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요즘 대구‧경북의 유권자들은 혼란스럽다. 내년 총선을 앞둔 국민의힘의 태도 때문이다. 대구‧경북에 적극 구애하는가 하면, 대놓고 홀대한다. 한동훈 법무장관은 대구를 "평소 깊이 존경해왔다"고 한다. 6.25전쟁 때 대한민국을 지키고, 산업화를 이끈 까닭이다. 하지만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낙동강 하류 세력은 뒷전에 서야 한다"고 한다. 왜 이렇게 냉탕 온탕을 오가나. 당의 진로를 놓고 국민의힘이 깊은 고민에 빠졌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강서구청장 선거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수도권 유권자는 방탄국회와 입법폭주, 막말로 점철된 민주당보다 윤석열 정부가 못하다고 심판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가장 크게 비판받았다.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대통령이 조금만 잘했으면, 민주당은 국민들한테 벌써 심판을 받았을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또 다른 원흉으로 영남정치세력이 지목되었다. 신임 사무총장에 이만희 의원(재선·경북 영천-청도)이 임명되자, 한 여당 의원은 "수도권 위기론을 수습하라고 했더니 '도로 영남당'으로 돌아갔다."고 개탄했다.
국민의힘 수도권 정치가들은 "낙동강을 넘어 한강 진출에 힘을 쏟을 때"라고 주장했다. 이유는 먼저 영남이 당권을 독점해 "당과 정권이 우경화되고 있다"(유종필 서울 관악갑 위원장)는 것이다. 또한 당이 독립성을 잃고, 대통령의 들러리가 되었다.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2030세대 젊은 층, 그리고 중도·부동층이 완전 이탈"(문병호 서울 영등포갑 위원장)된 이유다.
인요한 혁신위원회는 이런 영남당으로는 내년 총선에서 이길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제2호 개혁안이 영남정치세력 물갈이론이었다. 인위원장은 "꽃신 신고 꽃길만 걷던 인사들은 이제 나막신 신고 자갈밭도 걸어야 한다"고 직격했다. 구체적으로 '영남권 중진 수도권 출마론'을 제기하고, 김기현 대표와 주호영 의원 같은 '스타'들의 서울 출마를 촉구했다. 누릴 만큼 누렸으니, 이제 국민을 위해 희생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구 초선 김용판 의원은 대구·경북이 "당이 어려울 때 당을 지켜왔고, 자유 우파 대한민국을 지켜온 자부심이 있는데, 마치 잡아놓은 고기 취급하며 큰 상처를 준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영남이 위기의 원인은커녕 위기 시 당과 대한민국을 지켰으니, 본말이 전도됐다는 것이다. 김기현 대표는 지역구 의정보고회를 열고, "내 지역구가 울산이고 내 고향도 울산이고 지역구를 가는데 왜 시비인가"라고 공박했다.
이른바 TK와 혁신위가 정면 충돌하는 형국이다. 근본적으로는 당의 진로와 정체성을 둘러싼 대립이다. 혁신위는 낙동강 정당을 한강 정당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혁신을 위해 영남이 희생하고, 빈자리를 중도, 수도권, 청년층으로 채우자는 것이다. 이 연합전략은 지난 대선의 승리방정식이었다. 지난 2년간 이 연합이 깨지며 대통령 지지율이 30%대에 갇혔다. 지지층이 핵심 보수진영으로 축소된 것이다.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그 참담한 현실이 명백히 드러났다.
하지만 TK세력은 자유 우파와 대한민국을 지킨 게 오히려 낙동강 정당이라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대로 내년 총선에서 이길 수 있나? 그게 문제다. 2016년 20대 총선이 반면교사다. 당시 야권이 분열되어, 여당인 새누리당은 낙승을 자신했다. 하지만 TK 중심의 친박 정당에 집착하다, 수도권 민심을 크게 잃었다. 수도권 121석 중 겨우 12석을 건질 정도로 참패했다. 전체 지역구 의석의 48%에 달하는 수도권에서 지면, 승리는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상식을 파괴하고, 국가의 근간을 무너뜨렸다. 윤석열 정부는 여전히 미숙하지만, 국가의 바이털사인을 정상화했다. 얼마 전 최강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가해자가 돼 심장에서 피를 흘리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지 해야 한다"고 윤 정부를 증오했다. 같은 당 김용민 의원은 대통령 탄핵 발의를 촉구했다.
저쪽은 전쟁을 하는데, 이쪽은 선거를 한다. 국민의힘이 내년 총선에서 지면, 국가는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대구‧경북은 일찍이 공산주의와 가난과의 투쟁에서 대한민국을 구했다. 다시 한번 나라를 구할 때다. 희생 없는 값진 성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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