. 이탈리아 나폴리로 가보자. 베수비오 화산을 배경으로 나폴리만의 그림 같은 산타루치아 항과 476년 서로마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유폐됐던 달걀 성, 웅장한 플레비스키토 광장과 왕궁, 현존하는 지구촌 최고(最古) 오페라 극장인 산카를로 극장과 누오보 성을 지나 지하철을 타면 4정거장 거리에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이른다.

키론과 아킬레스. 1세기 로마 프레스코. 에르콜라노 출토.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
키론과 아킬레스. 1세기 로마 프레스코. 에르콜라노 출토.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

폼페이와 에르콜라노에서 발굴한 최고(最高)의 로마 유물이 즐비하다. 2천년 된 선명한 색상의 프레스코는 탐방객의 경탄을 자아낸다. 이 가운데 '켄타우로스 키론과 아킬레스'가 시선을 끈다. 켄타우로스는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말로 난폭하기 그지없다. 키론만은 예외다. 현자로 꼽힌다. 트로이 전쟁 영웅 아킬레스는 어릴 적 키론에게 배웠다. 에르콜라노에서 출토된 이 프레스코에 리라를 든 아킬레스와 스승 키론이 다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프랑스의 그리스 신화학자 피에르 그리말의 『그리스 로마 신화사전(최애리 역, 열린책들)』에 보면 키론은 죽은 거인 다미소스의 시신에서 뼈를 적출해 중상 입은 아킬레스에게 이식했다. 덕분에 아킬레스는 폭풍처럼 질주할 수 있었다. 키론은 뼈 이식수술을 성공적으로 집도한 인류사 최초의 외과 의사인 셈이다. 동양 명의 화타와 키론의 대결은 용호상박, 장군멍군으로 비겼다고 치자. 그런데, 혹시 외과수술 장면이 담긴 유물은 없을까?

아이네이아스 수술 장면. 1세기 로마 프레스코. 폼페이 출토. 로마 팔라조 마시모 고고학 박물관
아이네이아스 수술 장면. 1세기 로마 프레스코. 폼페이 출토. 로마 팔라조 마시모 고고학 박물관
트로이 전쟁시기 명의 이아픽스가 아이네이아스 허벅지에 꽂힌 화살촉 제거 수술을 펼치고 있다. 1세기 로마 프레스코. 폼페이 출토. 로마 팔라조 마시모 고고학 박물관
트로이 전쟁시기 명의 이아픽스가 아이네이아스 허벅지에 꽂힌 화살촉 제거 수술을 펼치고 있다. 1세기 로마 프레스코. 폼페이 출토. 로마 팔라조 마시모 고고학 박물관

◆로마 시조 아이네이아스 화살촉 제거 봉합수술

무대를 나폴리에서 고속전철로 1시간 거리 로마로 옮겨보자. 로마 테르미니 기차역 앞 팔라조 마시모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폼페이에서 발굴한 프레스코 한 점이 탐방객을 맞아준다. 가운데 건장한 남자는 트로이 전쟁 당시 트로이 프리아모스 왕의 사위(트로이 공주 크레오우사의 남편) 아이네이아스다.

허벅지에 피를 흘리며 서 있고, 오른쪽에 아들 아스카니오스가 아버지의 고통에 눈물짓는다. 왼쪽에 늙수그레한 의사가 집게를 이용해 상처를 치료하는 중이다. 위쪽 반나의 여인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즉 비너스다. 아이네이아스의 어머니다. 비너스가 트로이의 미남자 안키세스에게 반해 동거하며 얻은 아들이 아이네이아스다.

로마제국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의 명으로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11년에 걸쳐 쓴 로마건국 서사시 『아이네이드(김명복 역, 문학과 의식)』 12장을 펴보자. 12장으로 된 대작의 맨 끝장이다. 아이네이아스가 트로이에서 탈출해 이탈리아 반도로 온 뒤, 토착 루툴리 족의 왕 투르누스와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로마시대 외과 수술용 의료도구. 대영박물관
로마시대 외과 수술용 의료도구. 대영박물관

전투 과정에 아이네이아스가 화살에 맞는다. 피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네이아스를 명의 이아픽스가 치료하는 장면을 그렸다. 서사시에는 명의 이아픽스의 화살촉 제거 외과수술이 실패한 것으로 묘사된다. 관우의 어깨뼈 독 제거 수술에 성공한 화타에 비하면 실력이 뒤지는 것일까?

