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비지트 배너지 MIT 교수 "교육·지역특화·인구 유입이 지방분권 동력"

입력 2023-12-21 16:28:46 수정 2023-12-21 20:28:44

21일 매일신문과 인터뷰…"한국은 양극화와 둔화 앓는 중, 국가·지역에 맞는 성장동력 찾아야"
"지역별 탁월함 키우면 지역 찾는 이들 늘어 탈중앙화 가능, 이민자 유입 고민하고 육아·주거 지원도"

경북도는 21일 경주 라한셀렉트 호텔에서
경북도는 21일 경주 라한셀렉트 호텔에서 '2023 지방주도 경제성장 국제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아비지트 배너지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교수가 '성장에 관한 짧은 역사와 한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를 주제로 기조강연했다. 경북도 제공

"중앙화와 지역 불균형은 고성장 국가가 공통으로 겪는 문제입니다. 신성장동력이 필요합니다. 지역 곳곳에서 우수한 교육을 제공하고, 각지에 특화한 농업·제조업에 청년이 뛰어들도록 하며, 국가 내부와 국가 간에 인구를 이동시켜야 합니다."

아비지트 배너지(62)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교수가 21일 경북 경주를 찾았다.

배너지 교수는 아내 에스테르 뒤플로 배너지(51) 교수와 2019년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인물이다. MIT 빈곤 행동 연구소를 설립해 빈곤 경제학 관련 200개 이상의 경험적 개발 무작위 대조실험을 수행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들은 고전주의 경제학과 케인즈 경제학, 보수·진보 경제학을 어느 하나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실험 경험에 기반한 이론을 바탕으로 경제 성장과 원조론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주목받았다.

그는 한국을 가리켜 탈중앙화와 지방분권을 통한 성장동력 재창출 필요성을 역설했다.

저소득 국가는 원래 있어야 할 균형점을 찾아 급속하게 발전하지만, 이후 고소득 국가에 접어들 수록 고령화와 노동자(청년) 감소로 인해 추가 성장할 자원이 부족해지고, 결국 부의 양극화가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배너지 교수는 "한국의 국가성장 사례가 특히 주목할 만하다"고 설명했다. 저소득 국가에서 유례없이 급속 성장해 고소득 국가를 향해가고 있으면서, 동시에 급속한 양극화와 성장둔화를 앓고 있다는 것이다.

'우수한 교육이 더 나은 교육과 인재, 성장을 낳는다'는 교육 집적효과를 강조한 그는 "보스턴은 엄청난 대도시는 아니지만 하버드, MIT와 같은 좋은 대학교와 가까워 청년이 모여드니 도시에 활기가 생기고 인구도 유입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처럼 좋은 교육을 제공하면 인재 육성이 보장되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교육 인프라와 인재가 다른 이들에게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하는 선순환을 일으킨다. 고소득 국가에서는 양질의 교육만 골고루 공급해도 성장 동력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지금처럼 중앙집권적, 명문대 집중식의 경쟁적 교육을 하기보다는 개방적 아이디어를 지닌 사람도 다방면으로 성공할 수 있는 교육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배너지 교수는 교육만이 해법은 아니라고 짚었다. 국가나 지역에 따라 성장 동력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저널과 저서 등에서도 "빈곤하거나 성장이 둔화한 지역에는 '골대'를 가까이 가져다 줘야 공을 찬다"고 설명, 해당 지역민이 행동에 나설 약간의 동기를 제공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배너지 교수는 "남부 프랑스와 북이탈리아는 특별한 농산업으로 지역발전과 성장에 성공했다"며 "젊은이들은 어디에 가든 최고가 되고 싶은 열정을 품고 있다. 지역 특산물 관련 산업 기반을 제공하는 등 누구든 조금만 더 움직이면 금세 최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탈중앙화에 대한 공감대만큼이나 변화에 대한 저항이 거세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면서도 각 지역만의 탁월함을 키운다면 긍정적 결과는 분명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에 대해 모두 아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세계 각국이 그랬듯, 지방 중심으로 힘있게 나아가려면 그 지역만의 탁월성을 더욱 크게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인구들이 지방을 찾는다. 이것이 분권화 시대의 해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저서에서 '이민자는 원주민의 일자리를 빼앗지 않는다'고 공언한 바 있는 배너지 교수는 "1980년 쿠바인들이 미국에 대거 유입됐으나 기존 주민의 임금을 낮추거나 실업을 유발하지 않았다"며 "빈곤과 불평등, 저성장을 해결하려면 정부가 앞장서서 이민과 이주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배너지 교수는 "한국의 출산율 수치 0.8은 정말 낮은 것이다. 이를 거스르려면 최소 20년의 투자가 필요하다. 정주 이민자를 받을 것인지, 임시 이민자를 받을 것인지 충분히 고민하고 수용해 지역사회에 유입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육아 지원을 통한 여성 노동자의 재진입 유도, 주택 보조금 지급을 통한 가계부채 완화와 결혼·출산 확대 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배너지 교수는 그러면서도 "성장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고 환기했다.

"경북은 정말 아름다운 곳입니다. 아름다운 경관과 시설이 많습니다. 성장이 중요할까요, 양질의 삶이 중요할까요? 연말을 맞아 삶의 질을 생각해 보시기를 바라며 행복한 새해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