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등단 작가

입력 2024-01-02 20:26:52 수정 2024-01-02 20:27:05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저기, 그런데요… 제가 몇 년 전에 등단을 했는데요. 이름 없는 곳이거든요. 상금도 없는 곳에서 등단했는데 응모해도 되는가요?"

신춘문예 공모 시즌이면 주최 측인 신문사로 문의 전화가 빗발친다. 원고 마감을 일주일쯤 남기면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 된다. "어디까지를 등단으로 인정하느냐"는 질문이 대부분이다. 신인 발굴이 취지이다 보니 유력 공모전 수상 이력이 있는 이들의 응모를 막아둔 탓이다. '확인'과 '재차 확인'에 한숨이 섞인다. 자칭 '신춘 낭인'이라는 문학청년들의 패기는 나이를 불문한다.

연초는 '신춘문예 당선작의 시간'이다. 당선작 품평과 관련 사연이 문단에 오르내린다. 여러 신문사에 다른 작품을 보내 동시에 당선작을 내는 이도 있다. 당선자들은 호쾌하게 상금을 쓴다. 써야 또 들어온다는 '기원형 소비'다. 호쾌하게 당선 턱을 내다 상금액을 넘어서기도 한다. 그러나 주목은 오래가지 않는다. 등단 작가 대우를 받으며 진검승부 판에 들어가는 것이다. 원고 청탁에 신경 쓰기 시작한다.

원고 청탁 부재를 수치스러워하지 않고 도약의 계기로 삼기도 한다. 김금희 작가는 2009년 등단 이후 2년 동안 청탁이 없었다고 한다. 등단 작가라는 자부심을 갖고 카페에서 매일같이 글을 썼다고 한다. 이른 시간에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이 나온 까닭이다. 1995년 등단한 은희경 작가도 마찬가지. 청탁이 거의 없어 절박한 마음으로 장편을 쓰기 시작했다. 최근 100쇄를 돌파한 '새의 선물'이다.

작가로 눈도장을 찍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웹소설로 상업성을 평가받고 신춘문예에 도전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140자 소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X(옛 트위터)'에 들어가는 글자 수가 140자다. '30초 만에 울 수 있다. 25만 부 돌파'라는 광고 문구가 이채롭다. 국내에서도 2015년 즈음 선을 보인 바 있다. 어딘가에는 고수들이 암약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도 이순을 넘겨 등단한 이들이 여럿 보인다. 스스로를 '신춘 낭인'이었다고 하지만 그만큼 전력을 다했을 것임은 짐작하고 남는다. 올해 신춘문예 당선작에 자신의 이름이 없는 이들도 낙담하지 않길 바란다. 등용문은 여러 군데 열려 있다. 포기하지 말라는 응원의 목소리를 보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