아이네이아스는 어머니 비너스가 크레타섬에서 가져온 약초 덕에 회복한다. 이아픽스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로마 시대 외과수술용 도구들은 지금까지 다수 남아 당시 외과수술을 증언한다. 그리스 로마 의술에서 이 사람을 지나칠 수 없다.

그리스 코스에 있는 히포크라테스 나무. 수관 직경이 12m로 유럽에서 가장 넓은 플라타너스다. 히포크라테스가 이곳에서 제자들에게 의술을 지도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스 코스에 있는 히포크라테스 나무. 수관 직경이 12m로 유럽에서 가장 넓은 플라타너스다. 히포크라테스가 이곳에서 제자들에게 의술을 지도했다고 알려져 있다.

◆히포크라테스 나무... 제자 강의 장소

키론의 제자 아스클레피오스의 후손 가운데 히포크라테스가 있다. 에게해 동남부 코스섬은 아테네에서 비행기로 1시간 10분 걸리지만, 튀르키예의 역사 고도 보드룸에서는 배로 30분 거리다. 배에서 빠져나오면 항구 앞에서 특이한 나무와 마주친다. 히포크라테스 나무(Tree of Hippocrates)다. 수관(樹冠, 나뭇가지까지 넓이) 직경이 12m로 유럽의 플라타너스 가운데 가장 넓다.

속이 텅 비어 껍데기만 남았는데도 잎이 울창해 신비감마저 감돈다. 코스에서 태어난 히포크라테스가 제자들에게 의술을 가르치던 장소다. 전 세계 의과대학에서 이 나무의 가지를 이식해 새끼 나무를 기른다. 이 나무 아래서 히포크라테스가 실제 강의했을까?

그렇지는 않다. 지금 플라타너스 나무의 수령은 500살. B.C460년 경 태어나 소크라테스(B.C470년 경 출생)와 동시대에 살았던 히포크라테스와 연대 차이가 크다. 원래 히포크라테스 시대 나무는 죽고, 그 자리에 씨나 가지가 다시 자랐을 것이다. 새끼 나무라고 할까? 아니면 같은 장소에 후대 심은 나무로 추정된다.

히포크라테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흰색 히마티온을 입은 노년의 히포크라테스 모습. 2-3세기 로마 모자이크. 코스 고고학 박물관
히포크라테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흰색 히마티온을 입은 노년의 히포크라테스 모습. 2-3세기 로마 모자이크. 코스 고고학 박물관

◆히포크라테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히포크라테스 나무 옆에는 코스 고고학 박물관이 자리한다. 여기에 진귀한 로마 모자이크 한점이 히포크라테스의 전설을 되살려준다. 그리스인 특유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흰색 히마티온을 입은 히포크라테스 모습이 무척이나 반갑다. 한편으로는 경외스럽다. 히포크라테스가 그리스 중부 라리사에서 죽고 난 뒤, 서양세계 의학사에 남긴 거대한 업적을 생각하면 그렇다.

그의 사후 저술(일부 제자 저술)들을 모은 저작물이 나와 로마시대는 물론 중세와 현세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16세기 금속인쇄술 발달에 힘입어 『히포크라테스 총서(Hippocratic Corpus)』가 그리스어, 프랑스어, 독어, 영어판이 간행됐고, 19세기 프랑스의 리트레가 재출간해 지금까지 널리 인용된다. 이 저작물에 '히포크라테스의 선서'가 나온다.

"나는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1948년 세계의사협회가 제네바 선언으로 재정리한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일부다. 이런 직업의식에 충실한 의료인들에게 정치적 음모에 기반한 의료인 비하는 모욕이다. 『히포크라테스 총서』 에 나오는 유명한 그리스어 아포리즘의 울림이 크다.

"Bíos brakhús, tékhnē makrḗ(라틴어 Vīta brevis, ars longa)" 흔히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번역되지만, '예술'보다 '기술' 아니 ' 의술'이 적확하다. 권모술수는 짧고, 진실은 오래 간다.

김문환 역사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