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규 계명대 교수
오늘날 학교에서 이뤄지는 예술 관련 수업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프리드리히 실러의 미적 교육론에 기인한다. 실러는 괴테와 함께 독일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이지만 탁월한 미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18세기 말에 미학 연구에 몰입해 그 결과를 편지 형식으로 남겨놓았다. 실러는 특히 미의 교육적 의미에 천착해 오늘날까지 그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다.
실러는 어떤 근거로 미를 최상의 교육적 가치로 봤을까? 실러는 아름다움을 '현상 속의 자유(Freiheit in der Erscheinung)'라는 매우 추상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말로 정의했다. 이 정의는 많은 설명을 요구하지만 무엇보다 아름다움과 자유의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실러는 칸트의 미학을 수용해 미의 속성을 다음과 같이 이해했다. 첫째, 미는 어떤 객관적인 규정에도 구속 받지 않는 자유로운 주체의 느낌이고 판단이다. 아름다움을 느끼는데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정보는 필요하지 않다. 둘째, 그런데도 아름답다고 감탄할 때는 자신만의 느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충분히 공감할 것이라는 보편성을 느낀다. 셋째, 아름다움은 이해관계나 목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때 가능하다. 가령, 호수 위의 아름다운 백조를 보고 잡아먹을 생각을 하거나 팔면 돈이 되겠다며 계산을 한다면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우리가 미를 느낀다는 것은 많은 것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태가 되는 것을 뜻한다. 이 자유는 주로 미를 느끼는 주체의 상황이지만 미적 대상도 자유의 원리를 따를 때가 많다. 우리가 길가의 장미를 보고 아름답다고 느낄 때, 장미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거지 어떤 외적 강제성이나 목적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것은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현상을 말한다.
여기서 미의 두 번째 개념인 '현상(Erscheinung)'이 나온다. 즉, 아름다움은 그냥 자유가 아니라 현상 속의 자유다. 왜 현상인가? 현상 너머로 가거나 현상 내부로 들어가면 이유나 목적이 발생한다. 이유나 목적은 진리나 선의 문제일 수는 있어도 미의 문제는 아니다. 현상은 겉으로 드러나는 감각적 형식으로 경험의 대상이다. 미는 결국 형식과 관련이 있다. 내용이나 목적을 따지는 것은 현상 속의 자유와 거리가 멀다. 자유가 미의 조건이라면 현상은 자유의 조건이다. 특히 예술에서 현상, 즉 예술의 형식은 상상력의 표현으로서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은 자유를 준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에 그치지 않고 도덕적 차원으로 확장된다. 현상 속의 자유가 아름다움이라면 자유는 무엇보다 도덕의 원리다. 의무로 하는 선행이나 어떤 목적을 염두에 둔 선행은 자유로운 행위가 아니므로 진정한 선행이 아니다. 당연히 아름답지도 않다. 참된 도덕은 아름다움처럼 자유의 원리를 따르는 바, 어떤 목적이나 이해관계가 전제되지 않는 그 자체로 좋은 행위이다.
미적 체험을 통해 자율성과 주체성을 함양하는 것이 미적 교육이다. 따라서 미적 교육은 자연스럽게 인성 교육 혹은 도덕 교육이 된다. 미적 교육에서 활용하는 중요한 대상은 자연과 예술이다. 자연을 통해 미적·생태적 감수성을 함양하고 예술을 통해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인격을 키울 수 있다. 예술을 통한 미적 교육은 좋은 작품을 감상하는 것뿐 아니라 스스로 작품을 만들어보는 데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이해관계와 목적에 묶여 돌아가는 오늘날 '자유로운 현상의 아름다움'만큼 긴요한 것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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